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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수(金在水, 1902~?)] ()

(조공 당원) 함북 성진 출신으로, 서울 중동학교를 졸업하고 『시대일보』 성진지국 기자로 근무했다. 1924년 12월 성진에서 사상단체 신인회(新人會) 창립에 참여하여, 신인회가 운영하는 노동야학의 교사가 되었다. 1925년 8월 보천교 성토강연회에 연사로 나섰다. 11월 신인회가 강제로 해산되자 1926년 2월 과학사상연구회를 조직하려고 했으나 역시 금지되었다. 11월 단천, 길주의 사회주의자들과 함께 사상단체 태양회를 조직하고 중앙집행위원이 되었다. 12월 성진청년연맹을 대표해 학중면에서 일어난 토지 부당매각 사건을 조사했다. 1927년 2월 조선청년총동맹 함북도연맹 집행위원, 11월 신간회 성진지회와 재만동포옹호동맹의 상무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2월 성진청년동맹 창립대회에서 서기가 되었다. 이 무렵 조선공산당에 입당하여 성진야체이까에 배속되었다. 1928년 3월 성진청년동맹 하부조직 설치를 촉성하기 위한 지방순회위원으로 선정되어 성진면을 담당했다.
(성진농조 중앙조직위원) 1928년 4월 청총 함북도연맹 정기대회에서 동양척식주식회사와 수리조합 등 일제의 식민지 농업정책을 비판하고 농민운동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연설을 했다. 7월 위 연맹 사건으로 검거되었으나 1931년 1월 경성복심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고 석방되었다. 3월 해소를 결의하기 위해 열린 신간회 성진지회 대표자대회의 서기를 맡았으며, 집행위원 겸 본부대회 대의원으로 선출되었다. 5월 신간회 본부 전체대회에 참석하여 해소론을 주장했다. 같은 달 기존의 북성농민조합을 확대하여 성진농민조합이 창립되자 중앙조직위원이 되었다. 같은 해 말 체포되어 1934년 10월 청진지법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 인접어

김재명(金在明, 1901~30) 金憲植 金麗水 음달
김재범(金在範, 생몰년 미상)
김재병(金載丙, ?~1942) 高揚喜
김재봉(金在鳳, 1890~1944) 槿田
김재선(金在善, 1916~?) (여성)
김재수(金在水, 1902~?)
김재수(金在水, 1902~?)
김재욱(金在旭, 1912~?)
김재중(金載中, 1903~?)
김재한(金在翰, 생몰년 미상)
김재홍(金在泓, 18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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