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의 책 처음으로 | 사전 | 자유게시판 | 회원자료 | 로그인

 

       ■ 의견바로가기

[국제통화제도(전후)[國際通貨制度(戰後)]] (International Monetary System)

Ⅰ. 국제통화기금IMF과 국제통화제도. 제2차 세계대전은 1945년 8월 연합국 측의 승리로 종결되었다. 종전(終戰)은 전쟁으로 인해 금(金)만이 최종적인 국제 결제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었던 국제통화제도에 대해서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1945년에 정식으로 발족된 IMF를 중심으로 한 전후 자유주의국가들의 국제 통화협력기구가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IMF는 제2차 세계대전이 종결될 즈음인 1944년 7월, 44개국이 참가한 연합국 통화 금융회의에서 성립된 <브레튼 우즈 협정>에 기초하여 <국제부흥개발은행IBRD>과 함께 설립된 국제 통화 협력 기구를 말한다. IMF 협정은 그 목적에서 국제 통화협력에 의한 무역의 확대균형과 가맹국의 고용, 소득의 고수준 확보 및 자원개발을 내걸고 이를 위해 환 제한을 제거하고 다각적인 지불 제도를 확립, 수지의 균형을 조정하는 데 기금을 이용토록 하고 있다. 이것은 세계공황에 이어 계속된 1930년대의 무역, 환율 전쟁과 배타적 블록에 의한 세계시장의 파괴를 반성하고 통화면의 자유, 다각, 무차별의 이념을 구축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전반적 위기의 격화를 배경으로 미국과 영국으로 대표되는 자본주의국가들 간의 불균등 발전과 격렬한 이해대립이 내재되어 있었다. 이러한 대립은 그 성립과정에서 영국의 입장을 반영한 ‘케인즈 안’(연합국 국제 안정기금안)과 미국의 ‘화이트 안’(국제 청산동맹안)의 대립으로 나타나기도 하였는데, 그 결과는 미국의 우위를 반영하여 미국 주도의 협정으로 성립되었다. 그리하여 전후 각국은 세계경제의 운영에서 경쟁적인 환율의 절하나 외환의 제한이 폐해로 작용한다는 점에 인식을 같이 하고 이의 철폐를 위해 고정환율제의 채택과 자유화 원리의 준수를 약속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목적의 실현을 위해 필요에 따라 각국이 국제 결제수단의 단기적인 융자를 받기 위한 기관으로서, 할당액에 따라 각국이 출자한 기금 및 자국통화로 이루어진 기금을 성립시키게 되는데, 이것이 <국제통화기금International Monetary Fund; IMF>이다. 그런데 이 경우 필요에 따라 각국에 융자되는 국제 결제수단은, 위에서 보았듯이 할당액에 따라 출자한 금 및 각국 통화다. 따라서 여기서는 금만이 국제 결제수단으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 외에도 각국의 통화가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들 각국의 통화 가운데서도 실제 가맹국의 통화준비로서 기능하는 것은 금과 교환 가능한 통화뿐이다. 예컨대 <기금협정> 제9조 ‘용어의 설명’에서 “가맹국의 통화준비란 가맹국의 금, 기타 가맹국의 교환 가능한 통화 및 기금이 지정하는 비가맹국 통화의 공적 보유액을 말한다.”는 것은 이러한 취지이다. 여기에서 IMF를 기축으로 한 통화 체제, 즉 IMF 체제하에서 정식으로 국제 결제수단으로 기능하는 것은 금 및 교환가능 통화이다. 이 가운데 교환가능 통화란 <기금협정> 제14조 제2항에 근거한 것인데 구체적으로 말하면 언제라도 금으로 태환될 수 있는 통화를 말한다. 그러므로 IMF 체제하에서 국제 결제수단으로서 기능하는 것은 결국 금 및 금환이 되고 이로써 IMF 가맹국은 금환본위제로 이행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금환본위제의 부활에서는 안정적인 외환거래가 보증되지 않으면 안 된다. IMF 체제하에서 고정환율제의 채용과 자유화 원리의 준수가 약속될 수 있었던 것은 이 때문이다. 금환본위제의 부활에서는 이 외에도 금 태환이 가능한 통화가 필수적이다. 전후 세계경제에서 미국의 압도적 지위로 인해 달러가 다시 이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은 필연적 경로였다. 이로써 달러가 금에 기반한 유력한 결제수단이 되고, IMF 체제하에서 특수한 지위를 점하기에 이르렀다.
Ⅱ. IMF 체제의 붕괴와 국제통화제도. IMF 체제하에서는 금과 달러가 유력한 국제통화로서 기능한다. 그러나 달러가 금과 함께 최종적인 국제 결제수단으로서 기능할 수 있게 된 것은 달러가 금으로 태환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한에서 IMF의 국제통화제도는 국제 금환본위제도라기보다는 오히려 국제 금지금 본위제(金地金本位制)라 해야 할 것이다. 예컨대 1967년 11월부터 1968년 3월에 걸친 국제 통화위기, 특히 달러 위기하에서 보인 연속 3회에 걸친 골드러시가 이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금이 유일한 국제 통화라는 것이 여기에서 폭로되었다. 더욱이 이 신용주의로부터 현금주의로의 돌연한 전환으로 인해, 당시까지 런던의 금자유시장에서 금가격의 급등을 억제하기 위해 체결되었던 금풀(Gold pool) 협정이 1968년 3월 급기야 파기되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런던 금자유시장에 대한 각국 통화당국의 개입은 중지되고, 필연적으로 금의 이중가격제가 채용되기에 이르렀다. 그와 동시에 또한 각국 통화당국이 미국 재무성으로부터의 금 인출을 자제함으로써 이는 사실상 금 태환의 정지를 의미하는 것이 되었다. 이로써 달러는 사실상 금환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1971년 8월 닉슨은 달러와 금과의 교환을 일시 정지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게 되고, 이로써 금에 기반하여 유력한 국제통화로서의 지위를 부여받았던 금환으로서의 달러가 그 기능을 정지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로 인해 전후 국제통화제도의 기축으로서 역할해 왔던 IMF 체제는 완전히 붕괴하고 말았다. 전후의 IMF 체제를 지탱해왔던 축의 하나인 고정환율제는 폐기되고 변동환율제로 이행하게 되었다. 또한 고정환율제의 보강수단이었던 금 가격의 고정제도는 금풀제도의 파기를 계기로 한 금의 이중가격제의 채용, 금의 공정 가격의 폐지를 통하여 완전히 블록화하기에 이르렀다. 이로써 국제통화제도는 이제 1930년대 초를 방불케 할 정도의 새로운 혼란기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변동환율제로의 이행 그 자체가 국제통화체제의 붕괴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러한 가운데서도 미국은 자신이 지녔던 지난날의 특권을 그대로 유지하려 하였고, 특히 환율을 자신에 유리한 방향으로 변화시켜갈 수 있었다. 그러나 이는 다른 한편 미국의 경쟁력 저하를 반영하는 것으로서 이의 반영 위에서 국제통화제도의 변동에도 불구하고 그 우위의 유지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편 1974~1975년의 공황에 의해 성립된 유로달러시장은 다국적 은행과 그에 기초한 다국적 자본이 운동할 수 있는 장을 형성함으로써 세계경제의 새로운 통합을 촉진하는 중요한 매개로서 역할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것은 1980년대 이후 세계경제의 변동과 관련하여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즉 오늘날 선진 자본주의 각국 간의 협조와 마찰의 동학(動學)은 이러한 변화 위에서 전개되는 것이다.
■ 인접어

국제분업(國際分業)
국제연합(國際聯合)
국제자유노동조합연맹(國際自由勞動組合聯盟)
국제주의
국제통화기금(國際通貨基金)
국제통화제도(전후)[國際通貨制度(戰後)]
군벌주의
군부(軍部)
군비축소(軍備縮小)
군사론과 마르크스주의
군산복합체(軍産複合體)

뒤로
■ 의견

 



HOME - 후원방법 안내 - CMS후원신청 - 취지문 - 사용 도움말 - 회원탈퇴하기

2002 노동자 전자도서관 "노동자의 책" 만들기 모임
120-702 서울시 중구 정동 22-2 경향신문 별관 202호 44
laborsbook@gmail.com
모바일버젼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