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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책(金策, 1903~51) (本)金洪啓] ()

(항일연군 제3군 정치부 주임, 중공 北滿臨時省委 서기) 함북 성진(현재 김책시)의 빈농 가정 출신으로, 김홍선(金洪善)의 동생이다. 어려서 북간도로 이주하여 용정(龍井) 동흥중학(東興中學)에 입학했다. 재학중 반일청년단체에 참가했다. 1927년 조선공산당 만주총국에 입당하여 연길현(延吉縣) 수신향(守信鄉)야체이까에 배속되었다. 10월 ‘제1차 간도공산당 검거사건’으로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1929년 서대문형무소에서 출옥했다. 1930년 10월 영안현(寧安縣)에 건립된 지방쏘비에뜨 임시정부 주석에 선출되었다. 1931년 중국 관헌에게 체포되어 심양(潘陽)감옥에 투옥되었으나 이후 곧 구출되어 중국공산당 빈현(賓縣) 특별 당지부 서기가 되었다. 1932년 9월 주하(珠河) 중심현위원회 군사위원이 되었다. 1935년 동북인민혁명군 제3군 제1독립사(獨立師) 제1단 정치부 주임, 1938년 제3군 정치부 주임이 되었다. 1939년 4월 중공 북만임시성위원회 서기가 되었다. 1943년 10월 동북항일연군 부대로서는 맨 마지막으로 만주에서 철수하여 소련 영내로 이동했다. 1944년 1월 항일연군 교도려(敎導旅, 소련극동방면군 제88보병여단)에 합류하여 제3영 정치위원이 되었다. 1945년 7월에 결성된 조선공작단위원회에서 간부로서 활동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부수상, 노동당 정치위원) 1945년 9월 김일성(金日成)과 함께 원산을 거쳐 평양으로 돌아와 10월 조공 북조선분국 결성에 참여했다. 1946년 2월 군간부양성소 평양학원 원장이 되었다. 8월 북조선노동당 결성에 참가하고 중앙위원 겸 상무위원이 되었다. 1948년 2월 북조선인민위원회 초대 민족보위국장이 되었다. 9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권 수립에 참여하고 내각 부수상 겸 산업상, 1949년 6월 조선노동당 정치위원이 되었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군사위원, 전선사령관이 되었다. 1951년 1월 31일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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