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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Feminism)

사람은 성별에 상관없이 사회・경제・정치적으로 동등하다는 신념을 뜻하며, 우리말로는 남녀평등 사상, 여성주의 등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또 그런 신념을 지니고 실천하는 사람을 페미니스트(feminist)라고 한다. 근대 서구에서 유래한 사상이지만, 현재는 세계 곳곳에서 여성의 권리를 위해 활동하는 다양한 조직과 개인이 존재하고, 페미니즘의 내용이나 방향도 다양하다. 여성이 역사적으로 억압과 배제를 경험했으며 그로 인해 생겨난 불평등한 성별관계를 바꿔야 한다는 믿음이 있는 경우 페미니즘이라고 호명한다.

‘페미니즘’이란 단어의 유래를 찾아보면, 1830년대에 프랑스의 공상적 사회주의자 푸리에 (Charles Fourier)가 처음으로 사용했다고 알려졌다. 19세기 중반 이후 ‘여성의 권리를 주창’한다는 뜻으로 페미니즘이란 단어가 언론에서 자주 사용되기 시작하였고, 영어권으로도 건너갔다. ‘페미니스트’라는 용어는 페미니즘 사상을 가지고 실천하는 사람이라는 뜻 이외에 다양한 용도로 쓰이기도 했는데, 1871년 프랑스의 의학 서적에서는 성징 발달이 지체되는 남성 환자의 징후를 ‘페미니스트’라고 표현했고, 작가 뒤마(Alexandre Dumas)는 간통을 소재로 쓴 글에서 남성처럼 행동하는 여성을 ‘페미니스트’라고 불렀다고 한다.

페미니즘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기 이전에도 페미니스트는 존재했다. 중세 프랑스의 철학자 드 피잔(Christine de Pisan)은 현대의 시각으로도 페미니스트로 평가할 만하다. 당시 여성으로 드물게 전업작가로 활동하며 잔 다르크와 샤를 5세의 전기를 집필했던 드 피잔은 여성의 지적 능력을 열등하게 보는 편견에 맞서 반론을 폈다. 그 후 계몽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자유・평등・자연권 사상은 남녀를 포함한 인간의 권리를 천명하는 계기가 되었으나, 계몽사상가 가운데에도 여성의 권리에 무관심하거나 루소처럼 여성을 남성의 보조자로 보는 이도 있었다. 프랑스 혁명 때 올랭프 드구즈(Olympe de Gouges)는 「인권선언」의 남성명사를 여성명사로 바꾸어 「여성시민 권리선언」(1791)을 발표했다. 드 구즈는 “여성이 단두대에 오를 권리가 있다면 연단에 오를 권리도 있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계몽사상의 계보와 연결되고 근대 페미니즘 사상을 체계화한 인물로 영국의 울스턴크래프트(Mary Wollstoncraft)가 있다. 울스턴크래프트는 『여권의 옹호』(1792)에서 만일 어릴 때부터 남성과 같은 수준의 교육을 받는다면, 여성도 자립해서 살아갈 수 있고, 사회도 개선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에서는 노예제 폐지운동에 참여한 여성들이 자신의 사회정치적 지위를 자각하면서 점차 페미니즘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는 항일독립운동의 시대에 최초의 여성운동 단체인 근우회가 창설(1927)되었다.

서구에서 페미니즘 사상에 바탕을 둔 조직적 여성운동이 시작된 것은 19세기 중반 들어서였다. 고대 그리스의 여성은 노예와 어린이와 마찬가지로 시민 자격을 갖지 못했다. 중세 유럽에서 여성은 귀족 신분이라 할지라도 재산・학문・직업・결혼에서 남성과 같은 권리를 갖지 못했다. 빅토리아 시대라 불리는 19세기 영국에서는 중간계급 여성은 ‘집안의 천사(Angel in the House)’로 불렸으나, 경제적・법적으로 독립된 인격으로 인정받지는 못했다. 여성은 아버지, 남자형제, 남편이나 변호사, 또는 아들을 대신 내세워야 사업을 할 수 있었다. 프랑스에서는 19세기 말까지도 여성이 공공장소에 나설 때 머리카락이 보이지 않게 가려야 했고, 서구에서도 일부 지역에서는 남편이 아내를 팔 수 있는 권리가 근대까지 지속되었다. 20세기 초 유럽과 미국에서 여성은 투표권도 입후보권도 갖지 못했다. 
제1차 여성운동은 여권운동이라고 하는데, 19세기 중반부터 제1차 세계대전 무렵까지 진행되었으며, 참정권・재산권・혼인・교육・직업 등에서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요구했다. 1848년 미국 뉴욕 주 세니커폴스(Seneca Falls)에서 300명 규모의 집회가 열렸고, 그 자리에서 노예제 폐지 운동가였던 스탠턴(Elizabeth Cady Stanton)을 비롯한 여성들은 여성 투표권을 포함해서 남녀 동등권에 관한 11개 결의안을 채택했다. 남녀 동등권을 주장한 근거는 미국 독립선언문의 ‘양도할 수 없는 개인의 권리’에 담겨 있었다. 1851년 해방노예이자 사회운동가인 트루스(Sojourner Truth)는 밭일하느라 팔뚝이 굵어지고 13명의 아이를 낳았지만, 진흙탕을 건널 때 여자라면 의당 받아야 한다고 여기는 보호의 손길을 받지 못하는 “나는 여자가 아닙니까?”라고 반문했다. 그의 짧은 연설은 여성운동 안의 계층・인종 격차를 드러내는 상징이 되었다.

영국에서 여성 참정권 운동은 오랫동안 의회 법안 제출과 청원 위주의 소수 엘리트 운동으로 진행되다가, 20세기 들어 대중운동으로 전환되었다. 1903년 결성된 여성사회정치연합(Women’s Social and Political Union, WSPU)은 납세 거부・항의 방문 등 시민 불복종 운동에서 시작해, 대규모 가두시위와 옥중 단식투쟁까지 주도했다. 그 무렵 이전 세대보다 교육을 많이 받고 직업도 갖게 되면서 복장이나 사고방식, 지향하는 생활도 모두 달라진 ‘신여성(New Woman)’이 등장해서 서구뿐만 아니라 비서구 지역에서도 볼 수 있는 시대 현상이 되었다. 양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여성 참정권이 확산되었다. 가장 먼저 여성 참정권이 부여된 곳은 1893년 뉴질랜드이며, 영국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 한국・일본・프랑스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스위스 여성은 1971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흑인 여성은 1994년에 비로소 참정권을 갖게 되었다. 러시아에서는 1917년 혁명 이후 참정권은 물론 가정 및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키는 개혁을 시행해서 안팎에 충격을 주었다.독일 사회민주당 출신의 체트킨(Klara Zetkin)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를 마르크스주의 시각으로 분석한 대표적인 이론가이자 운동가이다. 

제2차 여성운동은 ‘여성운동의 제2 물결(The Second Wave)’, ‘여성해방 운동’, ‘우먼리브[Women’s Liberation Movement의 준 말]’라고도 한다. 1960년대 미국에서 흑인 민권운동과 베트남전 반대운동에 참여한 여성들이 새로운 흐름의 동력을 제공했다. 중국의 사회주의 실험이나 민족해방운동에 참여한 베트남 여성들의 소식도 유럽과 북미의 지식인 여성에게 자극을 주었다.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가 쓴 『제2의 성』(1949)은 제1 세대와 제2 세대 페미니즘을 이어주는 교량 역할을 했다. 보부아르는 ‘흑인이 아메리카의 인종 차별주의자에게, 원주민이 식민주의자에게, 프롤레타리아가 유산계급에게 각자 타자인 것처럼, 여성이 남성에게 타자’가 되는 맥락을 분석했다. 프리단(Betty Friedan)의 『여성의 신비』(1963)는 대학 동문들을 직접 면담 조사해서 쓴 책인데, 고등교육을 받으며 키워온 자아와 아내나 어머니로서 요구되는 역할 사이의 괴리로 혼란스러워하던 중산층 주부들에게 자신을 설명할 언어를 제공해 주었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당시 구호에서 드러나듯이 위계적인 조직보다는 자발적인 소모임을 꾸리고 제도를 넘어서 일상에 존재하는 성차별을 제거하는 것이 주요한 관심사가 되었으며, 미인대회부터 성희롱・성폭력・성의 상품화 반대, 언어와 호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슈가 쟁점으로 등장했다. 동일노동에 대한 동일임금의 법제화 계기가 된 영국 대거넘(Dagenham)의 포드 자동차 공장의 여성 봉제노동자 파업(1968), 임신중절 필요 시 산모의 선택권을 인정한 미국의 로 대 웨이드(Roe vs. Wade) 대법원 판결(1973) 등 제도의 변화도 함께 진행되었다.

1975년 유엔은 ‘세계 여성의 해’를 지정하고 멕시코에서 평등・발전 평화를 주제로 한 세계여성대회를 개최했다. 국제적으로 페미니즘의 이상이 확산되는 한편, 여성운동 내부에서는 기존 주류 페미니즘이 백인 중산층 이성애 중심이었다는 비판이 나오고, 비서구 지역이나 유색인 여성도 각자의 입장에서 페미니즘을 재해석하는 백화제방(百花齊放)의 시기가 왔다. 1980년대에 들어 정치・경제적으로 신자유주의와 보수주의가 우세해지면서 페미니즘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인식이 강화되었다. 반면 한국에서는 1987년 이후 민주화의 영향으로 여성운동이 크게 성장했는데, 사회개혁 참여부터 가정폭력・성폭력 등 사적인 영역으로 여겨지던 문제까지 관심의 폭이 넓었다. 여성들의 연대에 상징적인 역할을 했던 호주제 폐지(2005) 이후 페미니즘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갈래의 흐름으로 나뉘어 전개되는 양상이 두드러지게 보인다.

[참고문헌]
로즈마리 푸트남 통, 이소영・정정호 옮김, 『페미니즘 사상』 (한신문화사 2000).
이재경 외, 『여성학』 (미래인, 2007).
정희진, 『페미니즘의 도전』 (교양인, 2005).
제인 프리드먼, 이박혜경 옮김, 『페미니즘』 (이후, 2002). 

출처 : 『역사용어사전(Dictionary of Historical Terms』, 서울대학교 역사연구소,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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