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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니즘] (Hellenism)

이 용어는 19세기 독일의 역사가 드로이젠(J. G. Droysen)이 알렉산드로스(Alexandros)의 동방 정복 이후 로마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Augustus)가 마지막 헬레니즘 왕국인 이집트를 로마의 속주로 만들기까지 대략300년의 시기를 묘사하면서 ‘헬레니스무스(Hellenismus)’, 즉 ‘그리스화’라고 표현하면서 나타났다. 

헬레니즘 시대 구분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쓰이는 것은 기원전 336년에서 기원전 30년이다. 기원전 336년은 알렉산드로스 3세가 왕위를 계승한 해이며, 기원전 30년은 이집트가 로마에 병합된 때이다. 이 기간에 그리스인은 마케도니아(Macedonia)와 그리스 및 이집트, 시리아 등 예전의 페르시아 제국의 영토 전역을 포괄하는 지역에서 주도권을 잡고 있었고, 그 문화는 후일의 로마제국과 그리스도교의 성장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헬레니즘 문화의 진정한 후계자는 서기 1453년에 그 수명을 다했던 동로마 제국, 즉 비잔티움 제국이었다. 

정치사적으로 헬레니즘 시대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방원정과 더불어 시작된다. 알렉산드로스는 기원전 334년, 마케도니아와 그리스 동맹군을 이끌고 헬레스폰투스(Hellespontus) 해협을 건너 소아시아로 넘어갔고, 기원전 330년 가우가멜라(Gaugamela)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페르시아 왕 다레이오스(Dareios)는 패주하여 베소스(Bessos)라는 태수에게 살해당했다. 승리한 알렉산드로스는 바빌론(Babylon), 수사(Susa), 페르세폴리스(Persepolis)로 진격하여 점령하였다. 그는 베소스를 죽이고, 페르시아 왕실의 공주 스타테이라(Stateira, 혹은 바르시네 Barsine)와 결혼하여 페르시아 왕가의 계승자가 되었다. 정복을 재개한 알렉산드로스는 동쪽으로 진군하여 인도에까지 도달하였다. 기원전 327년 인더스강에 이른 그는 북인도의 지배자 중의 하나였던 포로스(Poros) 왕을 패배시켰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군대가 그 이상 진군하기를 거부했고, 바빌론으로 돌아간 그는 기원전 323년 열병에 걸려 만 32세에 사망하였다.

알렉산드로스가 사망한 후, 적절한 후계자가 없었기 때문에 권력투쟁이 전개되었다. 그리고 마케도니아 장군들은 협의와 전쟁으로 그 유산을 나누어 가졌는데, 이들을 ‘후계자들(diadochoi)’이라고 부른다. 기원전 323년에서 입소스(Ipsos) 전투가 있던 기원전 301년까지가 ‘후계자들’의 투쟁기였다. 그 결과 알렉산드로스 제국은 3개의 강대국[마케도니아, 시리아, 이집트]과 나머지 군소 왕국들로 나누어졌다. 마케도니아는 여러 장군들의 투쟁 끝에 안티고노스(Antigonos) 왕조가 자리 잡게 되었다. 셀레우코스(Seleuchos)가 자신의 왕국으로 만들었던 시리아는 이집트와 일부 영토를 제외하고는 예전의 페르시아 제국의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한편, 프톨레마이오스(Ptolemaios) 1세는 이집트에서 자신의 왕조를 건설했다. 이 3대 강국은 서로를 견제하면서 헬레니즘 시대의 상당 기간을 소위 ‘세력균형의 시대’로 만들었다. 후일 이 3대 강국과 함께 주로 셀레우코스 왕국에서 분리된 군소 왕국 - 페르가몬(Pergamon), 박트리아(Bactria), 유다(Judah), 파르티아(Parthia) - 이 나타난다. 헬레니즘 시대에 그리스의 폴리스들은 독립적이고 독자적인 정책을 유지해 나가기 어려웠다. 그 대안으로 나타났던 것이 여러 폴리스들의 연합체인 ‘연방국가’였고, 그 대표적인 두 곳이 아카이아(Achaea) 연방과 아이톨리아(Aetolia) 연방이었다. 

헬레니즘 시대에 많은 그리스인이 근동의 도시들로 이주했다. 이들 도시의 명사들은 그리스어를 익히고, 다양한 범위로 그리스의 관습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런 ‘그리스화’의 영향력은 상류층에만 주로 해당되었고, 이 그리스 문화의 얇은 판 아래에는 토착문화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었다. 근동 문화와 그리스 문화가 새로운 헬레니즘 문화로 융합한 점은 거의 없었다. 그리스 폴리스들은 독립적이지 못하였고, 이 사실은 철학에도 영향을 미쳤다. 철학의 관심은 개인적인 책임과 윤리, 그리고 개인이 어떻게 해서 행복을 얻을 수 있는지 하는 문제로 옮겨졌다. 그중에 뛰어난 것은 스토아학파(Stoicism), 에피쿠로스학파(Epicureanism), 견유학파(犬儒學派, Cynicism)였다. 창설자인 제논(Zenon)이 학생들을 가르쳤던 채색회랑(彩色回廊), 즉 스토아 포이킬레(Stoa Poikile)의 이름을 딴 스토아학파는 감성에 대한 이성의 우위를 주장했다. 그들이 볼 때 행복이란 ‘마음의 안정’, 즉 아파테이아(apatheia)를 갖고 유지하는 데 있었다. 마음의 안정은 이성적인 힘에 의해 얻을 수 있고 유지되는 것으로서, 이성(logos)은 우주 전체에 널리 퍼져 있는 자연의 질서이기도 했고, 신(theos)과도 같은 성격의 것이었다. 인간이 이성에 따른 생활을 할 수 있는 방법은 덕이 있는 생활을 하는 것이었다. 에피쿠로스(Epicouros)는 쾌락, 즉 즐거움을 최고의 이상으로 간주하였다. 하지만 그에게 즐거움이란 방탕한 삶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열망과 두려움에서 스스로 해방될 때 얻어지는 것이었다. 에피쿠로스가 말하는 즐거움은 욕구를 만족시키는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욕구가 충족된 상태에서 나타나는 것이었다. 따라서 안정된 마음의 상태인 아타락시아(ataraxia)의 상태에 이르게 되어 나타나는 즐거움이 저급한 즐거움인 육체의 쾌락보다 더 중요했다. 한편, 그리스어로 견유학파의 철학자들을 ‘키니코이(kynikoi)’라고 불렀다. 이 말은 이 학파의 창시자로 간주되는 디오게네스(Diogenes)가 ‘개(kyno)’라는 별명을 가졌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디오게네스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안티스테네스(Antisthenes)가 가르쳤던 곳인 키노사르게스(Kynosarges)에서 따왔다고도 한다. 디오게네스는 모든 인습을 거부했고 아무것도 갖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부끄러움 없음(anaideia)’이라는 원칙을 실천하며 살려고 애썼다. 이 학파 사람들은 구걸하고 시장에서 설교하면서 여행하였다.

헬레니즘 시대에는 그리스 신들에 대한 관념도 바뀌고, 근동의 신들에 대한 숭배도 더 넓게 자리 잡게 된다. 세계를 움직이는 이성적인 힘을 주재하는 신이라는 일신교에 가까운 관념들이 지배적이었다. 한편, 고대 신들의 영향력 감소는 지배자 숭배의 출현에서도 볼 수 있다. 지배자는 구세주이자 은인으로서 살아 있는 신으로 간주되었다. 이 변화와 함께 헬레니즘 세계에서는 개인적인 종교가 널리 성행하였다. 대표적인 것으로 데메테르(Demeter) 여신을 숭배하는 엘레우시스(Eleusis) 비의(秘犠),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Ptolemaios) 왕조가 오시리스(Osiris) 숭배를 재구성한 사라피스(Sarapis, 혹은 세라피스 Serapis) 숭배, 후에 로마제국에서 널리 퍼진 미트라교(Mithraism)가 있다.

헬레니즘 시대의 예술은 리얼리즘을 추구한다. 고전기의 그리스 예술의 경향처럼 대상을 이상화하지 않고 보이는 대로 외양을 모사(模寫)하며, 그 대상의 격렬하거나 본질적인 감정을 보여준다. 한편, 건물 벽의 벽화 등으로나 쓰여서 오랫동안 건축의 보조물 정도로 여겨져 왔던 회화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헬레니즘 시대에 과학은 이집트, 특히 알렉산드리아에서 융성하였다. 알렉산드리아에 도서관도 포함하는 과학적 학문 기관인 ‘무세이온(Museion)’을 세운 프톨레마이오스 1세가 과학을 장려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일했던 학자들 중에 아리스타르코스(Aristarchos), 에라토스테네스(Eratosthenes), 아르키메데스(Archimedes)가 있다. 그리고 이들의 과학적 업적의 기반에는 에우클리데스(Euklides, 유클리드)의 수학공리의 집대성이 있다. 그가 내놓은 『원리 Stoicheia』는 이후의 수학과 과학에 큰 공헌을 하였다. 이 시대에 활약했던 의사로는 헤로필로스(Herophilos)와 에라시스트라토스(Erasistratos)가 있는데, 이들은 인체 해부를 통해 인체의 장기에 대한 지식을 크게 넓혀 놓았다. 이들은 모두 그리스인이었다. 그러나 천문학 분야에서 가장 위대한 학자들은 이집트와 바빌론에서 나타났다. 바빌론에서는 기원 1세기까지 쐐기문자로 천문 관측을 기록하였다.

[참고문헌]
월뱅크, 김경현 옮김, 『헬레니즘 세계』 (아카넷, 2002).
윤진, 『헬레니즘』 (살림, 2003).
Cary, M., A History of the Greek World from 323 to 146 BC, 2nd ed. (London, 1963).
Green, P., Alexander to Actium. The Historical Evolution of the Hellenistic Age (Berkeley, 1993).
Grimal, P. et al., Hellenism and the Rise of Rome (London, 1968).

출처 : 『역사용어사전(Dictionary of Historical Terms』, 서울대학교 역사연구소,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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