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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렘] (Harem)

아랍어 ‘haram’에서 변용된 하렘(harem)은 아카드어 ‘덮다, 숨기다, 분리하다, 보호하다’라는 의미의 ‘haramu(m)’에서 기원했다. 하렘은 ‘금지된, 보호된, 신성한, 불가침의’ 공간을 의미하며, 인도에서는 ‘자나나(zanana)’, 이란에서는 ‘안다룬(andarun)’으로 불린다. 다시 말해, 하렘이란 남녀 내외(內外)가 엄격하게 적용되는 신성한 장소로서 친척이 아닌 외간 남자의 출입이 금지된 구역을 말한다. 

더불어 공간적인 의미를 넘어 하렘에 거처하는 여자를 뜻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이곳은 여자들이 낯선 남자들과의 대면을 피할 수 있도록 일반적으로 안뜰을 향해 지어졌으며, 높은 담으로 둘러싸인 채 엄격한 통제를 받았다. 이슬람교 성립 이전에도 하렘과 같은 여성전용 공간은 세계 도처에 존재했다. 하지만 7세기에 이슬람이 등장하면서 남녀 내외법이 종교적 명령으로 규정되자, 이슬람 사회에서 남・녀 공간의 분리는 점차 제도화되었고, 상류층일수록 남・녀 격리제도는 엄격하게 준수되었다.

일반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하렘으로는 오스만 제국의 주궁(主宮)이었던 토프카프 궁(Topkapi Palace)의 황실 하렘 (Harem-i Humayun)이 있다. 외부인의 접근이 철저히 차단되었던 토프카프 궁의 황실 하렘은 서양인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풍문과 환상에 근거한 수많은 작품들을 양산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황실 하렘을 사치와 향락, 부패와 폭압이 지배하는 공간으로 묘사했던 서양인들의 기록은 대개 부정확하거나 과장된 측면이 많다.

초기 토프카프 궁의 황실 하렘은 여성들과는 상관없이 술탄과 그를 수행하는 시동(侍童, icoglani)들이 거주하는 공간이었으며, 그 규모도 소박했다. 황실 하렘의 규모가 커지고 본격적으로 체계화되기 시작한 시기는 무라드 3세(1574~1595) 때부터이다. 시기에 따라 차이가 있기는 하나, 황실 하렘에는 500~1000명 정도의 궁녀들이 상주하였으며, 엄격한 위계질서와 궁정예법이 준수되었다. 또한 황실 하렘은 황실 일원들의 거주공간이라는 단순한 의미를 넘어, 술탄 및 황실 가족을 보필할 궁녀들과 황실 남성이나 고위대신의 배우자가 될 여성들을 교육시키는 곳으로서의 기능도 수행했다. 따라서 황실 하렘에 입궁한 신참 궁녀들에게는 체계적인 교육이 제공되었으며, 어느 정도 교육기간이 지나면 개인의 능력과 미모에 따라 공식적인 직급과 책임이 주어졌다. 황실 하렘의 최고의 수장은 황태후(valide sultan)였으며, 실질적인 총책임자는 황태후를 보필하고 황실 하렘 내부의 일상 업무를 처리하는 재무상궁(hazinedar usta)이었다.

[참고문헌]
Necipoglu, Gulru, Architecture, Ceremonial and Power(Cambridge: The MIT Press, 1991).
Pierce Leslie, The Imperial Harem: Women and Sovereignty in the Ottoman Empire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93).

출처 : 『역사용어사전(Dictionary of Historical Terms』, 서울대학교 역사연구소,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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