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의 책 처음으로 | 사전 | 자유게시판 | 회원자료 | 로그인

 

       ■ 의견바로가기

[파시즘] (Fascism)

20세기 유럽에서 탄생한 근대적・혁명적・민족주의적인 이데올로기이자 운동이며 체제이다. 

이데올로기로서의 파시즘은 새로운 인간형을 주조하려는 인간혁명의 신화, 이를 토대로 새로운 민족공동체를 창조하려는 민족혁명의 신화, 그리고 나아가서는 전 유럽과 세계의 파시즘화를 통한 새로운 파시스트 문명 수립의 신화로 구성되어 있다. 서로 불가분의 관계로 얽혀 있는 파시즘의 이 세 가지 신화는 정치운동의 단계에서 정당의 조직과 이념 속에 반영되었으며, 권력을 장악한 뒤에는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전 영역에 걸친 대대적인 혁신, 그리고 제국주의적 침략 등으로 구체화되었다. 파시즘이 전체주의적 실험과 정치종교의 양상을 띠게 되는 것은 인간의 삶 자체와 인간공동체 전반을 변혁할 수 있다는 이러한 신화 때문이다. 또한 흔히 주장되는 것처럼 파시즘이 근대성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독자적인 방식으로 해석하고 수용한 이유 역시 그 혁명적 기획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파시즘의 전체주의적 근대성이라 부를 수 있는 이러한 경향이야말로 한편으로는 가공할 폭력성을 발산하는 원천이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대중의 지지를 확보하는 기반이었다.

파시즘은 양차 대전 사이의 기간에 이탈리아의 무솔리니(Benito Mussolini)가 이끈 정치 운동, 체제, 그리고 그 이데올로기를 일컫는 말이었다. 그러나 이후 파시즘은 시기적으로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공간적으로는 유럽뿐 아니라 아메리카・아프리카・아시아에 걸쳐 나타난 다양한 이념, 정치운동, 체제를 일컫는 매우 포괄적인 개념이 되었다. 여기에 덧붙여,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독재적이며 폭압적인 현상을 무차별적으로 파시즘이라 지칭하는 일상 용법 때문에 파시즘은 매우 모호한 개념이 되었다.

학자들 사이에서도 파시즘의 정의를 둘러싼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사실상 오랫동안 파시즘은 그 독자성을 인정받지 못했다. 적어도 1970년대까지 파시즘은 독자적인 이데올로기가 아닐 뿐더러, 정치운동의 단계든 체제의 단계든 할 것 없이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에 대한 일관된 전망과 계획을 가지지 못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따라서 파시즘의 성격을 주로 그것이 반대한 측면, 즉 반마르크스주의・반자유주의・반민주주의・ 반의회주의・반개인주의 등에서 찾거나, 파시즘을 기회주의적인 선전・선동 정도로 보고 파시즘에 대한 대중의 지지는 기만과 현혹의 결과로 단순화하는 경향이 학계와 일반인들 사이에서 널리 유포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들은 이데올로기로서, 정치운동과 체제로서 파시즘이 독자적인 정치관・인간관・세계관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비록 자유주의, 마르크스주의와 같은 이데올로기에 비해 행동주의적이며 반지성적・반이론적 경향이 강하고 체험과 실험을 중시했음에도 불구하고, 파시즘 역시 자체의 정신적 태도, 신념, 가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 이처럼 파시즘의 독자성과 정체성을 인정하는 것이 교묘한 방법으로 파시즘을 복권하려는 시도라는 비난은 이제 더는 설득력을 얻지 못한다. 오히려 그와 같은 인식은 파시즘의 가공할 폭력성뿐만 아니라, 대중들을 향해 발산한 호소력을 밝히는 데 필수적이다. 파시즘이 추구한 전체주의적 근대성이 대중의 열망을 어떻게 반영했는지, 또 대중은 어떻게 그것을 수용하고 협상하며 또 저항했는지 밝히는 작업 없이는 파시즘을 충분히 이해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파시즘의 인간관과 세계관을 지배한 것은 인간혁명과 민족혁명의 신화이다. 파시즘은 민족공동체가 총체적인 파국에 처했다는 위기감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러한 위기는 혁명을 통해 극복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미래를 창조할 수 있는 기회로 여겨진다. 파시즘에서 민족공동체는 일종의 유기체이다. 파시즘은 모든 유기체와 마찬가지로 민족공동체 역시 병들고 쇠약해지지만, 만약 병균을 제거하면 다시 건강을 되찾을 수 있다고 믿었다. 파시즘의 이른바 ‘반운동(反運動, anti-movement)’으로서의 성격뿐 아니라 그 유래 없는 폭력성 역시 이러한 유기체적 민족 개념과 맞닿아 있다. 마르크스주의・자유주의・민주주의・개인주의・ 합리주의・의회주의・물질주의・국제주의・유태인・집시・동성애자・장애인 등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과 폭력의 행사가 단순히 허무주의적 광기가 아니라, 회복과 치유를 넘어 갱생을 위한 창조적 파괴로 여겨진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점에서 파시즘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유럽의 보수주의적인 민족주의와 다르다. 물론 보수주의적 민족주의 역시 특정 이념이나 집단을 제거하면 강건한 민족공동체의 복원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그러나 파시즘은 이러한 보수주의적 민족주의의 신화를 훨씬 넘어서 있다. 무엇보다도 파시즘과 보수주의적 민족주의는 근대화와 근대성에 대한 태도에서 근본적인 차이를 드러낸다. 보수주의적 민족주의에게 근대화는 전통적인 믿음과 확실성을 위협하고, 민족공동체에서 개인을 격리시키며 익명의 군중으로 만드는 부정적인 현상이었다. 그러므로 보수주의적 민족주의의 궁극적인 목표는 근대화로 파괴된 민족공동체를 조화롭고 영광스러웠던 상태로 복귀시키는 것이었다. 반면 파시즘은 근대화와 근대성 자체를 거부하지 않았다. 오히려 파시즘은 근대화가 위기이자 동시에 민족 재생을 위한 혁명적 변화의 기회로 보았다. 달리 말하면, 파시즘은 근대화의 일부 측면들을 선별적으로 채택함으로써 한편으로는 그것이 가져올 폐해를 차단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근대화의 다른 측면들을 이용해 새로운 민족공동체를 구축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예컨대, 파시즘은 마르크스주의, 자유주의, 의회주의, 물질만능주의와 향락적 이기주의, 개인주의와 같은 근대성의 측면들을 거부하면서, 동시에 근대화가 발산하는 활력과 에너지를 이용하여 새로운 미래를 창조할 수 있다고 믿었다. 사실상 파시즘은 또다른 근대성, 혹은 대안적 근대성을 추구했으며, 이 점에서 파시즘은 정치적 모더니즘의 일종으로 분류될 수 있다.

파시즘이 추구한 대안적 근대성은 민족공동체의 구성원을 새로운 인간형, 즉 호모 파시스투스(Homo fascistus)로 개조하려는 인간혁명의 기획과 직결된다. 파시즘의 민족혁명과 인간혁명의 신화는 상호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으로, 민족공동체를 타락하게 만든 병균들을 제거하는 차원을 넘어 공동체 구성원 자체의 성격과 의식과 정서를 전반적으로 바꾸는 인간 개조 없이는 새로운 민족공동체의 건설 역시 불가능하다는 신념의 표현이다. 그러므로 파시즘에서 민족공동체의 구성원들을 전투정신과 남성다움, 희생정신, 동료애와 규율로 무장해 언제든 자신을 공동체를 위해 전적으로 헌신할 수 있는 새로운 인간형으로 만드는 인간혁명은 새로운 민족공동체 건설에 필수적이었다. 이처럼 인간에게서 그 개성과 독자성을 박탈하고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의 정체성만을 부여하려는 파시즘의 인간혁명의 기획은 주로 의식혁명, 혹은 정신혁명, 도덕혁명의 양상을 띠었으며. 그 궁극적인 목표는 근대적인 파시스트 인간형이었다.

이데올로기, 정치운동, 체제의 단계에서 파시즘이 발산하는 강력한 종교성은 인간과 사회를 전반적으로 개조하려는 전체주의적 실험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파시즘의 종교성은 제1차 세계대전의 경험과 그것을 독자적인 방식으로 수용한 결과였다. 파시스트들에게 대량 학살과 수백만의 병사들의 죽음을 초래한 세계대전의 참혹한 경험은 오히려 새로운 종교성을 체험하고 확인하는 계기로 여겨졌다. 전선은 수많은 동지들의 피가 뿌려진 위대하고 신비로운 공간이었으며, 전선에 선다는 사실 자체가 신성한 체험으로 여겨졌다. 전선에서의 삶은 강인한 동지애로 하나가 되어 조국과 민족이라는 초월적인 대상을 위해 헌신하는 운명공동체를 체험하고, 또 그러한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거듭나는 종교적 각성을 의미했다. 파시즘의 탄생을 주도했던 세력이 제1차 세계대전의 퇴역 군인이었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이들에게 국가와 민족과 같은 정치적 실체는 인간 삶의 모든 측면을 개조하고 혁신하는 힘으로 받아들여졌다. 파시즘이 정치에 최고의 권능을 부여하고, 민족혁명과 인간혁명을 주도할 초월적 주체로 신성시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다. 이 점에서 파시즘은 정치의 신성화, 좀 더 정확히는 정치종교의 한 양상으로 규정될 수 있다. 

정치운동의 단계에서뿐 아니라 권력을 장악한 다음에 시도된 다양한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실험은 파시즘의 전체주의적이고 정치종교적인 기획들이 구체화된 것이다. 먼저 파시즘은 인간혁명과 민족혁명을 실현시킬 준군사적 성격의 정당을 결성했다. 파시스트당은 다양한 계층들이 혼재했지만 중간계급 출신이 핵심을 이루었고, 기성 정치에 관여한 적이 없는 청년들이 중심이 되었다. 또한 그 정체성을 사회적 서열이나 계급에 두지 않고 동지애와 파시스트 혁명에 대한 열정과 헌신성에 두었으며, 정치행위를 일종의 전쟁이라 간주하고 정치적 경쟁자들은 파멸시켜야 할 내부의 적으로 여겼다. 한편으로는 테러를 바탕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적 책략과 지배계급과의 협상을 바탕으로 집권에 성공한 파시즘은 지도자를 중심으로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고 사회를 재조직하여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경계를 허물고, 대중의 삶 깊숙이 침투하여 인간혁명을 완수하고 민족공동체의 재생과 부활을 이룩할 뿐 아니라, 국경을 넘어 파시스트 혁명을 전파하는 제국주의적 팽창을 실현하려 했다.

정치와 사회를 재구성하려는 파시즘의 시도는 다른 한편으로는 파시즘의 종교성을 제도화함으로써 전체주의 혁명을 효과적으로 추진하려는 기도이기도 했다.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존재로서 명령과 중재를 통해 군림하는 지도자, 그 지도자로 구현되는 국가, 그 국가를 수호하고 떠받치며 대중을 국가가 주도하는 전체주의 혁명에 영속적으로 동원하는 임무를 띤 유일 정당으로서의 파시스트당, 그리고 파시스트당이 중심이 되어 어린이에서부터 노년, 여성에서 남성에 이르기까지 전 인구를 통제하고 훈육하며 동원하는 온갖 종류의 대중조직, 사유 재산과 계급 구분을 철폐하지 않으면서도 계급 사이의 갈등을 없애고 국가의 통재 아래에서 이른바 생산자들 사이의 협력에 바탕을 둔 경제조직의 건설 등은 인간혁명과 민족혁명을 완수하고 침략과 정복을 통해 수립할 새로운 파시스트 문명의 신화를 신봉하도록 만드는 거대한 파시스트 신전을 건설하려는 시도와 다르지 않았다.

사실상 파시즘은 20세기의 어떠한 체제보다도 다양한 매체를 동원하여 방대한 양의 상징과 이미지를 생산하고 유통시켰다. 이러한 파시즘의 문화적 공세는 흔히 파시즘의 허위의식을 은폐하려는 속임수 정도로 여겨졌다. 그러나 파시즘이 만들어낸 이미지와 상징은 의도적으로 기획된 정치종교의 의례와 의식의 일부였다. 이러한 의례와 의식은 대중에게 파시즘의 종교성을 깊이 각인하기 위한 노력이자, 대중과 지배체제 사이의 소통의 통로였다. 그것은 대중의 열망과 두려움, 그리고 증오와 희망을 자기 식으로 해석함으로써 만들어낸 새로운 인간형, 강건한 민족공동체, 새로운 문명의 비전을 대중이 상상하고 직접 느끼게 함으로써 이들을 파시스트 종교의 신도로 개종하려는 시도이다.

물론 정치종교로서의 파시즘이 추구한 대중주의가 어느 정도로 성공했는지를 가늠하는 일은 쉬운 작업이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독일과 이탈리아의 파시즘 모두 내부로부터의 공격이 아니라 패전으로 붕괴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민족공동체의 적으로 간주된 개인과 집단에 가해진 테러와 폭력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적극적인 지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무관심하거나 방관했다는 사실, 전후 유럽 각지에서 다시 고개를 든 신파시즘과 극우파의 득세라는 현실 앞에서 파시즘의 신화가 대중을 향해 발산했던 매력과 호소력을 과소평가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참고문헌]
김수용 외, 『유럽의 파시즘: 이데올로기와 문화』 (서울대학교출판부, 2001).
김용우, 『호모 파시스투스: 프랑스 파시즘과 반혁명의 문화혁명』 (책세상 2005).
빌헬름 라이히, 황선길 옮김, 『파시즘의 대중심리』 (그린비, 2006)
임지현・김용우 엮음, 『대중독재』 전3권 (책세상, 2004-2007).
조지 L. 모스, 임지현・김지혜 옮김, 『대중의 국민화』 (소나무, 2008).

출처 : 『역사용어사전(Dictionary of Historical Terms』, 서울대학교 역사연구소,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5
■ 인접어

파라켈수스
파르메니데스
파링톤
파블로프
파스칼
파시즘
파시즘의 철학
파이힝거
파토스
파트로나토 레알
파트리찌

뒤로
■ 의견

 



HOME - 후원방법 안내 - CMS후원신청 - 취지문 - 사용 도움말 - 회원탈퇴하기

2002 노동자 전자도서관 "노동자의 책" 만들기 모임
120-702 서울시 중구 정동 22-2 경향신문 별관 202호 44
laborsbook@gmail.com
모바일버젼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