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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家族] (Family)

가족은 결혼과 혈연을 통해서 구성된 생활 공동체로서 부모와 자녀를 근간으로 한다는 점에서는 변화가 없었지만, 서구 문화권의 가족의 경우 구성원의 범위, 구성원간의 내적인 구조, 사회적 기능 등은 경제·정치·종교 등 여타의 제도들과 가족이 맺고 있는 관련성에 따라 역사적으로 변모해 왔다. 가족의 어원 자체는 이러한 변화 과정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가족의 어원은 라틴어 파물루스(famulus), family(영어), famille(프랑스어), famiglia(이탈리아어), Familie(독일어), familj(스웨덴어), família(포르투갈어), familia(스페인어) 등 유럽 전역에서 공히 활용되고 있다. Famulus는 부모와 자녀라는 현재적 의미의 가족이 아니라, 부인·자녀·노예와 가축을 망라하는 한 남성(paterfamilias)의 소유물 전체를 지칭하였다. familiapater는 모두 친족 관계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지배 관계를 지칭하는 말이었으며, 생물학적인 아버지를 가리키기 위해서는 pater가 아니라 genitor가 사용되었다.

1877년 루이스 모건(Lewis H. Morgan)이 그의 저서 고대사회에서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의 변화가 원시에서 문명으로 진화하는 과정에 수반된다고 주장한 이래, 이 서유럽 핵가족 모델은 서양 근대의 가족제도를 설명하는 중심적인 틀로 자리잡아 왔다. 부모와 자녀에 더해 결혼하지 않은 친척들, 그리고 견습공들을 포함하는 가족 형태가 중세 이래로 지배적이었지만, 산업화·도시화 및 중간계급의 성장과 더불어 공동체 사회로부터 분리되어 부부가 중심이 되는 근대 가족이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산업화와 더불어 가족과 작업장이 분리된 이 가족 안에서 남성은 가족의 부양자로 정의되었다.

한편, 여성에게는 어머니, 배우자, 주부로서의 역할이 부여됨과 동시에, 그들의 활동이 노동으로 여겨지지 않게 되는 등 여성의 사회적 배제가 뒤를 이었다. 이러한 유럽의 핵가족 모델은 유럽의 자본주의 발전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고 여겨져 왔다.

그러나 최근의 가족사 연구는 이와 같은 경제적 변화를 중심으로 한 진화론적 설명 틀을 부정하고, 지역에 따라 특유한 가족 모델이 있음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북서 유럽 지역에서는 평균적인 결혼연령이 높아서 자녀의 수가 적었고, 산업화 이전 시기에도 두 세대로 이루어진 핵가족이 지배적이었다. 실제로 전()산업화 시기 가구 구성원 수는 영국에서 5, 프랑스와 독일에서는 5~6명 정도로, 여러 세대 또는 혈연 이외의 성원으로 이루어진 가족 패턴은 산업화 이전의 농촌에서도 예외적인 경우에 속했다는 것이다. 반대로 결혼연령과 결혼비율이 모두 낮았던 동부 유럽의 경우, 여러 세대로 구성된 복합적인 가계가 일반적이었다. 그 외 지중해 지역의 경우에는 토지 소유권 문제로 인해 결혼한 아들들과 부모의 동거가 일반적이었고, 그리스 등 지중해 동부 지역의 경우 어업의 위험성으로 인해 모계가 주축이 된 가구 구성 및 유산분배 방식이 형성되었다.

이에 따라 동부 유럽 지역의 경우에는 가장 연장인 남성이 가족의 주도권을 쥐고 있었던 반면, 북서 유럽의 경우 농장 후계자가 결혼할 경우 연장자가 은퇴하거나 가구가 분할되는 것이 일반적인 양상이었다. 이는 현재까지도 유럽의 가족 패턴으로 이어져, 북서 유럽 지역의 경우 장성한 자녀가 부모와 함께 거주하는 비율이 지중해 지역이나 동부 유럽 지역 보다도 훨씬 낮음을 볼 수 있다.

차세대를 생물학적·사회적으로 재생산하여 사회질서 유지의 근간이 되어 온 가족을 유지하는 것은 사회의 종교 및 정치 지배자들에게 있어 중요한 과제일 수밖에 없었다. 중세 이래 기독교 교회에서는 엄격한 기독교적인 성도덕을 강제했을 뿐만 아니라, 결혼이나 출생 등을 관장하는 7성사(七聖事)를 제도화해서 가족의 일상을 장악하고자 했다.

근대 초 국민국가가 성장해 감에 따라 가족에 대한 교회의 영향력은 감소하고, 점차 국가가 법적인 규제를 통해서 영향력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1784년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제국에서 결혼은 시민들간의 계약이며, 이에 대한 권력은 교회가 아니라 국가와 법정에 있다고 선언했던 것은 대표적인 예이다. 특히 프랑스 혁명의 격동기 이후 유럽 가족제도의 틀이 될 여러 장치들이 체계화되었다. 이 시기에 최초로 가족법정이 신설되고 이혼을 합법화했는가 하면, 기혼 여성에 대한 재산권을 허용하고, 가장의 가부장적 권위를 완화하는 등 가족과 관련된 향후 유럽 정부의 활동에 중요한 선례들이 입안되었다.

19세기 이후 근대적인 정부기구가 공고화 되어 감에 따라서 가족에 대한 국가의 규제도 확대되었다. 1837년 영국에서 최초로 포괄적인 이혼법이 제정되는 등 결혼과 이혼, 기혼 여성의 재산권 등에 있어서 세속화·자유화 경향이 두드러졌는가 하면, 공공교육, 공공위생 체제는 가족생활에도 영향을 미쳤다.

20세기 들어서 가족에 대한 국가의 개입이 증대하게 된 결과, 국가가 특정한 목표를 가지고 가족의 구조에 영향을 미치는 가족 정책은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 행정의 일부가 되었다. 40만에 달하는 강제 불임 시술을 행할 정도로 가족의 문제에 개입했던 나치는 극단적인 경우에 속하지만, 20세기 전반기 유럽 대부분의 국가들은 낙태 규제 혹은 합법화, 가족수당 등을 통해서 가족 구성원의 재생산에 적극 개입했다.

1960년 후반 이후에는 한편으로 이혼 자유화, 동성애 인정, 동거에 대한 법적 인정 등 가족에 대한 개인의 선택권이 증대되는 경향이 두드러졌고, 다른 한편으로 가정폭력, 아동복지 분야에 대한 국가 개입이 증대되는 경향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가족에 대한 외적 규제의 틀이 변모하게 됨으로써 가족 내부의 관계에도 심대한 변화가 나타났다. 유럽 가족의 내적 구조를 특징짓는 것은 가장이 여성과 자녀, 하인 등 가족 구성원에 대한 지배력을 갖는 가부장제였다. 고대 이래 존재해 왔던 가부장제는 가정 내 가장의 지위를 강화함으로써 국가 내에서 국왕의 지위를 공고히 하고자 했던 절대왕정주의, 가부장적인 가정을 사회의 근간으로 보았던 프로테스탄티즘(protestantism), 그리고 시민의 범주를 남성으로만 한정했던 계몽사상을 통해서 강화되었다. 그 결과 현재까지도 유럽의 가족 질서를 특징짓는 중요한 하나의 축으로 남게 되었다.

가족 내 가장의 질서를 공고히 하고자 했던 히틀러, 무솔리니, 스탈린 등 전체주의 체제뿐만 아니라, 남성을 가장으로 하고 여성을 주부로 하는 가족 모델에 근거한 제2차 세계대전 후의 각종 사회복지 정책 역시 이러한 가부장적 가족 질서를 정당화하는 데 기여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산업화와 더불어 여성의 고용이 증대되고, 여성 참정권 운동을 비롯한 여성들의 정치활동이 증대됨으로써 구래의 가부장적 질서에 도전하고 있는 현상은 유럽의 가족 질서를 특징짓는 다른 하나의 축이 되었다.

가족 내부의 권력 구조뿐만 아니라 부모의 사랑 혹은 부부애 등 가족 내부의 애정관계 역시 역사적 연구의 중요한 주제로 떠오르고 있다. 프랑스의 역사가 필립 아리에스(Philippe Ariès)는 유아와 성년 사이를 가리키는 아동기가 17세기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으며, 높은 유아 사망률로 인해 부모와 자식 간의 감정적 유대가 낮았다고 주장함으로써 이러한 연구의 서막을 장식했다. 이후 유모의 존재, 유아 유기 등을 근거로 하여 모성애 역시 자연적인 현상이라기보다는 역사적인 변화의 산물이라는 연구들이 잇따라 아리에스의 이론을 뒷받침했는가 하면, 그가 20세기의 아동관을 중세 유럽에 투영했다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한편, 17세기 이래 결혼의 조건으로서 사랑의 감정이 중시되었으며, 이는 영혼의 결합을 중시하는 퓨리터니즘(puritanism), 혹은 자본주의적인 개인주의화의 결과라는 연구도 있다. 반면 사랑이 발현될 수 있는 인간관계의 조건 자체가 역사적으로 변화해 왔음은 분명하지만, 부부애가 17세기 이후의 발명품은 아니라는 비판이 이는 등, 가족 내 감정의 역사는 현재 역사학계의 중요한 관심사 중 하나이다.

가족이 하나의 생산 단위로 기능하지 않게 되면서 경제적인 기능을 상실했고, 사회적인 지위와 역할을 부여하던 전통적인 가족의 역할에서도 멀어지는 등, 근대 이후 유럽의 가족은 여러 가지 기능들을 상실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가족 기능의 변화는 가족 구성원의 축소로도 나타나서, 자녀 없는 결혼, 한 자녀 가정, 결혼 자체의 후퇴, 이혼의 증가, 동거 확산 등이 전 유럽 국가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에 따라 동성애 가족인 무지개 가족, 비혼 동거, 주말 가족, 패치워크 가족 등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출현하였으며, 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정상 가족모델은 그 문화적 지배력을 점차 상실하게 되었다. 문수현

 

참고문헌

Gestrich, Andreas, "Familie", Richard van Dulmen(ed.), Das Fischer Lexikon Geschichte (Fischer, Frankfurt am Main, 2003), pp. 180-198.

Stearns, P. N, et al.(eds.), Encyclopedia of European Social History from 1350 to 2000, vol. 5 (New YorkCharles Scribner’s Son, 2001).


출처 : 『역사용어사전(Dictionary of
Historical Terms)』, 서울대학교 역사연구소,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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