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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스바트 결의] (Karlsbader Beschlüsse)

오스트리아 재상 메테르니히의 주도로 1819년 8월 6일부터 31일에 걸쳐 카를스바트에서 열린 독일 연방 대신회의(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을 포함하여 9개국이 참가)에서 가결된 자유주의 탄압 결의. 메테르니히는 이에 앞선 8월 1일에 테플리츠에서 프로이센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Ⅲ세와 대학과 출판의 철저한 속박을 내용으로 하는 비밀협정을 맺고 프로이센을 수습하였으며, 당시 고양되고 있던 대학생 학우회 운동과 학생 잔트(KalrLudwig Sand 1795-1820)에 의한 코체부 살해사건(1819년 3월) 등 독일정부에 주어진 충격을 이용하여 탄압을 시도했다.

그리고 9월 20일에 프랑크푸르트 연방의회는 대신회의에 기초한 이 결의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그 내용은 (1) 군주제 유지를 위한 조치, (2) 대학 및 교수를 감독하기 위한 조치, (3) 특별한 검열규정을 지니는 출판조령의 포고, (4) 이른바 데마고그에 대한 중앙의 조치 및 마인츠 최고심문위원회의 설치로 이루어진다. 프로이센에서는 10월 18일에 필요한 시행규칙을 덧붙여 국왕포고에 의해 실시되었다.

카를스바트 결의는 헤겔의 동료인 데 베테의 해직을 둘러싼 슐라이어마허와의 대립, 헤겔의 제자들의 잇따른 체포 등 헤겔의 신변에 곤란한 상황을 산출했지만, 특히 이 결의의 검열조항이 바로 이 시기에 전념하고 있던 『법철학』 집필에 심각한 영향을 주었다고 지적하는 연구도 있다. 왜냐하면 특히 10월 18일의 프로이센의 신검열포고는 엄격하게 "지금까지 학술기관과 대학에 주어져온 검열의 자유는 이 이후 5년을 기한으로 정지된다"고 하여 모든 서적이 검열을 통과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법철학』은 늦어도 1819년 3월에는 착수되어 가을에는 완성될 예정이었지만 많이 늦어져 '서문'을 덧붙여 완성된 것은 1820년 6월의 일이었다.

이렇듯 완성이 지연된 배경에서 일팅(Karl-Heinz Ilting 1925-84)은 카를스바트 결의의 심각한 영향을 보면서 헤겔의 사상적 입장의 변경과 저작의 개작이라는 가설을 제기했다. 즉 "헤겔이 카를스바트 결의와 프로이센에서의 그 포고의 영향하에서 정치적으로 자신의 방향을 전환하고 이미 교정 중이던 『법철학』을 1819년 10월과 1820년 6월 사이에 개작하여 그것이 결과적으로 복고정치에 대한 비본질적이지 않은 순응으로 되었다"[Ilting, 102]는 것이다. 일팅의 이러한 문제제기는 그의 헤겔 '법철학' 강의록에 관한 연구와 더불어 『법철학』 성립에 관한 연구의 심화에 기여하는 것이었지만,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 대해 헤겔은 검열 조치의 추이를 주의 깊게 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있었긴 하지만, 다른 저작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써나가고 있었다는 지적도 있다(Lucas,Henrich).

-미즈노 다츠오()

[네이버 지식백과] 카를스바트 결의 [-決議, Karlsbader Beschlüsse] (헤겔사전, 2009. 1. 8., 가토 히사다케, 구보 요이치, 고즈 구니오, 다카야마 마모루, 다키구치 기요에이, 야마구치 세이이치, 이신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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