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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2] (Geist)

Ⅰ. 체계 시기에서의 정신 개념. 헤겔 철학의 중심 개념. 정신이 자기로 귀환한 것인 좁은 의미의 정신만이 아니라, 논리-자연-정신의 체계 전체를 관통하는 근원적 실재. 그것은 우리 인간과 무관계한 신비한 것이 아니다. 세계 내에서 자기를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인간이 산출하는 것과 내용적으로 합치된다. 그것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공동적인 것이다. 이것은 인류의 경험 축적이라고 이해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개념은 일반적으로 개별적인 것을 넘어서서 이것들을 연결하는 것으로서, 원래의 그리스 어 πνεμα(프네우마)의 의미인 '숨'이 전화된 것이지만, 헤겔의 정신 개념은 이러한 사정을 잘 나타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1) 정신의 본질. 정신의 본질은 "타자존재에서 자기 자신 곁에 있는"[『철학사』 18. 41] 것, 즉 "자유, 자기와의 동일성으로서의 개념의 절대적 부정성"[『엔치클로페디(제3판) 정신철학』 382절]으로 규정된다. 이것은 거기에서는 개념이 "자기의 완전하게 외적인 객관성"[같은 책 381절]을 지니게 되는 자연과 대비되는 규정이다. 따라서 자연과의 관계의 존재방식이 정신의 본질규정에서 문제로 된다. "정신 일반의 규정성에는 우선 자연의 규정성이 대립하고 있다.

그런 까닭에 전자는 다만 후자와 동시적으로만 파악된다"[같은 책 381절 「보론」 10. 18]. 그러나 그것은 단지 자연에 대립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관념성, 이념의 타자존재를 지양하는 것, 이념이 자기의 타자로부터 자기로 귀환하는 것 내지 귀환하고 있는 것"[같은 곳]으로서 표시되며, '이념의 타자존재'로서의 자연을 지양하는 운동이다. 따라서 정신이 자연에 의해 매개되어 있다는 것은 가상에 불과하며, 정신은 자기가 그것에 의해서 매개되어 있는 것처럼 보는 것을 지양하며, 자기에 의해서 존립하는 것으로 깎아 내린다.

따라서 "자연으로부터 정신으로의 이행이나 어떤 것의 다른 것으로의 이행이 아니라, 자연에서 자기 밖에 있는 정신이 자기 자신으로 귀환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같은 책 10. 25]. 따라서 정신은 자연과 구별되는 좀더 고차적인 단계일 뿐만 아니라 이것들을 포함하는 절대자 그 자체로서 파악되고 있다. 즉 정신은 최고의 단계로서 체계의 한 부분일 뿐만 아니라 이 체계 전체를 관통하는 근원적 실재인 것이다.

(2) 정신의 역사성. 자연으로부터 정신의 해방은 역사를 구성한다. 즉 정신은 역사에서 자기를 현시한다. "세계사는 어떻게 정신이 그것 자체인 바의 것에 대한 지를 그것이 스스로 획득하는가 하는 서술이다"[『역사철학』 12.31]. 여기서 정신은 자기에게 도달하는 운동으로서 국민정신들을 계기로 하는 세계정신으로 된다. 그것은 자기의 개념을 실재화시키는 목적론적인 과정에서 나타난다. 이 과정은 역사를 닫히게 하는 것이라고 비판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에서 모든 인간이 자유의 의식을 획득하고 역사의 과정을 자기 자신의 외화와 그 회복으로서 파악하는 것은 그 어떤 신비적인 것이 아니다. 이것은 모든 인간이 역사의 주체로서 등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기가 산출하고 있는 것을 의식에 가져온다는 것은 역사 형성의 의식이 심화되는 것으로 이해된다. 역사 또는 세계사의 고찰은 정신의 실재화의 인식을 지향하는 한에서 "신의론()"[같은 책 12. 28]이다.

(3) 절대자 · 신으로서의 정신. "절대자는 정신이다"라는 것이 "절대자에 대한 최고의 정의"[『엔치클로페디(제3판) 정신철학』 384절]라고 하듯이 정신은 헤겔에서의 절대자를 나타낸다. 그것은 기독교의 신을 나타내는 것이다. "신은 정신이다"[『종교철학』 16. 38]. 아버지인 신은 자연을 창조하고 그의 다른 자아인 아들을 산출하며, 이 타자 속에서 무한한 사랑을 지니고서 자기 자신을 직관하고, 자기와의 통일로 귀환한다. 이 통일이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나와 교단에서 완전한 현실성과 진리에 도달하는 성령(Heiliger Geist)이다[『엔치클로페디(제3판) 정신철학』 381절 「보론」 10. 23]. 이러한 삼위일체의 규정에서 헤겔에 의한 기독교 이해가 나타나 있다. 헤겔의 신학적 표상은 정신이라는 술어를 매개로 하여 그 철학 전체에 미친다. 기독교에서 표상으로서 주어진 것을 개념에서 파악하는 것이 철학의 과제이다.

Ⅱ. 정신 개념의 발전사. 이 개념의 성립을 파악하는 것은 그의 철학의 고유한 입장을 파악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특히 예나 시대에서 생겨난 스피노자주의적 입장으로부터 주관성이론으로의 이행을 명확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1) 초기. 이 시기에 정신 개념은 체계 시기에서와 같은 그의 철학의 핵심을 이루는 개념으로서의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았다. 이 개념은 베른 시대까지는 계몽주의적 역사연구에서 몽테스키외와 헤르더적인 용법에 따라 사용되었다.

이에 반해 그의 철학을 핵심을 이루는 개념으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던 것은 특히 프랑크푸르트 시대에서 근원적 실재로서의 '생'이었다. "무한한 생을 추상적인 다수성과는 반대로 사람들은 정신이라고 부를 수 있다. 왜냐하면 정신은 그것의 형태로서의 다양한 것과는 반대로 다양한 것의 살아 있는 합일이기 때문이다"[『1800년 체계 단편』-『초기신학논집』(놀) 347]라고 할 때, 인간의 종교로의 고양을 둘러싸고 당시의 중심적인 술어인 '생'에 말하자면 신학적인 설명을 준 것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고, 또 정신 개념 그 자체가 주역을 담당했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기서도 이미 정신은 다양한 것의 합일이라는 규정에서 공동적인 것으로서의 정신의 본질이 보이고 있다.

(2) 예나 시대 전기. 『차이 논문』에서 '철학의 욕구'의 주체로서 "분열된 조화를 철학 안에서 스스로의 손으로 만들어내고, 자기 활동적으로 형성한"[2. 20] 정신이 파악된다. 그러나 여기서는 아직 술어화되어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인간의 생에서 결합의 힘이 사라졌을 때"[2. 22] '철학의 욕구'가 생긴다고 하듯이 이것 역시 '생'으로서 말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과 정신을 병행하는 것으로 파악하는 『초월론적 관념론의 체계』의 셸링의 입장으로부터 수용한 『차이 논문』에서의 자기 입장에 대해 헤겔은 1801/02년 겨울학기의 강의에서 방향으로서는 이미 이 입장을 떠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연법 논문』에서 이 병행론을 그만두고 자연에 대한 정신의 우위를 주장하게 된다. 이러한 주장에서 그의 주관성 이론에로의 방향이 성립한다.

그러나 『차이 논문』에서 "동일성과 비동일성의 동일성"[2. 96]으로 정식화되는 절대자가 비동일성의 계기인 의식에서 구성되어야만 한다는 입장에는 셸링의 동일철학에 대한 비판이 숨어 있었다. 스피노자주의적인 입장에 서는 한에서 정신을 자기 입장의 표현으로 할 필연성은 없다. '생' 그대로도 좋았을지도 모른다. 이전에 '생'이라고 불렸던 것의 구조가 정신이라고 불리게 되는 것은 자연과의 대비에서 인간의 자기의식의 구조가 파악됨으로써이다. 그러나 그와 같이 자기의식이 파악된 것은 "주관성의 반성철학"[『신앙과 지식』 2. 287]에 대한 비판을 통해서이다. 동일철학의 입장에서 이루어진 이 비판, 특히 피히테 비판은 오히려 동일철학의 제한성을 자각하게 만들었다. 주관-객관의 대립 그 자체가 양자의 절대적 동일성 내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대립 속에 있으면서 동일성을 산출하는 자기의식의 활동이 이를테면 환골탈태되어 받아들여진다. 자아=자아라는 명제에서 파악되는 피히테적인 자아에서는 그 바깥에 비-아를 전제할 수밖에 없는 까닭에, 동일성은 주관과 객관의 이원론을 넘어선 "주관-객관"[『차이 논문』 2. 100], 즉 주관적인 동시에 객관적인 동일성이 아니라 "주관적 동일성"[『신앙과 지식』 2. 296]에 머무르게 된다. 그러나 주관적인 동시에 객관적인 동일성이 비동일성을 포함하는 것으로서 파악되게 되면, 이러한 비동일성이란 앞의 자기의식의 운동에 다름 아닐 것이다.

자기의식의 운동이 비-아인 대상과의 동일성을 확립하는 운동이라면, 그것은 절대자의 운동을 나타내는 것일 것이다. 이와 같은 운동을 산출하는 것은 비-아 쪽에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자아의 운동이 주관적인 동시에 객관적인 동일성을 산출하는 것으로서 파악된다. 또는 적어도 이 동일성은 자기의식과 똑같은 구조를 지닌 것으로서 파악된다. 여기서 절대자를 의식에서 구성하는 과제가 새로운 형태로 정립된다. 이 과제를 담당하는 것이 예나 시대 후기의 『정신현상학』이다.

(3) 예나 시대 후기. 이 저작에서 문제로 되는 것은 정신이 어떻게 해서 성립하는가 하는 것이다. 이러한 성립의 마당은 근대 철학의 주관-객관이라는 문제구성을 보이는 의식이다. 정신은 의식에 의해서 매개되는 한에서 실체에 머무른다. 의식은 실체를 대상으로 한다. 의식의 대상으로 되는 실체란 "실체의 자기의 대상"[『정신현상학』3. 38] 또는 실체의 타자존재이다. 이것이 의식의 '경험' 안에 놓여 있다. 실체는 실체 자체의 타자존재로서 의식의 경험 안에서 나타난다. 그렇다면 의식의 형태들은 실체의 타자화의 형태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요컨대 의식과 그 운동은 실체의 타자존재이다. 실체의 자기외화와 자기귀환, 즉 "실체가 스스로에게 자기의식을 부여하고, 자기의 생성과 자기로의 반성(귀환)을 가져온다"[같은 책 3. 33]는 것은 실체에 불과한 것이 자기를 외화함으로써 의식으로 되고, 그로부터 자기로 귀환하여 정신으로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거기서 의식은 정신으로서의 의식으로 된다. 이렇게 '의식의 경험'은 정신에게 있어 불가결한 것이다. 이리하여 정신 쪽으로부터도 의식이 위치지어진다. 여기서 실체=주관(체)이라고 하는 주관성 이론이 확립된다.

정신은 자기의식에서 그 개념을 발견한다. 자기의식은 다른 자기의식에 대해서 있을 때 현실적으로 존재한다. 이러한 자기의식들은 서로 대상임을 통해 자기의 타자존재에서 자기 자신과의 통일을 획득한다. 이것은 정신의 본질인 바의 자유의 규정에 다름 아니다. 정신이란 이러한 자기의식들의 통일, 즉 "우리인 나, 나인 우리"[같은 책 3. 145]로 파악된다. 이것은 주관-객관이라는 문제구성으로부터의 전환을 보인다.

즉 이 후자의 문제구성에서 자아의 입장이 자연을 대상으로 하여 인간-자연 관계에서의 학적 인식의 근거를 이루는 것인 데 반해, 여기서는 이 자아가 어떻게 하여 학적 보편성을 주장할 수 있는 것인지가 문제로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데카르트에서 보이는 것처럼 처음에는 개체적 자아의 인식능력의 음미이어야 할 방법적 회의가 결과에서는 보편적 성격을 지니는 것으로 간주되어 개체적 자아와 학적 인식의 결합의 근거가 제시되지 않는 데 반해, "의식의 공동"[같은 책 3. 65]으로서의 정신의 입장이 주장되기 때문이다. 즉 이러한 입장에서 개체적 자아는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는 것이고, 칸트적 자아도 헤겔적으로 보면 아직 자기의식이 아니라 대상의식의 단계에 놓여 있는 것이다.

자기의식의 단계에 이르러 비로소 의식이 전제하고 있던 정신이라는 기반이 의식 자신에 있어 다른 자기의식과의 관계로서 나타난다. 이러한 정신은 오로지 대상의식으로부터 자기의식을 거쳐 이성에 이르는 '의식의 형태들'에서 현상할 뿐만 아니라 세계 그 자체에 내재화하게 된다. 즉 '세계의 형태들' 또는 역사적으로 잇달아 일어나는 공동적 정신으로서 현실화된다.

전자로부터 후자로의 이행은 '정신적 실재성'을 기반으로 하여 이루어진다. 행위하는 이성에서 개체성이 즉자대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정신적 실재성'으로 된다. 이것은 행위에서 개체성이 자기를 객관화하고, '사태 그 자체' 즉 세계 그 자체로 된다고 하는 확신이지만, 이것 역시 '의식의 형태'에 머무른다. 이것이 진리로 되는 것은 '사태 그 자체'를 근거로 하여 술어화된 사태가 '양심'에서 그것 자신이 주어 또는 주체로서 등장하고 '세계의 형태'로 됨으로써이다. 거기서는 모든 것이 정신적인 것으로서 파악되며, '정신적 실재성'에서 의식의 자기성과 세계성이 서로 침투한다. 그리고 정신은 두 형태의 통일로서의 종교를 거쳐 절대지에서 자기에게로 귀환한다. 이렇게 의식이라는 자기의 현상을 뒤따르면서도 이 현상의 근거가 되는 것은 정신이다.

그러나 『정신현상학』을 전제로 하여 정신 그 자체의 학이 전개될 수 있다. 『정신현상학』에 대해 『논리학』이 "정신의 본래의 학"[『정신현상학』 3. 81]으로 해석되는 것은 이러한 의미에서이다. 『정신현상학』의 위치짓기에 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그것은 어쨌든 여기서 성립하는 것이 정신의 학으로서의 '학의 체계'이다.

Ⅲ. 체계에서의 정신철학의 위치. 체계 구상 역시 발전하지만, 최종적으로는 엔치클로페디의 제3부문으로서 정신철학이 위치지어진다. 거기서는 정신이 이념의 타자존재로부터 자기로 귀환한다. 더 나아가 그것은 주관적 정신-객관적 정신-절대적 정신의 3부로 이루어진다. 주관적 정신은 마음-의식-정신 또는 인간학-정신현상학-심리학으로 나누어진다. 자연 안에 있는 마음의 상태로부터, 의식에서 외부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단계를 거쳐, 인간의 주관적 능력의 전개로서의 이론적 정신 및 실천적 정신이 파악되고, 객관적 정신의 말하자면 주관적 전제가 어떻게 자연으로부터 생성되는 것인지가 서술된다. 주관적 정신은 때때로 개인적 정신으로 이해되었지만, 인간학에서 인종론 등을 포함하여 당시의 민족학적 지식이 담겨 있는 것에서 보이듯이 개인적 차원에 머무르지 않는다.

-고즈 구니오()

[네이버 지식백과] 정신 [精神, Geist] (헤겔사전, 2009. 1. 8., 가토 히사다케, 구보 요이치, 고즈 구니오, 다카야마 마모루, 다키구치 기요에이, 야마구치 세이이치, 이신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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