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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철학2] (Naturphilosophie )

Ⅰ. 역사 속의 자연철학. 자연철학은 플라톤의 『티마이오스』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에서 시작되는 긴 역사를 지닌 학문이다. 근세에 이르러 데카르트와 라이프니츠가 그것에 새로운 장을 덧붙였으며, 18세기 말에 칸트가 이성비판의 입장에서 관념론적 자연철학의 가능성을 시사했다. 셸링과 헤겔의 자연철학이 이러한 철학적 전통들을 계승 발전시킨 것이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독일 관념론의 철학자들은 단지 전통을 계승할 뿐 아니라 동시대의 자연과학의 경험을 토대로 하여 종래에는 존재하지 않은 체계적인 자연철학을 구상했다.

셸링은 이 체계의 기초로서 자연 속의 적대성에 착안하여 자기 속에서 이 모순을 해소하는 동시에 재생산하는 과정으로서 전체 자연을 보고자 했다. 또한 헤겔은 마찬가지의 변증법적 구조를 자연 속에서 보면서 그것을 순수한 이념이 구체적 현실성을 획득하는 최초의 단계로서 파악했다. 이러한 관점하에서 비로소 자연을 신이 만든 정교한 기계가 아니라 자기 속에 발전과 형태화의 원리를 지니는 살아 있는 전체로서 파악하고 또한 그것 자신이 체계를 구축하는 것으로서 고찰할 수 있게 되었다.

독일 관념론의 철학자는 또한 이러한 관점에서 동시대의 과학에 여전히 남아 있는 오랜 형이상학적 사고법을 현실에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서 공격하고, 그것을 대신하는 사유형식을 발견하고자 노력했다. 그들의 용어가 반드시 일반적인 과학자가 채용하는 것으로 되진 않았지만, 그 사고방식에는 현대에도 통용되는 중요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Ⅱ. 체계 속의 자연철학. 헤겔의 경우에 자연철학은 그의 사변적 철학체계 또는 절대적 관념론의 일부이며, 이 부분을 빼놓은 그의 철학은 생각될 수 없다. 헤겔에 따르면 체계의 세 부분, 즉 〈논리학〉, 〈자연철학〉, 〈정신철학〉은 말하자면 이념 자신의 발전단계를 반영하는 것이자 그 전체가 이념의 현실성을 이룬다. 이 가운데 자연철학은 처음에 논리적 범주로서 순수한 모습으로 나타난 이념이 객관적 세계로서도 현실화되고자 하는 중간 단계이다. 거기서 이념은 아직 완전히 자유로운 발전을 성취할 수 없으며, 물질적으로 속박된 불완전한 모습으로 정신의 본질을 비춘다. 그런 한에서 자연은 정신의 '타자존재(das Anderssein)' 또는 '상호외재(dasAussereinandersein)'라고 불린다.

다만 인간만이 그 정신적 영위인 노동과 문화에 의해서 이 제한을 돌파하여 정신의 실질인 자유를 객관적 세계로서도 실현할 수 있다. -이러한 형이상학적인 내지 신학적인 도식에 의해서 헤겔은 자연을 말하자면 정신에 종속하는 것으로서 파악하고 그것에 기초하여 인간의 자연 지배를 정당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절대적 관념론이야말로 자연을 발전과 자기조직화의 원리를 자기 안에 내장하는 통일적 전체로서 고찰하는 동시에 지성과 구별된 의미에서의 이성적인 것으로서 파악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었다.

Ⅲ. 헤겔 자연철학의 입장과 구조. 헤겔은 이미 예나 시대의 강의초안에서 〈자연의 철학적 고찰〉과 〈평범한 고찰〉을 분명히 구별한다. 후자에서 자연은 단지 양적 차이에서 전체와 부분으로 이루어지며, 인과관계에서도 단순한 〈이것〉들의 모임이다[『예나 체계 Ⅱ』 GW 7. 180]. 이 구별은 나중의 『엔치클로페디』 제3판(1830)에서 좀더 알기 쉽게 다음과 같이 말해지고 있다. "자연철학은 개념적으로 파악하는 고찰이기 때문에 그것은 동일한 보편자를 그것 자체의 내재적 필연성에서 개념의 자기규정에 따라 고찰한다"[『같은 책 · 자연철학』 246절]. 다시 말하면 자연철학도 이론적 자연과학과 마찬가지로 '자연경험'을 전제하여 그로부터 추출된 동일한 '힘과 법칙과 류'와 같은 보편자를 주제적으로 고찰하는 것이지만, 그 고찰법은 일반적인 자연과학의 고찰법과는 조금 다르다는 것이다.

이 고찰법의 차이는 헤겔 자연철학의 실제 구조를 연구해 보면 곧바로 알 수 있다. 그는 자연철학을 거듭해서 〈역학〉, 〈물리학〉, 〈유기적 자연학〉의 세 부분으로 구분하지만, 이것은 그 자체가 자기 자신의 현실태를 향해 스스로의 힘으로 발전하는 이념의 자기구현화 과정의 조감도이다. 그 도입부에서 그는 말한다. "자연은 다양한 단계의 체계로서 고찰되어야만 한다"[같은 책 249절]. 이러한 단계적 진행을 이끄는 것은 다만 '자연의 내적인 것(das Innere der Natur)'이라고도 말해야 할 '변증법적 개념'뿐이다.

자연철학 전체의 구조와 그것의 개별적인 단계들의 내용은 모두 이 개념의 변증법적 운동을 엄밀히 따르고 있다. 그것은 우선 단순한 질점으로서만 생각된 물질의 계, 즉 역학계로부터 시작하여 이어서 질적 다양성을 지닌 물질의 복잡한 상호작용으로 이행한다. 그로부터 마지막으로 이러한 상호작용을 자기 안에서 하나로 합쳐 다른 물질계로부터 독립된 존재를 지니는 물질계, 즉 생물로 나아간다.

헤겔은 이러한 이념의 진행과정에 르네상스 이래의 전통적 과학과 18세기에 두드러진 발전을 이룬 새로운 과학 분야들을 할당했다. 제1부 '역학'은 우선 갈릴레오로 대표되는 지상의 물체의 운동학(유한적 역학)과 케플러 및 뉴턴으로 대표되는 자유공간 내의 물체의 운동학, 즉 천체역학(절대적 역학)이다. 그것에 이어지는 제2부 '물리학'에는 주로 18세기 후반에 발전된 새로운 자연과학 부문들, 즉 광학, 열학, 음향학, 화학, 전자기학 등이 대응한다.

헤겔은 이 부문들을 "가장 어려운 부문들"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당시의 발달되지 않은 화학과 전자기학의 상태를 생각하면 그것은 당연할 것이다. 마지막의 '유기적 자연학'의 중심은 말할 필요도 없이 식물학과 동물학이지만, 오늘날의 상식과는 달리 광물학과 지질학도 여기에 더해진다. 이것은 당시의 박물학의 상식에 따른 것으로 아마도 결정의 형성과 같은 자기형태화 능력과 자기조직성이 광물과 암석을 단순한 원소의 집합과 구별하여 유기체라고 불렀던 것일 것이다.

Ⅳ. '자연의 무력' 또는 근원적으로 한정된 자연. 위에서 본 것처럼 헤겔은 자연을 차례로 개체화의 정도와 환경으로부터의 자유도를 증대시켜 가는 물질계의 단계로서 고찰하지만, 그것을 이른바 〈존재의 대연쇄〉처럼 미묘한 뉘앙스를 통해 이행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자연은 비약하지 않는다'라는 18세기의 변천론자와는 다른 눈으로 이 문제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 점에서 헤겔의 자연철학은 자연의 모든 계층에 동일한 적대성과 분극구조를 보고자 했던 셸링의 그것과도 선을 긋고 있다. 헤겔이 이러한 〈자연철학적 형식주의〉를 엄혹하게 비판한 것은 『정신현상학』 서문에서도 그대로 보인다. 그 주된 이유는 그러한 형식주의 역시 기계론적 자연해석에 못지않게 자연의 살아 있는 구체적 연관을 잘못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셸링과 달리 헤겔은 자연 안에서 어쩔 수 없이 무력한 것, 근원적으로 한정된 것을 감지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생물은 환경인자의 착란을 받아들여 다양한 변이형과 기형을 낳으며, 분류학자의 노력을 비웃는 이행형과 중간종을 산출한다. 18세기 후반까지 유럽의 자연연구자들이 다양한 관찰과 실험을 통해서 발견한 이 사실을 헤겔은 '자연의 무력(Ohnmacht der Natur)'이라고 불렀다. 그가 생물체의 내부에서 대립하는 두 개의 생물학적 기능(감수성과 피자극성)의 비율에서 모든 생물의 종을 선험적으로 도출하고자 하는 셸링의 〈참된 자연사〉의 구상 또는 선험주의적 진화론에 반대한 것도 이러한 자연경험에 대한 중시가 나타난 것이다.

그에 따르면 생물 종의 다양성은 급수()의 공식에 자연수를 대입하는 절차에 의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조건들의 불완전함과 혼란에 대항하여 개념에 의해서 정해진 형식을 지킬 수 없는 자연에서의 개념의 약함"을 나타낸다. 그는 이러한 관점으로부터 자연에서 역사를 부정하지만, 이것은 많은 불평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관찰과 경험을 통해 자연의 참된 모습에 접근하고자 한 몇몇 자연연구자들, 예를 들면 쥐시외(AntoineLaurent Jussieu 1748-1836), 라마르크(Jean Baptiste Lamarck 1744-1829), 쾰로이터(Joseph Gottlieb Koelreuter1733-1806), 퀴비에(Georges Léopold Cuvier 1769-1832) 등의 연구를 헤겔이 읽고 있던 증거인 것이다.

Ⅴ. 헤겔과 자연과학. 헤겔은 이 박물학자들의 관찰만이 아니라 자연과학의 다른 분야의 실험보고도 대단히 열심히 연구했다. 종래에 자연과학은 헤겔의 숙련된 분야가 아니며, 여기서 그는 언제나 셸링의 모방자였다고 말해져 왔지만, 이러한 부당한 판결은 오늘날 파기되어야만 한다. 청년 헤겔이 그의 철학체계 건설과정에서 고찰한 자연과학 문헌은 넓은 범위에 걸쳐 있으며 주제도 다양하다.

그 가운데 주된 것만을 들자면 라플라스(Pierre Simon Laplace 1749-1827)의 천체역학(특히 다체문제와 섭동의 연구), 베르톨레(Claude Louis Berthollet 1748-1822)의 화학적 친화력 연구, 럼포드(Benjamin ThompsonRumford 1753-1814)의 열학적 실험, 갈바니(Luigi Galvani 1737-98)와 볼타(Alessandro Giuseppe Volta 1745-1827)에 의한 동전기적 실험, 스팔란차니(Lazzaro Spallanzani 1729-99)의 소화에 관한 실험 등이 있다. 헤겔은 당시 비로소 독일에서도 발행되기 시작한 각종의 과학잡지와 안내서류에서 그 정보들을 얻었지만, 그 목적은 우선 변증법을 좀더 현실에 적합한 사유형식으로 단련하는 데 있었다.

헤겔은 자연과학이 괴테를 모범으로 하여 "솔직한 직관과 경험"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엔치클로페디(제3판) 논리학』 126절 「보론」]. 그리고 "과학이 지금 자신이 사용하고 있는 형이상학적 범주를 의식하여 그 대신 사물의 개념을 기초에 두게 될" 것을 바라고, 나아가 "전문가는 그것을 반성하지 않지만, 이 학문에 대해서도 이성 개념이 요구되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라고 말했다[『같은 책 · 자연철학』 270절 주해 및 「보론」]. 이러한 '사물의 개념'과 '이성 개념'이라는 말을 〈상호작용하는 물체의 체계〉라는 정도의 넓은 의미에서 받아들이면, 그의 말은 과학의 역사에 비추어서도 옳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와타나베 유호()

[네이버 지식백과] 자연철학 [自然哲學, Naturphilosophie] (헤겔사전, 2009. 1. 8., 가토 히사다케, 구보 요이치, 고즈 구니오, 다카야마 마모루, 다키구치 기요에이, 야마구치 세이이치, 이신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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