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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율배반2] (Antinomie)

안티노미, 즉 이율배반이란 "동일한 대상에 관해서", "동등한 정당성 및 동등한 필연성을 가지고 주장되는" "서로 대립하는 두 개의 명제"이다[『엔치클로페디(제3판) 논리학』 48절]. 예를 들어 "세계에는 시간적인 시원이 있고, 또한 공간적으로도 세계는 한계지어져 있다"는 명제(정명제)와 "세계에는 어떠한 시원도 공간적인 한계도 없으며, 시간에 관해서든 공간에 관해서든 세계는 무한하다"는 명제(반대명제)와의 양립이 대단히 유명한 칸트의 이율배반론에서 논의되는 첫 번째 이율배반이다[『순수이성비판』 A 426=B 454, A 427=B 455].

이러한 칸트의 이율배반론, 혹은 일반적으로 이율배반 개념 그 자체는 특히 이른바 예나 시기 이후 헤겔에게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 왜냐하면 이 시기에 헤겔은 이율배반이야말로 "앎과 진리의 형식적이긴 하지만 최고의 표현"이라고 쓰기에 이르기 때문이다[『차이 논문』 2. 39].

앎과 진리는 본래 이율배반 형식에서 성립한다는 테제를 헤겔은 이 『차이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근거짓고 있다. 즉 앎과 진리의 가장 기본적인 표현형식인 A=B라는 '동일성'의 형식(전형적으로는 자연과학의 법칙 등)은 A와 B와의 '동일성' 외에 양항의 '대립', 결국 바로 A와 B라는 양항의 〈비동일성〉을 근본적인 요소로서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우리의 경험적인 앎이란 서로 다른 두 개의 사항 A, B가 모종의 형태로-예를 들어 인과관계에서-관계지어진다는 점에서,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양자가 '동일성'(A=B)에서-결국 과학의 법칙들에서처럼-파악된다는 점에서 성립한다. 따라서 우리의 앎 혹은 진리란 원래 '동일'인 것의 '동일성'인 것이 아니라, 원래 〈비동일〉인 두 개의 사항의 '동일성'인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앎의 성립에는 경험 또는 실험이 불가결한 것이다.

여기서 헤겔은 앎과 진리의 근원적인 이율배반을 발견한다. A=B라는 앎이 A≠B라는 근본적인 비동일성 위에서 성립하고 있는 한, 그 앎의 〈부정성〉이 그 앎 자체 속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A=B라는 앎(정명제)에서는 원리적으로 A≠B라는 이 앎의 부정(반대명제)이 언제나 "동등한 정당성 및 동등한 필연성을 가지고 주장될" 수 있는 것이다.

이 이율배반이 헤겔이 말하는 '모순'이다. 앎과 진리를 고정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단순한 '지성'의 앎이다. 이에 대해 '이성'의 '사변적인' 앎, 결국 본래의 앎, 본래의 진리란 항상 앎을 이율배반, 결국 '모순'에서 파악하는 것이며, 나아가 언제나 이 이율배반을 넘어서는 데서 새로운 앎이 성립한다는 저 '변증법적인' 앎의 운동 그 자체이다.

-다카야마 마모루( )

[네이버 지식백과] 이율배반 [二律背反, Antinomie] (헤겔사전, 2009. 1. 8., 가토 히사다케, 구보 요이치, 고즈 구니오, 다카야마 마모루, 다키구치 기요에이, 야마구치 세이이치, 이신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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