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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2] (Geschichte)

Ⅰ. 세계사에서의 이성. 헤겔은 역사철학 강의의 서론에서 역사 고찰의 종류로서 근원적 역사와 반성적 역사 그리고 철학적 역사를 들고, 근원적 역사가 헤로도토스의 『역사』와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처럼 직접, 간접으로 보고 들은 사건, 행위, 상황을 기록하는 데 머무르는 것으로서 역사가 자신이 사건의 정신에서 살고 이것을 넘어서지 않는 데 반해, 그리고 반성적 역사가 리비우스의 『로마사』와 요한네스 폰 뮐러의 『스위스사』 그리고 니부르의 『로마사』처럼 시간에 구속됨이 없이 시대를 초월하여 역사를 개관하고 이로부터 교훈을 끌어내거나 이것을 비판하거나 하는 데 반해, 역사에 내재하면서도 결코 역사에 매몰되어 수동적으로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또한 이런 의미에서 역사를 넘어서면서도 결코 선험적으로 사실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말하자면 양자의 종합으로서 역사를 꿰뚫는 이념에 입각하여 역사를 인식하는 것을 철학적 역사로서의 자기의 역사철학의 과제라고 말하고 있다.

헤겔은 "이성이 세계를 지배한다"[『역사철학』 12. 20]는 것을 아낙사고라스 이래의 철학의 원리라고 하고, 이 원리가 세계사에서도 관철된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역사철학의 과제라고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이성은 사유하는 이성에 앞서 무엇보다도 세계 속에 존재하며, 역사를 관통하여 목적론적으로 발전하는 이성으로서 응시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계 전체를 질료가 목적으로서의 형상의 실현을 지향하는 운동이라고 보고, 거기서 질료인과 형상인과 목적인과 작용인의 4원인론을 전개하고 있지만, 헤겔이 이성을 역사의 "실체임과 아울러 무한한 힘이며, 그 자신 일체의 자연적 생명과 정신적 생명의 소재임과 동시에 이 내용들을 움직이는 무한한 형상이다"[같은 책 12. 21]라고 말할 때,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 전통을 역사적 세계로 옮겨 되살린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예전에는 신의 섭리가 세계를 지배한다고 믿어졌지만, 헤겔이 세계사에서의 이성의 지배를 증명하고자 할 때 그는 모종의 의미에서 이것을 따르는 것이다. 헤겔 자신도 자기의 역사철학을 "신정론(Theodizee)"[같은 곳]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헤겔에게 있어 이성의 지배는 신앙의 문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인식의 문제였다. 헤겔은 역사 발전의 목적과 수단, 그 과정의 논리를 구체적으로 탐구하고자 했던 것이다.

Ⅱ. 자유의 의식에서의 진보. 그렇다면 역사 발전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자유이다. 세계사의 주역이 정신이라면 정신의 본질은 자유이기 때문이다. 헤겔은 "세계사란 의식에서의 자유의 진보이다"[같은 책 12. 32]라고 말하고 있다. 세계사의 무대가 아시아에서 고대 그리스와 로마로, 그리고 민족대이동 후에는 알프스를 넘어 게르만적 세계로 동에서 서로 이동함에 따라 전제정치가 지배하는 단지 한 사람만이 자유였던 데 불과하지만, 노예제 위에서 폴리스 민주제를 꽃피운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소수긴 하지만 복수의 사람이 자유라는 것을 알게 되고, 게르만 국민들이 활약하는 근대에 들어서면 인간이 인간인 한에서 모든 사람이 자유라는 자각이 생겨나기 이르렀다는 것이다.

헤겔에 따르면 자유는 개념으로서 각자의 심정 속에 머물 뿐 아니라 이미 관습과 법률과 도덕 등 공동생활의 기반으로서 객관적으로도 실현되고 있는 것이며, 이러한 실현된 자유로서의 현실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의지야말로 자기로 귀환하는 자유로서 참으로 무한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헤겔은 역사철학에서 자유의 의식의 진보를 더듬어나감으로써 이러한 자기의 자유 개념 그 자체를 세계정신이 현재에 도달한 높은 곳으로서 그 역사적 필연성에서 증명하고 하는 것이다.

Ⅲ. 이성의 간지. 그렇다면 세계에서 자유가 실현되기 위한 수단은 무엇일까? 헤겔은 "어떠한 위대한 일도 정열 없이 성취되지 않았다"[같은 책 12. 38]고 말하고, 세계정신은 개인의 정열과 관심과 의욕 등 그 자신이 개별적인 활동을 도구와 수단으로 하여 자기 목적을 실현해간다고 말한다. 거기서 "이성의 간지"[같은 책 12. 49]를 볼 수 있다. 이러한 헤겔의 사상은 때때로 역사를 형성하는 주체를 정신이라든가 이성이라는 형이상학적 실체로 결정하고, 본래의 주체이어야 할 인간을 이러한 형이상학적 실체의 꼭두각시로 만드는 것이라고 하여 비판된다.

그러나 헤겔도 근대 휴머니즘의 적자로서 역사를 쌓아가는 것이 인간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자각하고 있었다. 이 점은 헤겔이 루소 등의 계몽사상에 지도된 프랑스 혁명을, 그것이 공포정치에 빠진 경위에 대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처음으로 자기가 역사의 주인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자기의 사상 위에 현실을 구축하고자 한 사건으로서 그 세계사적 의의를 생애 내내 승인한 데서도 엿보인다. 그러나 헤겔은 동시에 자유를 지향한 프랑스 혁명이 공포정치에 빠지는 등, 역사가 인간이 쌓아가는 것이긴 하지만, 그것이 의도대로 쌓아올려지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지 않은 결과를 불러내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것도 헤겔이 운명이나 소외로서 청년 시절부터 문제로 삼은 인식이었다.

'이성의 간지'란 이러한 헤겔의 중층적인 역사관을 보여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헤겔은 "인간이 전적으로 외면적인 의미에서 이성 목적의 수단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이성 목적을 충족함과 동시에 또한 이 이성 목적을 기회로 하여 내용상으로는 이성 목적과 다른 자기의 개별적 목적을 만족시킨다. 그러나 더 나아가 이러한 이성 목적 그 자체에 관여하는 것이어서, 그 점에서 인간은 자기 목적인 것이다"[같은 책 12. 50]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헤겔은 논리학에서 '이성의 간지'의 목적론적 구조에 관해 말하고 있는데, 거기서는 수단 없이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한에서 도구의 우위를 말하고 있다는 것을 상기해야만 할 것이다.

Ⅳ. 세계법정으로서의 세계사. 헤겔에게 있어 인간은 자유를 본질로 하는 개인임과 동시에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상호주체적 존재라는 것은 직관되는 사실이며, 그의 철학은 이 사실에서 출발한다. 그런 의미에서 헤겔은 사회계약론이 전제하는 것과 같은 근대 개인주의에 반대하며, 인간을 '폴리스적 동물'이라고 파악한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법의 정신』의 몽테스키외를 관통하는 계보에 서 있었다. 개인주의 입장에서 출발할 때 타자와의 공동성 문제는 당위의 과제로 되는 것이고, 이상적인 공동체는 국가를 넘어서 인류공동체로 된다. 칸트가 세계시민적 질서의 실현을 설파하는 데서 보이는 대로인 것이다.

그러나 헤겔에게 있어서는 국가가 자유와 공동성의 통일로 이루어지는 인륜공동체의 최고의 실현태였다. 그런데 최고의 실현태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객관적 정신에서의 일이며, 절대정신의 입장에서 보면 국가라고 하더라도 다른 국가와의 관계에 서있는 상대적인 존재이다. 무엇보다 헤겔에게 있어서는 절대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상대적인 것을 떠나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즉 국가는 그것이 세계정신에게서 맡겨진 세계사적 사명을 짊어지는 한에서 존속하고 발전하지만, 그것을 끝내 완수할 때 몰락하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세계사에서 전개되는 국가의 영고성쇠는 일정 기간 어떤 민족에게 머무르면서도 다른 민족에게로 무대를 변화시키면서 진행하는 세계정신의 발걸음을 보이는 것에 다름 아닌 것이다.

그리하여 "세계역사는 세계법정이다"[『법철학』 341절]라고 말해지는 것이다. 헤겔의 철학체계에 따르면, 이리하여 세계사의 철학은 법철학 등의 객관적 정신의 철학과 절대정신의 철학을 매개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Ⅴ. 역사의 종언. 역사의 한가운데서 살아가는 인간이 어떻게 하여 역사의 전체를 보편성에서 고찰하는 입장을 확보할 수 있을까? 근대 역사철학의 개척자인 계몽의 사상가들은 스스로 생각하는 바의 이성과 인간성을 시대를 넘어서 보편적으로 타당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이 입장에서 역사를 고찰했다. 중세를 암흑시대로 보고 있었던 견해는 이러한 계몽의 역사 이해의 특색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초역사적인 입장에서 재단하는 것이고 또 그런 한에서 계몽의 진보사관이라고 하더라도 구원사관을 따르는 것이라는 것은 명확할 것이다. 역사를 보는 눈은 어디까지나 역사 속에서 발견되어야만 한다.

헤겔은 이러한 과제를 이성을 역사화하고 역사를 이성의 자기실현의 목적론적 운동으로서 파악함으로써 해결하고자 했다. 이러한 이성의 운동이 자기의식을 얻어 자기로 귀환하는 장소에 헤겔 스스로 서서 그로부터 세계사를 바라봄으로써, 모든 역사 흐름을 자기가 살고 있는 현재 속으로 지양할 것을 지향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역사의 흐름 한가운데 서서 그 흐름을 자기의 장소로 흘러들게 함으로써 차단하고자 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거기서 헤겔은 스스로가 살고 있는 현재를 넘어서, 칸트가 세계시민적 질서의 실현을 미래에 맡겼던 것처럼, 미래에 관해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역사의 내재적 이해를 지향한 헤겔의 자세를 보여줌과 동시에, 경험적으로는 역사가 헤겔이 섰던 시점을 넘어서 진행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이념의 전개라는 의미에서는 완결에 도달해 있다는 헤겔의 인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여기서 보이는 것은 세계사를 관통하는 정신이 자기의 자기의식으로 귀환하고 있다는, 즉 자기가 절대자와의 일치에 서 있다고 하는 절대적 확신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확신을 뒷받침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이러한 현재에 살고 있는 자기를 제쳐놓고 역사를 보는 관점은 아무 곳에도 없으며, 역사철학은 어디까지나 역사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자기인식이어야 한다는 헤겔의 역사철학 이해일 것이다. 이와 같이 헤겔이 세계사를 철학 속으로 지양한 것을 이어받아 마르크스가 실천을 통해 철학을 역사 속으로 지양하고자 했다는 것, 또한 헤겔에서의 절대자와의 일치에 서 있다는 확신이 붕괴될 때 헤겔 이후의 역사주의의 역사철학이 생겨난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고즈마 타다시()

[네이버 지식백과] 역사 [歷史, Geschichte] (헤겔사전, 2009. 1. 8., 가토 히사다케, 구보 요이치, 고즈 구니오, 다카야마 마모루, 다키구치 기요에이, 야마구치 세이이치, 이신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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