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2] (Sprache)
Ⅰ. 체계에서의 위치짓기. 의식과 마음의 통일인 주관적 정신이 자기에게 대상형식을 부여하기 위해 실재태로서 산출하는 존재의 형식, 즉 관념적 세계로서의 내면을 보편적 형식에서 표출한 것이 이론적 측면에서 생각될 때 언어라고 불린다. 정신이 스스로를 정신으로서 알기 위해 스스로를 정립하고 자기의 존재형식으로서 표출한 것이 언어이다. 이 언어의 산출은 『엔치클로페디(제3판)』의 '정신철학' 제1부 '주관적 정신' C '심리학, 정신'의, 즉 이론적 정신의 전개과정의 한 계기인 '표상'이 더듬어가는 전개형태, 즉 '상상력' 및 '기억'의 산물이다. 이것이 체계상의 위치이다. 언어라는 존재자가 되어 비로소 정신이라는 관념적인 것이 실재하는 현실, 세계일 수 있지만, 동시에 이 언어는 정신의 '대타존재'라는 형식이기도 하다. 이런 의미에서 언어는 정신의 기호이다.
Ⅱ. 기호로서의 언어. 기호란 내적인 것의 외화(대타존재)를 위해 구상되어 일반화된 것[『엔치클로페디(제3판) 정신철학』 457절]이며, 주관적인 것의 객관화 수단으로서 자의적으로 사용되는 도구이지만, 마음, 감정이라는 생명활동의 외화로서는 몸짓, 목소리가 그 기호라고 생각되고 있고, 소리는 발해짐과 동시에 사라져버리는 것으로서 '시간적 존재'이지만, 이 소리가 한층 더 분절화되어 정신이라는 고차적인 '영혼'의 표현에 걸맞은 형태를 얻었을 때 목소리는 "소리로서 발해지는 언어(Tonsprache)"[같은 책 459절]가 된다.
이것은 정신이라는 인간적 내실 또는 로고스를 표출하여 자기 및 타인에게 '이해하기 쉬운(verständlich)' 형태로 존재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말(Rede)'로서의 언어이다. 이것이 곧 '명명'이라는 정신의 자기인식의 개시를 의미하며, 사물에 이름을 부여함으로써 세계를 자기의 것으로서 창조하는 것으로 된다(이러한 사고방식은 분명히 유대-기독교 전통에 뿌리박고 있다). 이 이름이 '낱말(Wort)', 요컨대 표상으로서의 표상을 '언표하는' 것이 된다[『예나 체계 Ⅲ』 GW 8. 189 이하]. 이러한 "지성에 의해서 산출된 직관과 그 의미와의 결합인 이름"[『엔치클로페디(제3판) 정신철학』 460절]에서 사유가 시작된다. "우리가 사유하는 것은 이름에서이다"[같은 책 462절].
이러한 낱말과 그 조직으로서의 언어체계에서 정신의 자기인식으로서의 '학'이 시작된다. 따라서 본래 말해지고 낱말로 발해지는 것이 정신의 자기인식 활동의 요소로서의 언어의 본질이지만, 이것은 시간적 존재로서 소실되어간다. 이러한 정신의 상상력에 기초하는 언어에 기억되고 영속하는 대타존재의 형식을 부여한 것이 '문자(Schriftsprache)'이다. 따라서 문자는 정신의 본래의 기호로서의 말해진 언어의 기호, 결국 "기호의 기호"[같은 책 457절]이다. 헤겔은 이러한 관점에서 말해진 언어, 표음문자, 표의문자의 순서로 그 기호성격 및 소외태를 보고 있다. 이 문자의 체계화가 문법이며, 그것이 가장 철저화된 것이 지성개념의 체계화로서의 논리기호이다.
헤겔의 경우에 언어는 정신의 자기인식의 기호로서 '대화'에서 생생한 역사적 국면에서 이해되고 요해되는 것이지 그저 의지전달 및 정보교환을 위한 수단과 도구로서의 기호라고 생각되고 있지 않다. "명확히 규정된 여러 가지 표상을 위해 한층 더 분절화되어 명확히 발음되는 소리, 즉 말(Rede)과 이 말의 체계인 언어는 감각, 직관, 표상 등에게 그것들의 직접적인 현존재보다도 고차적인 제2의 현존재를 부여한다"[같은 책 459절]. 이 현존재가 지니는 '대타존재'라는 형식이 헤겔 사변철학의 한 계기로서의 '부정의 위력'인 '지성'의 형식이 될 때 이른바 기호론이 주장하는 기호로서의 언어가 된다.
Ⅲ. 정신의 현존재로서의 언어. 헤겔은 이러한 기호성격을 언어에서의 정신의 자기인식의 필연적 계기로서 자각화하면서 언어를 이 기호성격을 넘어서서 본래의 자기로 돌아오는 마당으로서도 생각하고 있다. 이것이 "언어의 사변적 본성"[『논리의 학』 5. 20]이라고 불리며, 지성범주로서는 대립, 모순하는 것을 동일한 언어가 의미할 수 있는(예를 들어 지양(Aufheben)) 것이 언어의 긍정적 본질로 되어 있다. 이러한 사변적 본성이 '말로 나올' 때 계몽이 주장하는 기호언어는 스스로 "분열의 언어"[『정신현상학』 3. 354]로서, 또한 "양심의 언어"[같은 책 3.478], 자기의 확신을 자기의 행위의 진실로서 '연설'하고 웅변으로 나와 "정신의 현존재로서의 언어"[같은 곳]가 된다.
따라서 언어보다 앞서 정신이 구체적인 것으로서 있어 그것을 기호에 의해 표현하면 언어로 되는 것이 아니다. 언어는 도구와 수단으로서의 기호가 아니다. 언어에서 정신은 자기를 정신으로서 알며, 스스로가 즉자적으로 정신이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이것을 언표하는 것이 "사변적 명제"[같은 책 3. 61]이다. 언어는 이 명제로서 비로소 정신의 현존재이다. -데구치 스미오(出口純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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