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 Pflanze)
생명이 없는 역학적 · 물리학적 자연과 달리 "주체적인 생명성, 요컨대 생명 있는 것은 식물적 자연에서 시작된다"[『엔치클로페디(제3판) 자연철학』 337절]. 이와 같이 식물은 비유기적 자연과 구별되어 생명력을 지니는 유기체로서 생각되고 있다. 그러나 식물의 생명성은 아직 직접적인 단계에 있어 동물과 같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주체성을 지니는 데는 이르지 못하며, 따라서 스스로 그 장소를 결정하거나 이동할 수 없다. 또한 식물의 형태는 동물과 같은 유동성을 지니는 데는 이르지 못한 채 동질적이며 "기하학적 형식과 결정의 규칙성에 가까운 단계에 머무른다"[같은 책 345절].
그러나 헤겔은 괴테가 이야기한 "식물의 변형(Metamorphose)"의 사고방식에서 "식물의 본성에 관한 이성적인 사상의 단초"[같은 책 345절]를 보고 있다시피 식물을 생명력 있는 형성과정으로서 하나의 전체적인 통일성에서 고찰하고 있다. 헤겔이 그리는 식물의 형성과정은 다음과 같다. 즉 종자가 우선 뿌리와 잎으로 분화하고, 외부로부터 양분(비유기적 원소)을 받아들이면서 각각에서 세포조직을 분열시켜 성장해간다. 뿌리는 물과 흙 방향으로 형성되어 목질섬유가 되고, 잎은 빛과 공기를 추구하여 성장하며, 이리하여 식물은 빛으로부터 활력과 색채의 빛남 그리고 형태의 치밀함과 강력함을 자기 내에 받아들인다. 그 과정에서 꽃봉오리가 산출되어 특유의 색을 지닌 꽃이 피어나며, 그 결과 개체의 생명력을 보존하는 것으로서의 종자가 산출된다.
이와 같이 식물은 다양하게 분화해가는 형태들의 하나의 통일적 전체로서 파악된다. "식물은 그 형성 작용에서만 자기를 산출하거나 또는 형태의 부분들을 유기적 통일 속에 보존할 수 있기 때문에, 식물은 이 부분들을 현존재하는 전체로 형성하는 것이다"[『예나 체계 Ⅲ』 GW 8. 139].
헤겔은 『정신현상학』 서문에서 진리의 변증법적 발전의 메타포로서 이와 같은 식물의 통일적 전체로서의 형성과정을 이용하고 있다. "꽃봉오리는 꽃이 피어나게 되면 사라지며", "꽃은 열매에 의해 식물의 거짓된 현존재로서 선언된다"는 식으로 볼 수 있다 하더라도 "[식물의] 이러한 형태들의 유동적 본성은 그들을 동시에 유기적 통일의 계기들로 만드는바, 그러한 유기적 통일 속에서 그들은 서로 모순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나가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필연적이며, 이러한 동등한 필연성이 비로소 전체의 생명을 형성한다"[『정신현상학』 3. 12].
철학에서도 한편의 진리가 다른 편의 진리를 논박하고 배제하는 것처럼 볼 수 있다 하더라도, 식물의 각각의 형태가 계기로 되어 식물의 생명 전체를 성립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서로 모순되는 각각의 진리 역시 철학 전체에서의 필연적 계기를 이루며 진리의 변증법적 발전의 과정을 구성해간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이사카 세이시(伊坂靑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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