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Zeit)
헤겔에게 있어 시대는 철학을 성립시키는 〈기반〉이라고도 말해야만 할 것이었다. '시대의 정신'이라는 개념이 있다. 용어로서는 베른 시대[『민중종교와 기독교』 1. 85; 『기독교의 실정성』 1. 104, 110]부터 이미 있었다. 실러의 『미적 교육에 관한 서한』의 영향을 받아 씌어진 단편에서는 "주목할 만한 커다란 혁명이 발생하기 위해서는 그에 앞서 미리 조용하고 은밀한 혁명이 시대의 정신 속에서 발생해야만 한다"[『기독교의 실정성 · 보론』 1.203]고 말해졌다. 이 '시대의 정신'에서 헤겔은 〈시대의 현상〉의 근거, 내적인 원인을 보았다. 이 시대정신을 파악하는 데서 비로소 사건의 역사적인 필연성이 명확해진다. 철학하는 태도로 된 "존재하는 것의 이해"[『독일 헌법론』 1. 463]란 개별적인 사건들을 우연적인 사태로 간주하지 않고 "하나의 정신에 의해 지배된 사건들의 체계"로서 "내면적인 연관"에서 파악하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다.
시대는 그 정신에 의해서 시기가 그어진다. 예를 들면 대의제를 둘러싸고 다음과 같이 말해진다. "이 제도가 세계사에 한 시기(Epoche)를 긋는다. 세계의 문화와 교양에서의 연관은 동양적인 전제주의와 공화국의 세계 지배 후에 후자의 타락을 통해서 양자의 중간으로 인류를 이끌었다. 그리고 독일인은 세계정신의 이러한 제3의 보편적인 형태를 산출한 국민이다" [『독일 헌법론』 1. 533]. 〈전제주의→고대의 공화국→대의제〉라는 정체에서의 구분과 〈동양→그리스 · 로마→독일〉이라는 풍토적인 구분이 중첩되어 세계사는 3단계로 구분된다. 결국 세계사는 그 필연적인 계기를 실현함으로써 세계사에 한 시기(Epoche)를 긋게 되는 세계사적 국민이 정체와 풍토의 좌표축에서 상연하는 3막극으로 된다.
또한 이 시대의 요구를 최초로 실현하게 되면, 세계사적 영웅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한다고 한다[『법철학』 347절, 348절]. 각 사람은 "시대의 아들"[『역사철학』 12. 72]로서 그 시대에 규정되어 출현하는 것이다. 시대원리를 역사의 무대 배후에서 간지를 활동시켜 연출하고 있는 이성에서 보게 되면, 역사는 섭리의 실현이라고 간주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과연 3단계로 구분되는 것일까?
확실히 변증법적인 발전단계를 〈통일, 대립, 재합일〉 등으로 3단계로 도식화하게 되면, 세계사의 순서가 이념의 개념규정의 순서와 겹쳐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변증법은 또한 식물의 비유를 빌려 줄기, 새잎, 맹아, 꽃, 열매를 거치는 발전의 논리로서 설명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역사에서의 이성의 발전을 특별히 3단계로 구분할 합리적인 이유는 없어진다. 사실 "세계사적 국정(國政)은 네 가지, 즉 (1) 동양적 국정, (2) 그리스적 국정, (3) 로마적 국정, (4) 게르만적 국정이다"[『법철학 강의(반넨만)』 165절]라고 보는 4단계 구성과, 〈동양의 전제에서는 한 사람이, 그리스 · 로마의 민주제와 귀족제에서는 약간의 사람이, 게르만의 군주제에서는 모든 사람이 자유이다〉라는 널리 알려진 3단계 구성이 체계 시기의 사색 속에 혼재되어 있다.
『철학사』에서는 3단계 구성도 있지만 〈그리스 · 로마의 철학〉과 〈게르만 철학〉의 2단계 구성도 있다. 헤겔에 의한 시대구분은 상당히 애매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베를린의 헤겔에게 괴레스(Jakob Görres)의 논저, 『세계사의 기초, 조성 그리고 시대순서에 대하여』에 대한 비평이 있다. 거기서 그는 철저히 〈역사의 도식화〉를 배척하고 있다. 헤겔 철학의 논리를 가지고 실제의 세계사의 시기를 규정하고자 하는 것은 오히려 오해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 시대를 통해서 철학은 하나라는 것이 일관된 헤겔의 관점이었다. "스스로를 인식한 이성은 어느 것이든 참다운 철학을 산출하고 모든 시대에 걸쳐 동일한 과제를 해결해왔다"[『차이 논문』 2. 17]. 철학의 역사는 단지 이런 저런 철학적 성과의 〈집적〉이 아니다. 〈변화〉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철학의 역사 속에서 다양한 철학은 자기지에 이르는 이성의 발전과정의 계기인 것이다. 그리고 세계사도 정신의 자기지와 자유의 이념의 실현과정이다[『역사철학』 12. 32, 96]. "어떠한 국민도 세계의 보편적인 연관에 참여하기에 앞서 각자 독자적인 문화의 단계를 독립적으로 편력해야만 했다"[『독일 헌법론』 1. 533]. 여기서는 개인의 자연적인 의식의 도정으로부터 세계사적인 정신의 도정에로 이행하여 〈철학지〉에 도달하는 『정신현상학』의 구조와 유사한 이중의 역사구조가 엿보인다.
"정신은 세계사이다"[『예나 체계 Ⅲ』 GW 8. 287]라는 관점 아래 세계사와 철학사 모두 정신사 내에 포괄된다. 정신은 자기실현의 도상에서 시대정신으로 되고, 철학으로서 구체화된다. 여기서 철학은 헤겔에게 있어 "사상에서 파악된 그 시대"[『법철학』 서문 7. 26]로 된다. 그것은 시대의 지적 소산으로서의 철학이 스스로의 시대의 제약과 역사적인 필연성을 개념적으로 파악하는 '존재하는 것의 이해'라는 형태에서의 〈자기지〉의 존재양식을 말하고 있다. -구리하라 다카시(栗原隆)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