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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 (Unendliches)

헤겔은 무한을 진무한과 악무한으로 나눈다.

악무한(das Schlecht-Unendliche)이란 "유한의 피안"[『논리의 학』 5. 152], "무규정적인 공허"[같은 곳]이다. 이 무한은 유한에 대립하고 있으며, 그러므로 "유한화된 무한"[같은 책 5. 149], "유한한 무한"[같은 책 5. 152]이다. 또한 이 악무한은 유한과 대립하고 있는 까닭에 유한과 상호규정의 관계에 있고 그 상호규정은 '무한진행(Progreß ins Unendliche)', '영속적인 당위'로서 현상한다. 그것의 전형적인 예로서는 인과관계에서 원인의 원인을 무한히 소급해가는 것, 칸트와 피히테의 윤리학에서의 "이성법칙에 대한 영속적인 접근"을 들 수 있다.

이러한 무한진행은 "유한과 무한의 지루한 교체"이자 이것 자체가 악무한이다. 다만 즉자적으로 이 무한진행에는 이미 유한과 무한의 진리(진무한)가 포함되어 있다. 그렇지만 지성이 잘못하여 상호규정에 있는 유한과 무한의 질적 차이를 고정시키고 절대적으로 분리하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악무한은 "지성의 무한"[같은 책 5. 149, 152]이다.

이에 대해 진무한은 유한을 자기 내에 포함하는 무한이다. 이것은 악무한을 계기로서 포함하지만, 그러나 유한과 악무한의 단순한 통일(추상적이고 운동이 없는 자기동등성)이 아니라 "생성(Werden)"[같은 책 5. 164], "과정(Prozeß)"[같은 책 5. 149]이라는 동적인 것이라고 말해진다. 이것을 인식하는 것은 이성이며, 따라서 진무한은 "이성의 무한"[같은 곳]이다. 악무한이 유한한 것의 "추상적인 최초의 부정"[같은 책 5. 164]인 데 반해 진무한은 "부정의 부정", "긍정"이기 때문에, 악무한이 "부정적 무한성"[같은 책 5. 166; 『엔치클로페디(제3판) 논리학』 94절]이라고 불리는 데 반해 진무한은 "긍정적 무한성"[『논리의 학』 5. 156]이라고 불린다. 또한 이러한 "부정의 부정"은 "자기 자신에 관계하는 부정"[같은 책 5. 166]이기 때문에, 무한진행의 상(Bild)이 직선인 데 반해 진무한의 상은 원이라고 말해진다[같은 책 5. 164].

이와 같은 '진무한'이 적용되는 가장 알기 쉬운 예는 절대자, 의식, 자기의식, 사유 등이다.

'진무한'이라는 표현이 사용되는 것은 아마도 『차이 논문』에서의 wahre Unendlichkeit[2. 11, 84]와 『예나 체계 Ⅰ』에서의 wahrhafte Unendlichkeit[GW 6. 266]로부터일 것이다. 헤겔의 독자적인 '무한' 개념이 명확히 나타나는 것은 『1800년 체계단편』의 '무한의 생'이라는 개념 무렵부터이지만, 그것에 논리적 규정을 준 것으로서는 『자연법 논문』에서의 "자기 자신의 반대인 것"[2. 454, 478f.]이라는 규정이 최초의 것일 것이다. 악무한과 진무한의 구별이 최초로 등장하는 것은 『예나 체계 Ⅱ』이며, 거기서는 질과 양을 지양하는 것으로서 무한성이 이야기되고 있다[GW 7. 29ff.]. 이에 대해 『논리의 학』에서는 질적 무한성과 양적 무한성 각각에 관해 악무한과 진무한이 구별되고 있다.

-이리에 유키오()

[네이버 지식백과] 무한 [無限, Unendliches] (헤겔사전, 2009. 1. 8., 가토 히사다케, 구보 요이치, 고즈 구니오, 다카야마 마모루, 다키구치 기요에이, 야마구치 세이이치, 이신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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