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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론2] (Teleologie)

Ⅰ. 목적론에 관한 정식화의 고전적인 예는 아리스토텔레스가 4원인의 하나로 목적인(causa finalis)을 들고, 작용인(causa efficiens)에 의해서 성립하는 보통 의미에서의 인과관계에 대항시키는 형태로 목적-수단의 관계에 의한 설명방식을 설정하고 있는 것에로 소급된다고 볼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것을 인간의 실천만이 아니라 자연의 설명원리로도 삼았다. 그에 반해 이 목적론은 갈릴레오, 베이컨, 데카르트로 대표되는 근세 초기의 기계론적 자연관의 입장으로부터 철저한 공격을 받았다. 목적론은 자연에 대한 감정이입의 산물이며 과학적 설명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17세기에도 라이프니츠 등은 이 목적론을 적극적으로 옹호했다. 그는 모나드를 생명을 지닌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러한 사고방식에서는 역학적 운동의 설명에는 기계론이 유효한 데 반해 정신과 유기적 생명에는 목적론이 유효하다고 하는 기본적 경향을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을 한층 더 철저하게 고찰한 것이 칸트였다.

Ⅱ. 칸트는 뉴턴 물리학의 커다란 영향 아래 서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단력 비판』에서는 그로부터 누락되어 버린 문제에 관해 목적론의 관점에서 고찰했다. 그것이 미의 문제이자 유기적 생명의 문제이다. 미에 관해 그는 그것을 쾌와 불쾌의 감정에 의해서 판정되는 것이라고 한 데서 더 나아가 대상의 합목적성-목적의 표상 없는 합목적성-의 형식의 지각과 결부시킨다. 유기적 생명에 관해서는 풀 한 포기의 존재 가능성마저도 기계론에 의해서는 설명하기 어렵다고 한 데서 더 나아가 목적론적 설명의 필요성을 설파한다.

그러나 칸트의 경우 특징적인 것은 그의 비판철학의 원칙에 따라 목적 개념이나 합목적성을 사물 자체 속에 상정하는 것이 아니라 주관의 내적인 것, '반성적 판단력'의 선험적 원리로서 상정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목적론을 둘러싸고 우리의 인식능력이 다시 검토되고, 합목적성이 전체를 전체로서 파악하는 방식, 즉 전체가 부분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부분이 전체에 의존하는 존재방식을 파악하는 방식이라는 것이 분명해진다. 이로부터 출발하여 셸링이 유기체론적인 자연철학을 전개했지만, 더 나아가 그의 영향하에서 헤겔은 독자적인 철학을 형성하는 데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Ⅲ. 예나 시대의 『차이 논문』과 『신앙과 지식』을 보는 한에서 헤겔은 목적론에 대해 비판적으로 말하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목적론을 가지고서는 생명의 문제가 유한성의 입장에서밖에 다루어지지 않는다는 이유에 의한 것이며, 목적론의 주제인 유기적 생명 그 자체는 그의 사색의 중심에 놓여 있었다. 그것이 『예나 체계 Ⅲ』에서 다시 다루어진다. 자연에 관해서도 그것의 합목적성에 대한 언급이 있지만, 한층 더 중요한 것이 인간의 실천, 노동의 목적론이다. "자아는 자아를 보호하고, 자아의 규정을 지키기 위해 도구를 소모시킨다는 간지(List)를 자아와 외적 사물 사이에 삽입했다"[GW 8. 206]. 노동에서 인간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으로서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 간지라고 불리며, 그로부터 헤겔에서 목적론을 정식화하는 '이성의 간지'라는 개념이 도출된다.

이어지는 『정신현상학』에서는 "이성은 합목적적인 활동이다"[3. 26]라고 하고, 또한 "결과란 자기로의 귀환이다"[같은 곳]라고 말해지고 있지만, 거기서 우리는 직접적 의식으로부터 절대지로 향해가는 의식의 발걸음이, 그리고 또한 자기를 외화하고 더 나아가 그것을 다시 되찾음으로써 세계와의 화해를 달성하기에 이르는 의식의 활동이 목적론적으로 파악되고 있음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헤겔의 경우 칸트와는 달리 그의 일원론적인 체계 구상에 기초하여 합목적성이 단지 주관의 형식일 뿐 아니라 존재 그 자신도 끌어안은 것으로서 파악되고 있다는 것에 주의해야만 할 것이다.

『논리의 학』의 '개념론'은 목적론에 관해 상세하게 논의하고 있는데, 거기서는 기계론이 맹목적 관계인 데 반해 목적론은 자유로운 관계이다. 왜냐하면 목적론에서는 전체를 구성하는 다양한 부분이 좀더 고차적인 지적 원리에 의해서 통일을 부여받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목적론이 목적론에 그치는 한에서 이러한 전체는 구별항으로 분할된 채로 있으며, 그 구별항은 서로 외적인 관계에 놓여 있다. 그리하여 헤겔은 이러한 목적론을 구성하는 목적-수단-객관이라는 세 항 사이의 추론관계를 변증법적으로 전개하고, 이 세 항이 서로가 서로를 전제하는 순환구조 속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그때 이러한 순환은 단지 나쁜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전체가 참된 전체, 매개된 전체로서 파악되는 길을 여는 것이 된다.

이리하여 목적론적 관계는 개념이 자기를 자기로부터 구별하면서 동일성을 보존하는 과정, '동일성과 비동일성의 동일성'이 달성되는 과정으로서 파악되지만, 이때에는 이미 목적론의 단계가 초월되어 이념의 단계로 옮아간다. 헤겔에게 있어 이러한 목적론은 정신만이 아니라 자연과 사회, 역사를 관통하는 원리이다. 그런 까닭에 헤겔의 체계에 대한 근대과학 입장에서의 비판도 제기되었던 것이지만, 헤겔의 관점은 오히려 오늘날의 과학이론하에서 새로운 의의를 지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토 야스쿠니()

[네이버 지식백과] 목적론 [目的論, Teleologie] (헤겔사전, 2009. 1. 8., 가토 히사다케, 구보 요이치, 고즈 구니오, 다카야마 마모루, 다키구치 기요에이, 야마구치 세이이치, 이신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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