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2] (Widerspruch)
Ⅰ. '진리의 규칙'으로서의 '모순'. '모순'은 헤겔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의 하나이다. 왜냐하면 헤겔은 '모순' 또는 '모순'이 존재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진리'의 가장 기본적인 '규칙' 또는 〈기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취직 테제』 2. 533].
이러한 사고방식이 많은 반발과 오해를 낳았음은 물론이다. 말할 필요도 없이 통상적인 사고방식에서 보면 '모순'은 '진리의 규칙' 등이 아니라 바로 〈비진리〉의 가장 기본적인 '규칙' 또는 〈기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통상적인 사고방식에 기초하는 반발과 오해는 헤겔의 '모순'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기인한다.
헤겔이 말하는 '모순'이란 최종적으로는 이른바 〈모순율〉, 즉 ~(p∧~p)를 범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명제 p와 그것의 부정명제 ~p의 양립은 최종적으로는 인정되지 않고 부정된다. 다만 헤겔의 '모순' 개념의 독특한 점은 헤겔이 이 부정에 선행하여 이 부정의 전단계로서 우선은 바로 이 두 명제 p 및 ~p의 양립을 인정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어떤 명제 p와 그것의 부정명제 ~p의 양립이란 이른바 안티노미, 이율배반이다. 헤겔이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에서의 이율배반 논의를 높이 평가한 것은 유명하지만[『엔치클로페디(제3판) 논리학』 48절], 헤겔이 예나 시기 이래로 일관되게 이율배반을 중시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 자기가 말하는 '모순' 개념의 기초를 이루기 때문이다.
이러한 독자적인 '모순' 개념은 또한 헤겔 철학의 근본적 방법으로서 대단히 유명한 '변증법'과도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왜냐하면 헤겔은 그것이 무엇이든 무릇 모든 대상에 관하여 이율배반의 성립을 주장하기 때문이다[같은 곳]. 그러므로 〈진리〉의 탐구는 불가피하게 명제 p와 그것의 부정명제 ~p의 양립을 매개로 하여 이 양자의 '모순'을 까닭으로 한 부정에로, 나아가 '모순'하는 까닭에 부정되는 이 두 명제를 기초로 하는 새로운 〈진리〉의 정립에로 전진한다. 이러한 이른바 정, 반, 합으로 전개되는 '변증법'은 이리하여 헤겔이 말하는 '모순'의 전개이론 그 자체인 것이며, 바로 '모순'이 '진리의 규칙' 그 자체인 것이다.
Ⅱ. '본질론'에서의 '모순'. 이러한 '모순' 개념이 헤겔의 저작에서 주제가 되어 논의되고 전개되는 것은 『논리의 학』 제2편 '본질론'의 제1부 제2장[6. 35 이하]이다.
이 부분의 주제는 말할 필요도 없이 '본질'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해명이지만, 이에 관한 헤겔의 가장 기본적인 관점은 어떠한 '본질'이든 그것 자체로서 일정한 무언가로서 존재하는 '본질'이 아니라는 것, 즉 '본질'이라는 '존재'는 그것 자체로서는 '비존재'라는 바로 그것이다. '본질'이란 그것 자체에서 그것으로서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인 규정성' 요컨대 〈다양한 데이터〉를 기초로 하여 우리가 '반성(Reflexion)'='사유'를 궁리하는 것에서 '정립(Setzen)'되는 그러한 것, 즉 우리에 의해서 〈설정되는〉 존재인 것이다.
여기에 저 '모순', 즉 이율배반의 성립이 이야기되는 근거가 놓여 있다. 즉 '본질'이 그것 자체로서 일정한 무언가로서 존재하고 있다고 한다면, 그 '본질' 그 자체를 파악한 명제 p가 단적으로 진리인 것이어서 이 명제 p에 대해 그 부정명제 ~p가 동등한 올바름을 지니고서 성립하는 등등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헤겔은 '본질'이란 그것 자체에서는 '비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런 까닭에 예를 들어 〈빛〉은 〈입자〉라고 하는 본질설정명제 p는 일반적으로 그 부정명제 ~p를 내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 자체로서는 일정한 무언가로서 규정할 수 없는 그것, 즉 〈빛〉을 이 명제 p는 일정한 무언가, 즉 〈입자〉로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질설정명제 p에는 원리적으로 그 부정명제 ~p가 대립한다. 요컨대 일반적으로 모든 본질규정은 원리적으로 p∧~p라는 이율배반에서 성립하는 것이다.
여기에서의 부정명제 ~p가 올바름에 있어서 명제 p와 동등한 권리를 지니는 동시에 명제 p에 대립하는 긍정명제 q(예를 들면 〈빛〉은 〈파동〉이다)로서 파악되면, 여기서 긍정적인 이율배반이 성립한다.
이 p∧(~p=q)는 '모순'인 까닭에 부정된다. 그러나 명제 p와 q 모두 이미 그 나름의 올바름을 가지고 있는 한에서 단순히 부정되어 '무'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두 명제의 부정은 양자의 올바름의 종합으로서의 새로운 본질설정명제 r, 예를 들면 〈빛〉은 〈양자〉라는 명제의 성립에서 수행되는 것이다. 이것이 헤겔의 독특한 '모순'의 논리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서로 대립하는 의견을 싸우게 함으로써 종합적인 참다운 견해를 도출한다는 '변증법'의 본래 뜻, 즉 '문답법'을 기본적으로 계승하는 것이다.
그런데 예를 들어 저 〈양자〉라는 개념의 성립은 새로운 '본질' 그 자체의 '생성'이다. 통상적으로 '생성'이라고 하면 어떤 불변의 본질을 지닌 무언가가 실제로 존재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끊임없이 생성, 소멸하는 현상의 세계에서 '본질'은 불변이다. 불변적인 '본질'이 물질을 동반하여 실제로 존재하게 되는 것, 이것이 '생성'이다. 그러나 이에 반해 헤겔은 원래 '비존재'인 '본질'이 '변증법'적으로 '생성변화'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물'이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법'이란, '도덕'이란, '종교'란, 그리고 '진리'란 무엇인가라고 묻는 데서 이러한 모든 '본질' 규정이 끊임없이 새롭게 이루어지고 새로운 '본질'이 '모순'을 매개로 하여 '역사'적으로 진전, '생성'하는 것이다. '본질'을 자체적으로 '비존재'라고 파악하는 것, 나아가 그러한 '본질'이 어떤 규정된 '본질'로서 끊임없이 '생성'한다고 생각하는 것, 이러한 이른바 '절대적 부정성'의 사상이 헤겔 철학의 눈에 띄는 특징이지만, 이 사상을 방법론적으로 떠받치는 것이 '모순', 요컨대 '이율배반'의 이론에 다름 아닌 것이다.
Ⅲ. 다양한 '모순'. '모순'은 따라서 헤겔 철학의 전개과정이 이르는 곳곳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여기서는 헤겔을 논할 때 자주 다루어지는 중요한 몇 가지 '모순'에 대해 언급해두고자 한다.
(1) 하나는, 일반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즉자존재(Ansichsein)'임과 동시에 '대타존재(Sein-für-Anderes)'라는 '존재론'과 '본질론'에 공통되게 나타나는 '모순'이다[『논리의 학』 5. 125 이하, 6. 65 이하]. 그것이 무엇이든 일정한 '무언가'로서 존재하는 것은 그것이 바로 그것인 근거를 그것 자체가 지니고 있다('즉자존재')(명제 p).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동시에 그것 자체는 이 근거를 지니고 있지 않다(명제 ~p). 왜냐하면 그것이 무엇인가는 언제나 다른 것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결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대타존재').
일반적으로 '본질'(대단히 넓은 의미에서의 '본질'-〈빨간 색〉의 〈본질〉로서의 〈빨강〉 등도 여기에 함의되어 있다)이 그것 자체에서 일정한 무언가로서 존재하고 있다고 한다면, 존재하는 모든 것은 단적인 '즉자존재'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까닭에 모든 것은 동시에 '대타존재'인 것이다. 이것은 '본질규정' 그 자체에 관계되는, 다시 말하면 '본질'의 '본질규정'에 관계되는 '모순'이다.
(2) 또한 '무한성'에 관해서는 어떤 것이 '무한'이라고(명제 p) 한다면, 그것은 동시에 '유한'이라는(명제 ~p=q) '모순'의 성립이 이야기된다[『논리의 학』 5. 149 이하]. 즉 '무한한 것'이란 '유한한 것'이 아닌 것이지만, 그렇다고 한다면 '무한한 것'은 '유한한 것'에 의해서 제한되어 있는 것이고, 그런 한에서 '무한한 것'도 '유한한 것'과 병립하는 또 하나의 '유한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이러한 '모순'은 '긍정적 무한성(die affirmative Unendlichkeit)' 또는 '진무한(die wahrhafte Unendlichkeit)'이라는 개념에 의해서 해소된다. 그것은 모든 '유한한 것'을 포섭하여 성립하는 '전체'이지만, 그것은 결국 '변증법적인 과정'으로서의 '생성' 그 자체인 것이다. 이것도 참된 '본질'={(p∧~p=q)➡'진무한'}이라는, '본질'의 '본질규정'에 관계하는 '모순'이다.
(3) 마지막으로 '하나'와 '여럿', 또는 '전체'와 '부분'의 '모순'에 대해 언급해 두고자 한다. 헤겔은 이른바 초기 이래로 참다운 존재를 '하나'인 '전체'임과 동시에, 그렇지 않은 것, 즉 '많은' '자립적인' '부분' 또는 '다양한 것'으로 이루어진 '모순'적인 존재로서 파악한다[『초기신학논집』(놀) 308, 345 이하]. 이것은 '개별적인 것'을 불가결한 요소로 하여 성립하는 생생한 '전체'를 참다운 것으로 파악하고자 하는 헤겔의 가장 근본적인 존재관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러한 '생명' 및 '유기체'를 모델로 한 헤겔의 독특한 존재관이 '변증법적인 과정'으로서의 '생성'을 이야기하는 헤겔의 '모순'의 논리 그 자체를 떠받치고 있다. '하나'와 '여럿'의 '모순' 역시 '본질'의 '본질규정' 그 자체에 관계하는 근본적인 '모순'인 것이다. -다카야마 마모루(高山 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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