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다] (essen )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을 대신해 생각할 수 없지만 그것은 다른 사람을 대신해 먹거나 마실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엔치클로페디(제3판) 논리학』 23절]이라고 말하는 헤겔은 먹고 마시는 행위를 타자에 의해서 대체될 수 없는 사실로서 인정하는바, ① 헤겔은 20세기에 이르러 전개된 대체될 수 없는 실존의 사상을 이미 충분히 알고 있었다. 개체가 절대정신에 흡수되어 있고 개별적 인간이 무시되며 하늘을 날고 있는 듯하다고 안이하게 해석하면 잘못일 것이다. 먹고 마시는 것은 민족의 관습에 의해서 규정되고는 있지만[『기독교의 실정성』 1.106], 먹고 마시는 행위 자체는 개별적 욕망에서의 행위이다[『정신현상학』 3. 489].
자연철학에서는 영양과정의 일부로서, 종교철학에서는 교회의식으로서 다루어지고 있지만, 이 경우에도 보편과의 결합이라는 계기가 있긴 하지만 개체적이다. "자연은 열매로 되어 조리되고 소화되며 먹고 마셔질 수 있는 유용성에서 최고의 완성에 도달한다"[같은 책 3. 526].
② 중요한 것은 칸트의 사물 자체론을 '먹다'에 의해서 논박할 수 있다고 생각한 점이다. 헤겔은 사물 자체론을 사물과 우리의 상호적인 타자존재로서 파악하고, 우리는 현상에 접근할 수 있을 뿐, 사물 자체를 알거나 사물 자체에 접촉할 수 없다는 주장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개마저도 사물 자체를 잡아먹을 수 있는 것이어서 개는 반칸트론자라고 헤겔은 말한다. 흥미로운 것으로 이 표현은 상당히 초기부터 만년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헤겔에게서 보인다. "사물이 자체적으로 무엇인지 알 수 없다고 판단하는 철학은 이 사물들에 대한 자유로운 의지의 행동에 의해서 직접적으로 반박된다"[『법철학』 44절]. "저 철학자(=칸트)보다 어리석은 자는 없다. 배가 고프면 사람들은 요리를 표상하는 것이 아니라 요리를 만들어 배를 채운다"[『철학사』 20. 361].
신의 존재증명을 둘러싼 칸트 비판과 '사유와 존재의 일치'의 사상에는 헤겔의 이와 같은 욕망 · '먹는' 행위 · 실천적 태도에 기초한 독특한 착상이 놓여 있다. 하지만 칸트적인 종합은 〈선을 긋는다〉는 실천적 행위에 의해서 성립하는 등, 사정이 단순하지는 않다. -호시 도시오(星 敏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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