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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계몽사상] (deutsche Aufklärung)

스스로 계몽주의자임을 인정하는 칸트는 『계몽이란 무엇인가?』(1784)라는 제목의 소론에서 "계몽이란 인간이 자기 자신에게 책임이 있는 미성년 상태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 따라서 과감히 알고자 하라! 자기 자신의 지성을 사용할 용기를 가져라! 라는 것이 계몽의 표어이다"[Kant, Werkausgabe Bd. Ⅺ, hrsg. v. W. Weischedel.Frankfurt/M. 1977, S. 53]라고 계몽을 정의하고 있다. 영국, 프랑스에 비해 근대 시민사회의 형성에서 뒤처진 독일에서 타인의 지도하에 있는 미성년 상태로부터의 탈출이라는 계몽 과정은 선진국인 영국과 프랑스의 계몽사상이라는 또 하나의 타인의 지도하에서, 나아가 전근대적인 종교적 권위로부터의 관념적인 탈출이라는 모습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독일 계몽사상은 기독교 그 자체를 이성의 입장에서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과감히 독일어로 철학할 것을 시도한 토마지우스(Christian Thomasius 1655-1728)에서 시작된다. 토마지우스는 영국 경험론의 영향 아래 생활의 이성적인 제어에 의한 행복의 증진이라는 세속화된 시민적 생활이상을 설파한다. 이성, 진보, 행복이라는 계몽주의의 이상은 볼프에게 계승된다. 라이프니츠를 이어 합리적 형이상학을 수립한 그는 이성과 계시 사이에 모순이 없다고 주장하여 멘델스존 등의 계몽사상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칸트와 나란히 독일 계몽사상의 정점에 서는 것은 레싱이다. 그는 계시의 내용을 이성에 의해서 해명하고자 하는 당시의 계몽주의의 사고방식을 한 걸음 더 밀고나가 특정한 종파나 교의에 사로잡히지 않은 이성종교라는 사고방식에 도달했다.

튀빙겐 신학교 시대에 셸링으로부터 '레싱의 심복'이라고 불리고 있던 헤겔에게 있어 독일 계몽사상은 그의 사색의 출발점을 이루는 것이었다. 그러나 프랑크푸르트 시대에는 레싱과 칸트의 계몽사상으로부터 벗어난다. 헤겔의 독일 계몽사상 전체에 대한 최초의 비판은 예나 시대의 논문 『신앙과 지식』(1802)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계몽사상에 대한 그의 평가는 그 후 생애 내내 변하지 않았다.

헤겔에 따르면 독일 계몽사상은 바짝 말라붙은 볼프 류의 지성과 건전한 양식에게 이해되는 한에서의 진리 즉 유용성(세속적인 행복주의)을 원리로 하며, 이것을 가지고 종교적 권위에 도전했다. 그것은 곧바로 볼프 류의 형이상학을 벗어던졌지만, 결국 통속적이고 평범한 철학연구로 떨어지고 말았다. 왜냐하면 성스러운 신전을 땔감으로밖에 인식할 수 없는 계몽적 지성은 긍정적인 내용으로서는 유한한 것과 경험적인 것을 지니는 데 불과하기 때문이다. 독일 계몽사상을 넘어서는 듯이 보인 칸트, 야코비피히테의 철학도 그들의 이성이 지성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무한한 것을 피안에 신앙의 대상으로서 정립하고 이성을 다시 신앙의 시녀로 삼아버리지만, 그런 한에서 계몽과 신앙의 투쟁의 승리자는 계몽이라고 도대체가 말할 수 없다는 것이 헤겔의 주장이다.

-호시노 쓰토무( )

[네이버 지식백과] 독일 계몽사상 [獨逸啓蒙思想, deutsche Aufklärung] (헤겔사전, 2009. 1. 8., 가토 히사다케, 구보 요이치, 고즈 구니오, 다카야마 마모루, 다키구치 기요에이, 야마구치 세이이치, 이신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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