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獨逸] (Deutschland)
도이치(deutsch)란 원래 로마 풍으로 고대 라틴 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민족 고래의 언어를 말하는 사람들을 의미하며, 국경과는 관계가 없는 개념이었다. 게르만 민족이란 독일어와 유사한 언어를 말하는 민족, 즉 현재의 독일, 영국, 스칸디나비아 나라들의 사람들을 가리킨다. 헤겔이 살았던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엽은 영방국가들로 분열되어 있던 독일을 국민국가로서 통일하고자 하는 기운이 높아진 시대였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집필된 『독일 헌법론』에서 헤겔은 대불전쟁 패배 후의 독일의 현상을 "독일은 이미 국가가 아니다"[『독일 헌법론』 1. 461]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것은 이전에 게르마니아의 삼림에서 "목덜미가 강한 사람들"인 독일인이 행사하고 있던 속박되지 않고 독립적인 "독일적 자유"가 철과 같은 필연성을 가지고서 독일인의 운명을 결정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오스트리아 황실을 중심으로 중앙집권을 강화함과 동시에 그때까지의 제후의 자유에 기초한 봉건적 제국의회를 신분제적 대의제도로 개변하는 것에 의한 독일의 국민국가로서의 재생을 제안한다.
장년에 걸쳐 헤겔의 혐오의 대상이었던 프로이센도 곧이어 슈타인-하르덴베르크 개혁에 의해 독일의 미래를 맡길 수 있는 개혁적이고 근대적인 국가로 변모한다. 헤겔도 이것을 인정하고 1818년에는 문부대신 알텐슈타인의 뜻을 받아들여 베를린 대학의 교수에 취임한다. 그 후 독일의 역사는 19세기 후반에 이 프러시아를 중심으로 국민국가로서의 통일을 실현한다.
『역사철학』에서 헤겔은 세계사를 자유의 발전과정으로서 파악하는데, 이 자유가 달성되는 것은 기독교가 보여준 정신적 화해의 가능성이 세속적 질서로까지 확대되는 게르만 세계에서이다. 게르만 세계란 중세로부터 근대에 이르는 기독교적 유럽 전체를 말하는 개념이지만, 또한 종교개혁을 거친 한에서의 좁은 의미의 게르만 민족들의 세계이기도 하다.
헤겔은 이 『역사철학』에서도 "조야하면서 호전적인 동시에 솔직하고 정직하다"는 타키투스의 『게르마니아』 이래의 게르만인상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들이 형성하는 민족공동체에서 자유를 사랑하는 고대 독일인은 공동체 전체에 예속되지 않고 구성원으로서 동시에 자유인이었다고 한다. 여기서는 『독일 헌법론』에서와는 달리 '독일적 자유'가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어서 그는 게르만인의 두 번째 특성으로서 성실(Treue)을 든다. 성실이란 개인이 장군이나 군주에게 자유의지에 기초하여 가담하면서 자발적으로 이 관계를 깨트릴 수 없는 것으로 하는 정신적 태도를 가리킨다.
헤겔은 공동체(Genossenschaft)에서의 개인의 자유와 지배자에 대한 귀속을 기초짓는 성실에 의해 게르만인상, 게르만 사회상을 묘사함으로써 반로마주의적인 게르만 이데올로기를 정착시켰다고도 말해진다. -호시노 쓰토무(星野 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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