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자 對自] (Fürsich)
'향자(向自)', '자독(自獨)' 등이라고도 번역된다. '즉자'가 '타자'와의 관계를 지니지 않거나 지닌다고 하더라도 '우리'에게 그렇게 보인 것이자 외적인 무관심한(indifferent) 것에 그치고 있는 데 반해, '대자'는 '타자'와의 관계를 가능하게 하고 또한 '타자'와의 관계를 내면화한 바의 "부정적 자기관계"[『엔치클로페디(제3판) 논리학』 96절 「보론」]이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즉자'가 그것으로서 '타자'와 관계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사태적으로는 그것에 선행하는 '대자'에서 '타자'와 구별된 '자기'가 성립하기 때문이며, 동시에 그것을 가능하게 하고 있는 '대자'의 관계가 사상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자' 없이는 분절화되지 않은 무차별한 다양과 혼돈이 있을 뿐이다. 역으로 말하면 '대자'에서 비로소 "관념성(Idealität)이라는 규정이 들어온다. ······ 유한한 것의 진리는 오히려 그 관념성에 있다"[같은 책 95절]. 분절화된 세계로서의 세계는 대자의 지평 위에서 성립하는 것이다.
이러한 '대자존재'의 단적인 예로서 헤겔은 '자아'를 들고 있다. "우리가 나(Ich, 자아)라고 말할 때 그것은 무한임과 동시에 부정적인 자기관계의 표현이다"[같은 책 96절 「보론」]. 무한이라는 것은 타자라는 한계를 지니지 않는 자기관계이기 때문이며, 부정적이라는 것은 자기를 한정 · 규정하기 때문이다(스피노자). "자기 자신에 대한 관계로서의 대자존재는 직접성[무매개성]이며, 부정적인 것의 자기 자신에 대한 관계로서의 그것은 대자존재자, 일자(das Eins)이다.
일자는 자기 자신 내에 구별을 지니지 않는 것이며, 따라서 자기로부터 타자를 배제하는 것이다"[같은 책 96절]. 자아는 자기의 자기 자신에 대한 관계이며, 오히려 이 관계에서 비로소 하나의 통일로서의(일자) '자기'로 되고, '타자'와의 관계가 생긴다. 그 내실을 이루는 것이 '참된 무한성'이며, 그것은 "이행 및 타자 안에서 자기 자신과 관계하는 것"[같은 책 95절]을 의미한다. -스기타 마사키(杉田正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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