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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불대동맹전쟁(해방전쟁)] (Koalitionskrieg(Befreiungskrieg)

1793년부터 1815년에 걸쳐 프랑스 혁명 정권과 그에 이어지는 나폴레옹에 대항하기 위해 영국을 주도자로 하여 일곱 번에 걸쳐 유럽 국가들 사이에 맺어진 동맹. 그것은 (1) 프랑스 혁명에 대한 간섭, (2) 식민지를 포함한 세계제패를 둘러싼 영불의 항쟁, (3) 나폴레옹의 정복하에 있는 국민들(민족들)의 해방전쟁이라는 세 가지 측면을 지닌다.

루이 16세의 처형을 계기로 하는 제1차 동맹은 혁명을 분쇄시키고자 한 왕국들의 프랑스 포위전이었지만, 혁명 정권은 한층 더 급진화하여 국민 총동원령으로 타개해나갔다. 2차부터 5차까지는 나폴레옹에 의한 대외진출을 억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해군력에서 뒤진 프랑스는 영국 본토를 공격할 수 없었지만, 대륙 왕국군대들을 타파하고 마침내 대륙봉쇄령에 의해 영국을 제압하고자 했다. 그리고 나폴레옹의 지배하에 놓인 데서 점차 깨어난 민족적인 움직임, 독립한 근대적인 국민국가를 형성하고자 하는 개혁이 '해방전쟁'을 준비했다. 1812년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은 실패하고, 이를 뒤따라 러시아군이 서진한다.

러시아와 동맹을 맺은 프로이센은 13년 2월 대불전쟁을 선포하고 국왕은 '독일의 통일과 자유'를 약속하며 해방전쟁임을 강조했다. 이것은 전쟁을 지렛대로 하여 새로운 국민적 기반을 형성하고자 하는 슈타인 등의 애국적 개혁파의 노선이었다. 그러나 오랜 궁정세력은 혁명에 대한 위험성을 두려워하여 오스트리아의 동맹참가를 원했다. 여기서 제6차 동맹이 성립했다. 13년 10월 라이프치히에서 국민전쟁이 수행되고 나폴레옹은 패퇴했다. 메테르니히가 주도한 빈 회의는 '독일의 통일과 자유'의 실현을 억누르고 승전에도 불구하고 해방전쟁다운 열매를 맺지 않았다. 15년 2월 나폴레옹이 엘바 섬을 탈출하여 파리로 귀환하자 제7차 동맹이 가능해졌고 6월 워털루 전투에서 나폴레옹은 패배했다.

헤겔은 이 전쟁에 관해 (1) 봉건제의 타파라는 점에서 혁명 정권=나폴레옹 승리의 역사적 필연성을 승인함과 동시에, 그것이 프랑스를 위한 착취로 전환된 시점에서 (2) 그 세계사적 사명의 종언과 해방전쟁의 개혁노선이 지니는 새로운 우위를 인정했다. 따라서 (3) 빈 회의는 역사의 동향을 왜곡하는 허용하기 어려운 일탈이었다.

-구메 야스히로( )

[네이버 지식백과] 대불대동맹전쟁(해방전쟁) [對佛大同盟戰爭(解放戰爭), Koalitionskrieg(Befreiungskrieg)] (헤겔사전, 2009. 1. 8., 가토 히사다케, 구보 요이치, 고즈 구니오, 다카야마 마모루, 다키구치 기요에이, 야마구치 세이이치, 이신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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