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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학論理學] ( Logik )

Ⅰ. 예나 시기의 헤겔과 논리학. 헤겔 논리학을 성립사적으로 고찰할 때, 그것이 한편으로는 칸트의 초월론적 논리학과의 철저한 대결로부터, 다른 한편으로는 요한복음의 로고스 해석으로부터 성립한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 왜냐하면 칸트의 초월론적 논리학에서 특히 변증론의 이율배반론은, 이것에 의한 칸트의 형이상학 비판에도 불구하고, 대립하는 것을 통일하는 논리로 변증론을 전환시킴으로써 새로운 형이상학의 가능성에 길을 여는 것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칸트가 변증론에서 자아, 세계, 신을 문제로 삼을 때 이들 3자의 통일적 연관을 신과 인간으로 된 신의 말씀인 예수와 코스모스로서의 세계에서 생각하고자 했던 것이 요한복음의 로고스 해석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사색의 최초의 결실을 예나 초기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미 『차이 논문』에서 헤겔이 철학의 전제로서 절대자와 그 분열을 든 후 "철학의 과제는 이러한 전제를 통합하는 것, 요컨대 존재를 무 속에서 생성으로서, 분열을 절대자 속에서 절대자의 현상으로서, 유한한 것을 무한한 것 속에서 생으로서 정립하는 것이다"[2. 25]라고 말할 때, 여기서는 곧이어 전개되는 논리학의 기본적인 틀이 보인다. 그리고 1801/02년의 예나 강의에서 지성의 형식의 유한성을 폭로하고 형이상학적 인식을 이끄는 것으로서 형이상학과 구별되고 절대자의 학의 최초의 기본적 부문으로서의 논리학이 처음으로 전개되기에 이른다. 여기서 보이는 논리학과 형이상학의 밀접한 관계, 그리고 논리학을 부정적인 방식에서의 절대자의 인식으로서 보는 시선은 분명히 칸트와의 대결에서 얻어졌을 것이다.

이 점은 1804/05년이 되어 이 논리학이 변증법으로서 말해지고 형이상학과 구별되는 데서 단적으로 엿보인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헤겔은 이중부정의 개념, 이에 의한 논리적 규정들의 절대자의 직관으로의 지양, 그리고 범주들과 판단과 추리의 형식이 칸트에서처럼 판단표 등에서 경험적으로 긁어모아지는 것이 아니라 체계적으로 전개되어야만 한다는 인식을 얻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논리학(변증법)과 형이상학의 구별은 1805/06년의 강의에 이르면 사라져 간다. 학에로의 서론은 논리학이 아니라 의식의 경험의 학(정신현상학)으로 넘겨지는 것이다. 그리고 논리학은 정신현상학이 도달한 절대지에 근거한다는 점에서 사유와 존재의 일치에 서는 존재론적 · 형이상학적 논리학으로 되는 것이다.

Ⅱ. 순수학으로서의 논리학. 이리하여 1812년에서 16년에 걸쳐 제1판이 간행된 『논리의 학』은 헤겔에 의해서 '순수학'으로서 규정된다[5. 67]. 이 규정에 의해서 이 논리학이 사유의 형식만을 취급하는 이른바 형식논리학이나, 대상을 구성하는 사유를 취급하는 칸트의 초월론적 논리학과 다른 까닭이 제시되고 있다. 여기서 '순수학'이란 사유를 사유하는 학이며, 이 논리학에서는 내용이 밖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사유 스스로가 부여하고 이에 의해 자기를 기초짓는 학이라는 것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이다.

칸트에서 각각의 범주는 판단하는 자아 내지 판단이 향하는 대상을 회로로 하여 서로 관계지어지는 데 불과하다. 이에 반해 사유의 규정들을 하나의 규정에서 다른 규정으로 나아가는 사유 운동의 진행 형식 속에서 밝히는 것, 이것이 헤겔이 지향한 것이며, 여기서 범주들은 규정된 개념으로서 개념 그 자체의 자기운동의 계기들로 되어 서로 관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이 사유가 자기 자신 이외의 아무것도 전제하지 않고 자기의 운동을 지켜 볼 수 있기 위해서는, 이 사유는 이미 존재와 대립하는 사유여서는 안 된다. 여기서 헤겔에게 있어 논리학은 사유를 사유하는 학이라는 점에서 동시에 사유에 열려진 존재의 학이고, 이미 칸트에서처럼 단순한 주관의 인식형식에 그치지 않고 동시에 존재론적 범주로 되는 것이다.

헤겔이 자기의 논리학, 그리고 객관적 논리학을 전통적 구별에서 말하자면 '논리학'임과 동시에 '형이상학'이고, '존재론'이라고 말하는[5. 61] 것도 이 때문이다.

Ⅲ. 세계 창조 이전의 신의 서술. 헤겔은 논리학의 내용을 "자연과 유한한 정신의 창조 이전의 영원한 본질에서 존재하는 신의 서술"[5. 44]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분명히 요한복음 서두의 구절 "태초에 말씀(로고스)이 계셨다"를 염두에 둔 말이다. 그리고 이 말은 결코 단순한 비유적 표현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헤겔의 논리학은 그에게 있어 신의 현존재의 존재론적 증명으로서의 의미를 지니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신의 현존재의 존재론적 증명은 신에서의 개념과 실재, 사유와 존재의 일치를 전제하여 개념으로부터 실재를 도출하는 것이다. 이 증명을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에서 100탈러의 개념과 현실의 100탈러의 질적 차이를 지적하여 부정한 것은 잘 알려져 있는 대로이다. 이에 대해 헤겔은 100탈러라는 유한한 것에 관한 논의를 신이라는 무한한 것에 적용하는 것이야말로 양자의 질적 차이를 무시하는 것이라고 비판했지만, 그러나 이것이 전통적인 존재론적 증명을 긍정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종래의 존재론적 증명에서는 신의 개념이 그 자신에서 존재를 포함한다는 것이 전제되는 데 그치고, 이 전제 자신이 기초지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신의 현존재의 증명이 신앙의 문제인 한에서 신의 본질은 물어지지 않은 채 신의 현존재만이 물어졌기 때문이다.

철학에서는 이러한 전제로서의 성격이 지양되어야만 한다. 그런데 어떤 것을 증명한다든가 기초짓는다는 것은 그것을 근거를 향해 근원으로 되돌린다는 것이지만, 신은 어디서 자기를 근원으로 되돌리는 근거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인가? 신에 있어서는 다름 아니라 신 자신이 자기 자신을 현존재로 데려옴으로써 증명한다. 다시 말하면 개념과 존재의 일치를 신, 즉 절대개념의 자기 산출로서 생성의 모습에서 해명하는 것 이외에 다른 길은 없다. 그리고 우리는 헤겔의 논리학을 바로 이 길을 서술하는 것으로서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논리학을 전개하는 주체는 정신으로서의 신이며, 인간의 의식적 생활도 역사적으로 전개하는 정신의 자기운동 속으로 짜 넣어져 바로 정신이 자기를 아는 장소로 되는 것이다.

Ⅳ. 논리학의 구조. 헤겔에서 논리학은 개념의 운동의 다양한 단계에 따라 크게 존재로서의 개념을 취급하는 존재론과 본질로서의 개념을 취급하는 본질론을 내용으로 하는 객관적 논리학과, 개념으로서의 개념을 취급하는 주관적 논리학으로 구분된다. 존재론은 1831년에 개정되지만, 질의 범주와 양의 범주, 그리고 그에 더하여 도량의 논리를 취급한다. 나중에 자주 논의되기에 이른 존재와 무, 생성의 삼분법 구조는 질의 범주 서두에서 전개되고 있다. 또한 양의 범주에서는 미적분학에서 획득한 무한 개념이 근대 형이상학과 피히테 철학의 끝없는 악무한에 맞서 진무한으로서 대비되고 있다.

본질론은 반성의 매개 영역을 주제화한다. 여기서 반성이란 사태를 밖으로 추사유하는 보통 말하는 반성과는 달리 사태가 자기 속에서 사태 그 자체의 내적 대항 운동으로서 구부러져 귀환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때 직접적인 존재는 본질에 의존하는 것으로서 가상이 된다. 존재의 범주들이 그때마다 다른 것으로 이행한 데 반해, 동일성과 구별에서 시작하여 모순과 근거에 이르는 반성 규정들의 체계는 동일률, 배중률, 모순율, 근거율 등 전통적인 논리학의 공리에 대한 사변적 해석을 통해 자타관계의 내적 연관을 해명할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연관은 이어지는 현상과 사물 자체, 전체와 부분, 실체성과 인과성과 교호성과 같은 본질 규정들을 꿰뚫고 있을 뿐 아니라 논리학 전체의 근저에 가로 놓여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실체 개념으로부터 개념론으로 이행할 때에 스피노자주의에 대한 내재적인 반박을 시도하고 있다. 그리고 존재와 본질의 통일로서의 개념은 자기를 규정들을 통한 자기 동등성이라는 실체의 근본구조와 지의 자기관계로서의 주체의 근본구조를 아울러 가짐으로써 사유하는 자기관계를 통해 구성되는 현실적인 것으로서 제시한다.

그리고 개념은 완벽한 자기규정에 이르는 도상에서 보편성과 특수성과 개별성의 계기들, 또한 판단과 추론(추리)의 모든 격들을 더듬어가게 된다. 그리고 이것들은 개념의 주관성의 측면들이지만, 이 전개를 통해 추론의 구조가 동시에 객관적 세계의 근본구조로서 제시되게 된다. 거기서 객관성으로서 기계적 연관, 화학적 연관, 목적론이 논의된다.

그리고 이러한 주관성과 객관성의 통일에서 개념은 개념으로서 완전한 형식을 얻어 이념(이데)이 된다. 물론 여기서 이념은 플라톤과 칸트를 따르는 것이긴 하지만, 같지는 않다. 칸트에서 이념은 규제원리로서 주관성에 머무르고 있지만, 헤겔에서는 동시에 객관적 세계에 실재하며 활동하고 있는 것이며, 플라톤에서 이데아는 변증법적으로 운동하지 않지만, 헤겔에서 이념은 유기적 전체로서의 생명의 형태를 취한 후 이론적인 것과 실천적인 것으로 발전하고, 최후로 참다운 것과 선한 것의 통일로서의 절대이념에 이르기 때문이다.

절대이념에서 변증법이 내용에서 분리되어 밖으로부터 사태에 적용되는 도구와 같은 의미에서의 방법이 아니라, 개념의, 따라서 사태 그 자체의 내재적 운동이라는 것이 제시된다. 헤겔 사후에 이러한 헤겔의 논리학은 한편으로는 후기 셸링, 트렌델렌부르크, 쇼펜하우어키르케고르포이어바흐, 그리고 최근에는 K. 포퍼 등의 격렬한 비판에 노출됨과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마르크스에 의한 변증법적 유물론으로의 개작을 통해 마르크스주의에, 그리고 최근의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문화비판과 철학적 해석학 등에 영향을 주고 있다.

-고즈마 타다시()

[네이버 지식백과] 논리학 [論理學, Logik] (헤겔사전, 2009. 1. 8., 가토 히사다케, 구보 요이치, 고즈 구니오, 다카야마 마모루, 다키구치 기요에이, 야마구치 세이이치, 이신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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