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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영(金浩永, 생몰년 미상) 金重政 崔鐵 崔徹 紅鐵 林汪洋 林一 申均龍 申河龍 高津 林鐵] ()

(재일조선노총 중앙위원, 전평 중앙위원)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어려서 서당에서 한문을 배웠다. 1923년경 일본으로 가서 1927년 재일본 조선노동총동맹 중앙위원, 토오꾜오(東京) 조선노동조합 간부를 지냈다. 1929년 ‘재일조선 노총의 당면의 문제에 관한 의견서’를 기초하고 재일조선노총을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 [全協]로 해소할 것을 주장했다. 한때 토오꾜오 카나가와현(神奈川縣) 조선합동노조 폭행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재일조선노총 중앙위원직에서 물러났으나 젠꾜오(全協)로 통합되자 다시 복권되었다. 1930년 젠꾜오 조선인위원회 결성에 참여했다. 1932년 반제동맹에 가입하고 젠꾜오 식료조합 코오또오지구(江東地區) 조직지도원이 되었다. 7월 한때 일본경찰에 검거되었고 9월 교통쇄신회(交通刷新會)에 가입했다. 1934년 젠꾜오 일본항만노조위원회 토오꾜오지부 책임자로서 기관지 『항만노동자』를 발행했다. 일본경찰에 검거되어 옥중에서 변절하고, 5월 기소유예 처분을 받아 출옥했다. 11월 한글신문 『동경조선민보』(1936년 9월 『동경조선신보』로 개칭)를 창간했다. 1937년 8월 검거되었으나 다시 전향하고 석방되어 9월 『동경조선신보』 폐간신고서를 경찰에 제출했다. 1938년 9월 조선북부지방 폭풍재해 구제사업 발기인이 되었다. 해방 후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 중앙위원으로 선출되어 전평 기관지 『전국노동자신문』의 발행인이 되었다. 1946년 2월 전평을 대표하여 민주주의민족전선 결성대회에 참가했다. 그후 월북하여 제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선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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