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金喆, ?~1930) 金昌旻 金鐵] ()
(‘간도 5 ․ 30봉기’ 지휘자) 1920년경 군정서(軍政署) 산하 사관학교에서 수학했다. 1924년 10월 길림(吉林)에서 정의부(正義府) 창립대회에 학우회 대표 자격으로 참가하여 군사분과위원이 되었다. 1928년 1월 재동만(東滿)조선청년총동맹 중앙집행위원을 지냈다. 8월 재만 조선인에 대한 중국측 지주 ․ 관헌의 압박에 항의하고자 소집된 ‘세린하(細麟河) 동포참살사건 대책강구발기회’의 교섭위원이 되었다. 9월 고려공산청년회 회원으로서 용정촌(龍井村)사회단체협의회 내 세포에서 일했다. 1930년 4월 전동만폭동위원회 결성에 참가하고 폭동지휘자로 선임되어 5월 간도 5 ․ 30봉기를 현장에서 지휘했다. 6월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용정 일본총영사관에 압송된 상태에서 1주일간 단식투쟁을 하다가 옥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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