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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조] (趙光祖)

1482~1519. 조선 중종 때의 성리학자ㆍ정치가. 자는 효직(孝直). 호는 정암(靜庵). 14세에 한훤당(한훤당) 김굉필(김굉필) 문하에서 성리학을 배우고, 정몽주, 길재의 성리학통을 이어받았다. 중종 10년 왕의 신임을 받아 신진 사류(新進士流)로서 정계에 나아가 “1) 도학을 존숭하고(崇道學). 2) 인심을 바로 잡으며(正人心), 3) 성현을 본받고(法聖賢), 4) 지치를 흥성케 한다.(興至治)”는 4대 강령을 표방하여 유학의 근본이념인 왕도사상(王道思想)을 실현하고자 하였다. 이와 같은 조광조의 노력은 지치주의(至治主義)라는 실천 유학적인 기풍을 일으켜, 한때 성공을 거두기도 하였다. 그의 정치 강령은 첫째, 정치가 잘 되려면 왕의 마음이 바르게 되어야 하고 신하는 왕에게 직언하고 왕은 이를 받아 들여야 한다. 둘째, 정치의 근간은 유교로서 불교, 도교 등을 금해야 한다. 셋째, 인재 등용에 있어 현량과(賢良科)를 두어 인재를 추천해 중용한다. 넷째, 도학을 일으키기 위해 교육 제도를 개혁하고, 가례(家禮)와 향약(鄕約)을 보급시킨다는 것 등이었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정책은 급진적이고 과격하였던 까닭에 보수 세력인 훈구파에 의해 반발을 사서 기묘사화(己卯士禍) 때 사약을 받고 죽게 되어서 실패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로써 그의 지치주의 유학도 현실적으로 실패하게 되었다. 정암사상의 특징은 사장(詞章)에 치우친 훈구 세력에 대항하여 경(敬)과 ‘융평(隆平)’을 기치로 하여 선진유학(先秦儒學)의 왕도사상을 실현하고자 한 도학 정치사상이라 하겠다. 남곤(南袞) 등 훈구파에 의해 그의 이상이 실패하게 됨에 따라 조선 전기의 실천 유학적 분위기는 종식되고 퇴계와 율곡의 사변적ㆍ이론적 성리학으로 전환하게 된다. 이후 정암은 조선 정치의 귀감이 되었다. 시호는 문정(文正). ⇒ 지치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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