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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론] ([영 scepticism, 도 Skeptizismus])

그리스어 skepsis(검사, 탐구)에서 유래된 말이다. 1) 넓은 의미로 보편적인 진리를 확실히 파악하는 것은 인간에 있어서 불가능하다고 보는 입장이다. 2) 좁은 의미로는 어떤 특정한 영역에 관해서 확실한 진리를 파악할 수 있는 가능성을 부정하는 학설을 말한다. 예컨대 종교적 회의론, 인식론적 회의론, 도덕적 회의론 등이 그것이다. 서양 철학사에 있어 최초로 이것을 조직적으로 서술한 것은 고대의 회의론자들이었다. 이 회의론자들은 통상 세 시기로 구분된다. ⓐ초기의 회의론자들: 퓌론(Pyrrhon)과 티몬(Timōn, 기원전 320년경~230년경)이 여기에 속한다. 이들은 무엇에 관해서도 확실한 판단을 내리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판단을 유보해야만 한다고 주장하였다. ⓑ중기의 회의론자들: 플라톤학파의 아카데미파의 중기에 속하는 아르케실라오스와 카르네아데스가 그 대표자이다. 이들은 스노아학파를 독단론자로 규탄하고 개연적인 지식으로 만족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후기의 회의론자들: 아이데시데도스와 섹스투스 엘비라쿠스 등이 여기에 속하며 이들은 퓌론의 사상을 부활하였다. 전자는 회의에 대한 10개조의 근거를 제시하였다고 전해지고 후자의 저서는 오늘날 그리스의 회의론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고대 회의론자들은 상대적인 경험적 진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독단적인 형이상학에 반대한 것으로 이들의 태도는 근대의 실증주의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섹스투스 알렉산드리아의 경험적 의학파(醫學派)에 속했던 인물로 그를 포함한 이들 경험적 의학파들이 판단을 유보하였던 것은 불안의 원천인 오류로부터 해방되어 마음의 안정, 즉 아타락시아을 구하였기 때문이다. 고대의 회의론은 절대적이었던 그리스철학 사상의 쇠퇴를 의미하였지만 근세 초기에 있어서 몽테뉴, 베일 등이 회의론을 부활시켰던 경우는 중세사상이나 교회의 권위에 대한 투쟁을 의미하였다. 18세기 흄의 회의론도 신학적인 세계관에 대하여 일대 타격을 가한 것이며 또 다른 면으로는 칸트에게 영향을 주었으며 마하주의의 원천이 되기도 하였다. 현대의 비합리주의사상도 이성에 대한 불신으로서의 회의를 그 하나의 특징으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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