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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터 크레인 (1845-1915)] (Crane, Walter)

월터 크레인은 1845년 리버풀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에 조각공에게 도제로 지내면서 그는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발전시켰는데, 특히 삽화와 디자인에 소질이 있었다. 그의 고용주는 이전에 차티스트였던 윌리엄 린튼이었는데, 린튼은 그에게 정치적 이념들을 소개했고, 또한 유력한 정치적 표상들(figures)을 맡겼다. 크레인은 도자기 디자이너, 아동 도서 삽화가,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확고히 자리매김했다.
1860년대에 그는 자유당 내 급진파 지지자로서 정치적으로 활발히 활동했고, 1871년 파리코뮌 때에는 사회주의자가 되었다. 1880년대 그는 디자이너로서 공통의 지반을 갖고 있었던 윌리엄 모리스와 오랫동안 협력하기 시작했고, 둘은 모리스가 만든 팜플렛 <예술과 사회주의Art and Socialism>에 담긴 장인과 예술가의 정신을 뛰어넘는 산업 디자인의 출현에 섬득함을 느꼈다.
크레인과 모리스는 1884년 사회민주연맹(SDF)에 가입했고, 크레인은 당기관지 <정의Justice>에 삽화를 자주 기고했다. 그러나 1년이 채 지나기 전에, 하인드만의 지도력에 대한 환멸을 느끼며 SDF를 탈퇴했다. 이 후 엘레노어 맑스, 에드워드 어벨링, 모리스, 벨포드 박스에 의해 만들어진 사회주의자 동맹(SL)에 가입해서 당기관지 <공화국Commonweal>에 삽화를 그렸다. 1888년 크레인, 모리스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현대 예술과 수공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미술 공예 전시 협회the Art and Crafts Exhibition Society>를 설립했다.
사회주의는 개혁을 통해 달성될 수 있다는 크레인의 믿음은 그를 잠시동안 페이비언 협회에 가입하도록 만들었다. 거기서 그는 조지 버나드 쇼 및 웹스와 연합했다. 그러나 후에, 보어 전쟁에 반대하지 않는 그들과 헤어졌다. 그는 계속 모리스 등의 다른 사람들과 함께 1887년의 피의 일요일과 같은 사건을 포함한 운동 및 노동자 계급에 의해 행해진 영웅적 사실들을 묘사하기 위해 같이 협력하며 작품을 만들었다. 그동안 그는 지금 널리 읽히는 저작, <장식 예술의 권리The Claims of Decorative Art>를 출판했는데, 거기서 불공평한 노동 체계는 예술의 기능과 미를 방해한다고 주장했다.
1890년대에 크레인은 현재 아주 유명한 <주장을 위한 카툰Cartoons for the Cause> 콜렉션에서 출판된 노동절 삽화와 전유럽에 걸쳐 볼 수 있는 배너, 포스터, 팜플릿을 그렸다. 그는 1898년의 강의 ‘디자인의 기초’와 1900년의 강의 ‘선과 형태’를 통해 두 권의 강의록을 출판했고, 많은 사회주의 저널에 삽화를 기고했다. 1915년 그는 부인의 충격적인 사고사 이후 곧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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