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스주의의 발전] (Marxism, development of)
'맑스주의‘라는 용어는 맑스가 생존해 있을 때는 알려져 있지 않았다.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은 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라는 것이다‘라는, 엥겔스가 전하는 맑스의 언급은 그의 사위 라파르그가 이 문구를 사용한 것과 관련하여 언급되어 왔다. 물론 이러한 언급에서 맑스가 자신의 저서에 나타나는 이론적 체계의 사상을 원칙적으로 거부했던 것으로 추론하기는 불가능하지만, 자신이 포괄적 세계관을 제시했다고 주장하지 않은 것만은 분명하다. 맑스와 엥겔스의 사상은 최초로 제2인터내셔날의 기간에 후자의 방향에서 발전되었다. 따라서 플레하노프(1894)는 ’맑스주의는 통일적 세계관이다‘라고 썼으며,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변증법적 유물론이라는 용어를 도입하였다. 반면 카우츠키에게 그들의 저서는 자연과 인간사회 모두를 포괄하는 전반적 진화론이었으며, 그 가운데 자연주의적 윤리관과 유물론적(생물학적)세계관은 중요한 부분을 이룬다. 엥겔스 자신은 독일 사회민주당(SPD)의 지도자들의 요구에 따라 《반듀링론》(1873)에서 이러한 방향의 최초 입장을 취하였다. 《반듀링론》은 (맑스가 약간 협력을 했던) 사회주의 정당의 당원들에게 맑스의 중요한 저서인 자본론》보다 더 훨씬 큰 영향을 끼친 저서였다. 《자본론》은 첫 한권만이 맑스가 생존했던 시기에 출판되었으며, 나머지 두권은 엥겔스(1885, 1894)가 맑스의 원고와 주석을 토대로 편집하여 출판하였다.
맑스는 자신의 이론적 저서들을 전일(專一)적으로는 아니라고 해도, 일차적으로는 혁명적 노동자계급의 관점에서 본 정치경제학 비판과 역사의 유물론적 개념으로 인식했던 것 같다. 그 유물론적이라는 것은 물질적 생산이 이루어지는 방법(넓은 의미에서의 생산 기술)과 물질적 생산이 조직되는 방법(마르크스의 용어법에서는 ‘생산관계’, 그리고 그 보다 앞선 자료들에서는 '거래관계‘)이 한 시기의 정치적 조직과 지적 표상에 결정적 요인이라는 의미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은 단지 의식의 변화를 통해 사회적 및 정치적 상황을 변혁시키려는 데 목적을 두었던 청년 헤겔파의 주관적 관념론의 입장에 대한 의식적 반대를 통하여 발전되었다. 청년 헤겔파의 관점은 ’자신의 마음에서 국가와 재산을 물리치고‘ ’자유인 연합‘에 동참할 것을 시민들에게 주장하는 무정부주의 사상가 막스 슈티르너의 저서에 극단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에 대해서 맑스는 국가와 재산(화폐 따위)은 무시한다고 해서 세상에서 사라져 버릴 주관적 환상이 결코 아니며, 그렇다고 이것은 영원 불멸의 것으로 인식할 필요도 없는 현실의 반영이라고 하였다.
‘정치경제학의 비판’-역사에 대한 이러한 유물론적 개념에 따라-은 ‘그릇된 표상’에 대한 비판뿐만 아니라 필연적으로 이러한 (고전적 시민계급 정치경제학의)표상을 낳는 객관적 (물질적, 사회적) 조건에 대한 비판도 포함한다. 이 범위에서 보면 고전적 경제이론도 단순히 ‘그릇된’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생산양식과 그 내적 관계 현상의 적절한 (완벽하지는 않지만) 반영인 것이다. 가치, 화폐, 이윤, 잉여가치 등은 이러한 생산양식의 현상 형태들(객관적 범주)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현상 형태들은 그 생산양식과 함께 소멸될 뿐이다. 원칙적으로 이러한 비판이론은 (어떠한 과학적 이론과 마찬가지로) 어떤 개인에 의해서도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러나 한 계급 전체는 자신의 존재가 그 관계의 복잡한 체계를 인식해야 할 필요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때만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 뿐이다. 자신에게 손상을 입히지 않고 정치경제학의 비판을 받아들일 수 있는 유일한 계급은 노동자계급이며, 실제로 이러한 비판을 수용하는 것이 노동자계급 해방의 필연적 전제조건이다. 시민계급을 구성하는 개인(예를 들면 엥겔스)은 자신의 계급적 입장의 한계를 초월할 수 있는데 반하여, 한 계급 전체가 이러한 방식으로 자살을 할 수 있다고는 맑스에게 상정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자본가계급이 맑스의 이론을 수용하는 것을 가로막는 어떤 실제적 장벽이 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자본가계급은 맑스의 이론을 무시하거나 공박하는 데 실존적 이해관계를 가진다.
‘주관적 요인’, 즉 혁명에 대한 순박한 언명을 강조하면서 혁명은 (원칙적으로) 그 어느 때나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바쿠닌이나 블랑키(→블랑키즘)의 혁명 이론에 반대하여, 맑스는 혁명의 객관적 조건은 노동자계급 혁명이 승리를 거두기에 앞서 이미 성숙되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물론 맑스로서도 이러한 객관적 조건이 무엇인가를 정확히 언급할 수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때때로 그는 생산력이 현존의 사회형태에서 이룰 수 있는 가장 성숙한 정도에 이르기 전까지는 혁명은 일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 경우 경기침체는 혁명의 전제조건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자본론》제Ⅲ권(제13장, 제14장)에서 공식화된 ‘이윤율 저하의 경향’은 자본주의체제가 궁극적으로는 이러한 경기침체의 절정에 이를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엥겔스(‘러시아 대륙 밖의 사회’, 《민족국가), no. 43, 1875)는 현대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사회 혁명은 ‘이러한 변혁을 수행할 노동자계급 뿐만 아니라, 그들의 손안에서 사회적 생산력이 그들 스스로 계급적 구분의 철폐를 궁극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정도로 발전해 왔던 시민계급도’ 필요로 한다고 역설하였다.
정부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1875년 이후 급격하게 발전한 독일 노동운동에서 실질적인 혁명적 변화의 불가능성과 노동자계급 조직들의 문화적 통합의 필요성은 색다른 ‘세계관’을 필요로 하였다. 그것은 노동자계급에 대한 교육의 필요성과 시민계급(그리고 봉건적 잔재) 문화로부터 노동계자급이 배제됨으로 인해서 강화된 필요성이다. 이것은 직접적으로 종교적 개념들을 대치하는, 세계에 관한 포괄적 원리로서의 맑스주의의 발전을 가져오게 하였다. 결국 카우츠키와 플레하노프와 같은 맑스주의 사상의 지도자들은 널리 보급되어 있는 유물론적 이데올로기의 요소들을 그 원리에 도입하였다. 맑스의 역사개념은 엥겔스와 다른 사람들에 의해 전자본주의 사회에까지 적용되었으며, 다윈의 진화론에 버금가는 과학적 성과로 인정되었다. 다윈이 자연에 기여했던 것을 맑스는 인간 사회에 했던 것이다. 이렇게 정립된 맑스주의적 세계관은 노동운동-독일에서 뿐만 아니라-에서 비견할 수 없는 객관적 발전과정에 의해서 생겨났다는 의식을 창출하였으며, 이러한 방법으로 자기 인식을 강화시켰다. 다윈주의를 널리 보급시킨 헥켈[Haeckel](1843-1919)은 이러한 세계관의 측면에서 헤겔과 그의 변증법보다 훨씬 더 큰 중요성을 차지하고 있다. SPD-거의 완전한 최초의 맑스주의 정당-의 점증하는 수적인 힘과 정치적 무기력 사이의 모순은 그 자체의 하위 문화의 형성에 의해 은폐되고 그것으로 보상되었는데, 이러한 문화 형성의 이데올로기적 토대는 맑스주의였다.
혁명 전의 러시아에서 맑스주의의 혁명적 희망과 사회-정치적 현실 사이의 모순은 반(半)입헌국이었던 독일 제국보다 훨씬 심각하였다. 그곳에서 맑스주의는 엘리트들에 의해서, 이미 대규모의 산업에 고용된 인구의 소수에게만 전달되었다. 레닌의 당 이론은 이러한 관계를 매우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다. 맑스주의는 특수한 목적을 위해 창조된 조직-‘새로운 유형의 정당’-에 의해 밖으로부터 노동자계급에게 주입되어야 하는 포괄적 세계관이며 정치이론이었다. 그 이데올로기-스탈린 시대에는 거의 무비판적으로 하나의 세계관으로 불리던 마르크스주의의 이러한 원리로서-는 정예정당의 규율과 전일성(專一性) 및 확고한 지도력을 획득하도록 되어 있었다. 다라서 노동자계급과 노동자계급 의식 사이의 관계가 전도되었다. 우선 계급의식을 가진 지식인의 도움을 받은 정예 정당은 ‘맑스주의적 세계관’이 그 핵심을 이루는 계급의식을 발전시켰다. 그 다음 이러한 의식은 노동자계급에게 전달되며, 그것은 혁명 뒤 매우 빠르게 성장하였다. 레닌은 경험적 사실을 토대로 자신의 이론을 수정하려 하였지만, 그 세계관의 원리는 스탈린 치하의 관료적 국가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시기에 독단화되고 말았다. 맑스주의는 국가와 당의 공식적 교의가 되었으며 모든 소비에트 시민의 의무적인 세계관이 되었다. 맑스주의적 세계관이 모든 시민들뿐만 아니라 과학과 예술마저도 걸쳐야만 하는 죄수복과도 같이 되었던 것은 대략 1920년대 말부터였다. ‘맑스주의의 언어학’이 있고, 우주론, 유전학, 화학 등에 관한 맑스주의적 개념이 존재한다. 스탈린이 죽고 새로운 지도체제가 들어선 뒤, 자연과학에 대한 당 이론가의 보잘것 없는 지도가, 서구와 비교해서 볼 때, 소비에트의 과학과 기술에 대단히 불리하다는 것이 명백해지자 이 분야에서의 지도는 철회되었다. 그러나 어느 정도는 자유화되었지만 사회과학, 문화, 예술, 문학에서는 그러한 지도가 여전히 잔존하고 있다.
맑스가 비판이론의 분야에 기여한 점은 입증될 정도는 아니지만, 하여간에 그것이 맑스주의적 세계관으로 통합됨으로써 그 가치가 더해지기 보다는 오히려 평가절하되었다. 맑스가 확신에 찬 무신론자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는 종교를 부자유한 사회적 상황의 필연적 산물로 보았으며 생산자들의 자유로운 결합(공산주의 하에서)이 확립됨에 따라 그것은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는 ‘유물론적 이데올로기’가 종교를 대치해야 한다는 것을 지지하지는 않았다. 그가 즐겨 사용한 좌우명-모든 것에 대한 의심으로부터-은 그로 하여금 이 부분에 관해서는 회의적이 되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오히려 이러한 이데올로기의 출현과 그의 지속, 그리고 특히 국가에 의해 강요된 권위주의적 세계관은, 맑스의 입장에서는 부자유한 사회적 및 정치적 상황의 표현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리고 소련 맑스주의의 독단적 세계관은, 이러한 이데올로기만이 통용되는 관료적 지배의 사회 및 정치구조가 극복되기만 하면 저절로 사라질 것이다.
소비에트 맑스주의의 포괄적 세계관에 대응하여 소위 서구 맑스주의-루카치와 코르쉬의 초기 저서에서 시작되는-가 발전해 왔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엥겔스 이후에 발단된 바와 같이, 자연변증법의 맑스주의에의 통합을 거부하고 ‘주관적 요인’과 비판의 자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더욱이 이러한 ‘서구’ 혹은 ‘비판적’ 맑스주의에서는 코르쉬(1923)에 의해 처음 옹호된 맑스주의 자체에 대한 맑스주의적 비판의 적용도 중요하게 되었다. 소비에트 맑스주의는, 연구를 위해서 활용될 수 있는 실질적인 재정적 지원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비판적 자기 수정을 가할 수 없음으로 인해서 그 사상적 빈곤함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1920년대 이후 비독단적 맑스주의는 많은 분야에서 서구의 사상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케임브리지에서 스라파, 로빈슨, 돕브 등은 신리카르도 학파 이론의 요소들이 혼합된 맑스주의적 정치경제학 비판을 수십년 동안 지속하였다(→돕브;리카르도와 맑스;스라파). 미국에서는 바란(1957)이 제 3세계의 저개발과 발전의 문제에 대한 비판적 마르크스주의의 접근 방법을 처음 도입하였다. 맑스주의의 영향력은, 때로는 베버의 이론과 결합되어, 사회학과 역사 분야에서 상당히 증대되었다. 특히 프랑스 역사학파의 역사가들은 맑스주의적 접근 방법 위에서 폭넓은 결실을 맺였다.(→사료편찬). 이러한 서구 맑스주의 성과의 어떤 부분은 ‘정통’맑스주의자들로부터 날카로운 비판을 받아왔지만, 레닌이 사망한 후 그들의 저서가 극히 예외적인 경우(예를 들면 프레오브라첸스키와 바르가)를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소비에트 철학과 사회이론이 어떠한 진보를 이루는 한, 그것은 맑스주의의 토대 위에서라기 보다는 맑스주의에도 불구하고 라는 표현이 적절하며, 특히 기술적 응요(군사적 응용을 포함해서)에 매우 중요한 기호 논리학과 인공 두뇌학과 같은 고도의 전문분야에서 그렇다고 보아야만 하겠다. 서구의 맑스주의 사상이 훨씬 더 활력있고 독창적일 수 있는 주요 원인 중의 하나는 의심의 여지없이 서구의 맑스주의 사상이 사회과학, 철학, 그리고 여타의 학문 분야에서 다른 비맑스주의적 발전 영향을 받아들인다는 데에 있다.
[관련자료]
Bukharin, Nikolai 1921(1925): Historical Materialism: A System of Sociology.
Fetscher, Iring 1970: Karl Marx and Marxism.
Hobsbawm, Eric, J. et al. eds.(1980-): The History of Marxism.
Kolakowski. Leszek 1978: Main Currents of Marxism.
Korsch, Karl 1923(1970): Marxism and Philosophy.
-1929: 'Karl Kautsky und die materialistische Geschichtsauffassung'.
Lichtheim, George 1961: Marxism: An Historical and Critical Study.
Lukács, Georg 1923(1971): History and Class Consciousness.
Marcuse, Herbert 1958(1964): Soviet marxism: A Critical Analysis.
Stalin, J. V. 1938: Dialectical and Historical Materialism.
Vranicki, Predrag 1972, 1974: Geschichte des Maeismus.(2 vo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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