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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자본(주의)] (monopoly capitalism)

19세기 말에 등장한 자본주의의 새로운 단계의 특징인 독점이라는 개념은 레닌과 금융자본이론가들에 의해서 마르크스주의에 도입되었다. 그러나 독점자본주의라는 용어는 1960년대 중반 마르크스주의적 경제이론에 대한 관심을 부활시키는 데 중요한 영향을 끼친 바란과 스위지의 저서(1966)에 의해서 다른 의미를 가지면서 새롭게 부각되었다. 이 저서는 두 저자의 이전 저서(Sweezy, 1942; Baran, 1957)에서 자신들이 제시한 개념들을 발전시킬 것이다. 이 저서의 논제들은 《먼스리 리뷰》지에 실린 풍부한 논문들과 브레버만의 저서(1974)와 같이 이 개념의 틀 속에서 쓰여진 중요한 저작들에 의해서 이후 확인되고 있다. 바란과 스위지의 독점자본에 대한 저서들은 특히 북미와 남미에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에 대한 관심을 부활시키기는 했지만, 그 속성은 수정주의였다. 안정되고 성장하고 있는 듯 보이는 전후 자본주의에 직면하여 그들은 마르크스에 의해서 폭로된 모순이 다만 또 다른 모순들에 의해서 대치되었으며, 자본주의는 이 새로운 모순을 포함하는 새로운 방법을 발전시켰다고 주장하였다. 그들은 자본주의의 특징에 나타나는 중요한 변화는 산업자본들 사이의 경쟁이 독점에 의해서 대치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달리 말하면 각 기업이 그 상품을 파는 시장에서 비중이 높아지고 질적 변화를 겪게 되었다는 것이다. 바란과 스위지는 이것을 독점자본주의 단계의 특징을 규정하는 것으로 보았다. 비록 그들이 이러한 발전의 원인을 설명하기 위해서 마르크스주의의 자본의 집접과 집중 법칙에 의존하고, 그들이 사용하는 개념이 마르크스주의적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바란과 스위지는 그 결과가 독점기업들의 이윤의 증가라고 하는 신고전 경제학파의 기본적 일반원리를 따르고 있는 것이다.

바란과 스위지 학파에 의해서 사용된 독점자본 개념에서 독점기업의 이윤증가는 마르크스의 이윤율 저하 법칙을 대체하는 하나의 법칙의 위치를 부여받는다. 총이윤이 ‘사회의 경제적 잉여’에 매우 가깝다고 주장함으로써 바란과 스위지는 ‘그 체제가 발전함에 따라 잉여가 절대적, 또는 상대적으로 증가한다는 하나의 독점자본주의의 법칙을 정식화한다’(1966, p.72). 그들은 이 잉여 증가의 경향이 이윤율 저하 법칙을 대치하는 것은 ‘경쟁적 자본주의에서 독점자본주의로의 구조적 변화에 가장 기본적’ 사항을 이론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간주한다. 새로운 체계의 가장 현저한 양상들이 바로 이러한 경향에서 발생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경제적 잉여’개념은 마르크스의 잉여가치 개념과는 매우 다르다는 것에 유의해야 한다.


경제적 잉여는 가치 대신에 시장가격으로 계산된다. 더욱 중요한 것은 경제적 잉여가 사회적 필요 비용의 본질에 관련된 규범적 판단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사회에서 잉여는 생산비가 사회적으로 필요한 한 총생산에서 생산비를 뺀 것이라고 주장한다. 몇몇 사업비용들은 단지 판매 활동과 관계될 뿐이라는 근거에서 이러한 범주로부터 제외된다. 이것은 판매원의 임금과 같은 비용뿐만 아니라 그 기본적 기능에 엄밀하게 필요하지 않은 개별상품의 포장비도 포함한다. 그러므로 예를 들면 자동차의 크롬 장식판과 남의 눈길을 끌기 위한 장식물은 자동차의 기본적 기능에 필요한 비용이 아니다. 이러한 비용은 사회적 필요 비용에 포함되어서는 안되고 잉여의 요소로 인식되어야 한다. 상품이 (부분적으로) 사용가치가 아니라고 하는 이러한 자의적 정의는 마르크스의 잉여가치 또는 생산적 노동과 비생산적 노동개념과 무관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경제적 잉여의 증가가 교환과정, 즉 시장의 지배를 통해서 발생한다고 주장하지만, 마르크스의 잉여가치는 노동과정과 그것의 가격 결정 과정과의 접합에 근거하는 것이다.


브레버만(1974)은 독점자본주의 아래서 노동과정에 주목한다. 그는 주목할 만한 역사적이고 이론적 연구를 통하여 그가 독점자본주의 단계의 시작에 결부시킨‘과학적 경영’의 대두를 검토하고, 노동과정에서 형태 변화, 노동자의 기술저하, 그리고 그 결과로 전개되는 직업구조와 노동자계급의 지위 변화에 대하여 조사했다. 그러나 바란과 스위지에 의해서 개발된 독점자본주의 개념(그리고 경제적 잉여와 같은 그 요소들)은 실제로 이 연구에서 중심적으로 사용된 것은 아니다. 따라서 브레버만은 바란과 스위지의 저서와 자신이 사용한 《노동과 독점자본》이라는 제목을 연관시키고 있지만, 그의 연구는 바란과 스위지의 독점자본 개념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교환의 지배를 교정하지는 못했다.


바란과 스위지는 칼렉키(1954)와 스타인들(1952)에 의해서 고무된 전통 속에서 자신들의 주장을 발전시켰는 데, 증가하는 경제적 잉여는 그것이 방해받지 않는 한 경기 침체를 초래할 것이라고 본다. 그것은 잉여를 본래적으로 소비할 수 없다는 것, 달리 말하면 과소소비를 그들이 가정하기 때문이다. 독점자본주의는 잉여가치를 흡수하고 그것에 의해서 성장을 유지하는 메카니즘 발전에 의해서 특징지워진다. 이것은 군사비 지출의 증가, 대량소비와 관련된 막대하고 ‘낭비적’ 판매활동비 지출과 높은 정부 지출을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것들이 독점자본주의 운동을 유지하는 한, 그 중심에서 피착취계급이 그것을 전복시킬 잠재력은 약화된다. 바란과 스위지는 독점자본주의 몰락의 근원이 제3세계 혁명에서 발견된다고 주장하고, 이러한 결과들은 독점자본주의의 제국주의적 팽창과 제3세계로부터의 ‘경제적 잉여’의 착취에 의해서 발생하는 모순들로부터 초래될 것이라고 예견한다.



[관련자료]


Baran, Paul 1957 : The Political Economy of Growth.


Baran, Paul and Sweezy, Paul 1966 : Monopoly Capitalism.


Braverman, Harry 1974 : Labor and Monopoly Capital.


Cowling, Keith 1982 : Monopoly Capitalism.


Kalecki, Michael 1954 : Theory of Economic Dynamics.


Stein이, Josef 1952 : Maturity and Stahnation in American Capitalism.


Sweezy, Paul 1942 : The Theory of Capitalist Development.


마르크스 : 실제 생활에 있어서는 경쟁과 독점이라는 두 가지의 적대관계가 발견될 뿐만 아니라, 또한 공식이 아니라 운동인 이 두 가지 것의 종합도 또한 발견된다. 독점이 경쟁을 생성하고, 경쟁이 독점을 생성한다. 여러 독점가가 경쟁에서 생성하고, 경쟁자들이 독점자로 된다. 독점자들이 부분적 조직인〔기업가〕연합으로써 그들 상호간의 경쟁을 제한한다 해도 경쟁은 노동자들 속에서 증진한다. 이와 같이 해서 프롤레타리아 집단이 한 나라의 독점자들에 비해 증대하면 할수록 여러 나라 독점자들 간의 경쟁은 더욱 더 제어하기 힘든 것으로 된다. 〔때문에〕종합이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즉 독점은 경쟁이라는 투쟁을 끊임없이 경과함으로써만 존속할 수 있는 것이다. (프루동주의와의 투쟁〈철학의 빈곤〉1846, MㆍE선집 제1권 P. 422).
우리들이 모두 알고 있는 것처럼 경쟁은 봉건적 독점에 의해 생겨난 것이다. 때문에 시초에는 경쟁이 독점의 반대물이었지 독점이 반대물인 것은 아니다. 때문에 근대적 독점은 단순한 반지정(反指定) (Antithese)이 아니라 반대로 그것이야 말로 진짜 종합 (Synthese)인 것이다. 지정(指定(正)) : 경쟁에 앞선 봉건적 독점, 반지정(反指定(反)) : 경쟁, 종합(綜合(合)) : 근대적 독점. 그것은 그것이 경쟁제도를 전제로 하는 한에서는 봉건적 독점의 부정이고, 그것이 독점인 한에서는 경쟁의 부정이다. 때문에 근대적 독점은 종합적 독점이고, 부정의 부정이며 대립물의 통일이다. (동상. P.421).

엥겔스 : ‘트러스트에서의 자유경쟁은 독점으로 전화하고 자본주의 사회의 무계획적 생산은 닥쳐올 사회주의 사회의 계획적 생산에 항복한다. 분명히 처음에는 아직 자본가를 위한 것이지만 그러나 여기서는 착취가 손에 잡히듯이 분명해지기 때문에 그것은 아무래도 붕괴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어느나라 국민이라 할지라도 트러스트에 의해 지배되는 생산, 소수의 이표(利票) 붙이 채권소유자들이〔노동자〕 전체에 대한 노골적인 착취에 만족하여 인내하는 자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어쨌든 트러스트가 있건 없건 간에 결국은’ 자본주의 사회의 공개적 대표자인 국가가 생산관리를 떠맡을 필요가 있다. (원주(原註)) 이 국유화의 필요성은 무엇보다도 먼저 대규모의 교통시설, 즉 우편ㆍ전신ㆍ철도의 경우에 나타난다. 〔원주(原註)〕 나는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생산=교통수단이 사실상 주식회사의 관리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발달하여 국유화가 경제상 피할 수 없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국유화는 가령 오늘 날의 국가가 이를 행한다고 해도 하나의 경제상의 진보를, 즉 사회 그 자체에 의한 모든 생산력의 장악에 이르는 하나의 새로운 전단계의 달성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에 비스마르크 (Otto von Bismarck, 1815〜98)가 국유화에 손을 대기 시작하면서 모든 국명을, 심지어 비스마르크의 그것조차 이의(異議)없이 사회주의적 이라고 선언하는 일종의 거짓 사회주의가 나타났는가하면 이곳저곳에서 이에 부화뇌동하는 기미조차 보이고 있다. 실제로 담배의 국영이 사회주의적 이라고 한다면 나폴레옹 (Napoleon Bonaparte, 1769〜1821)이나 메테르니히 (Prince von Metternich, 1773〜1859)는 사회주의의 원조로 손꼽혀야 할 것이다. 공황은 부르주아가 근대적 생산력을 더 이상 관리할 능력이 없음을 폭로했으나 대규모의 생산=교통시설의 주식회사화, ‘트러스트화’, 국유화는 이 목적을 위해서는 부르주아지가 없어도 된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자본가의 모든 사회적 기능은 지금에 와서는 유급직원에 의해 수행되고 있다. 자본가는 수입을 수탈하는 것과 채권의 이표(利票)를 정하는 일, 온갖 자본가가 증권거래소에서 승부를 겨루어 서로의 자본을 뺏는 일 외에는 이제 아무런 사회적 활동도 하지 않는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은 먼저 노동자를 쫓아내는데 지금은 자본가 그 자체도 쫓아내어 노동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당장 산업예비군 속에는 아닐지라도 잉여인구 속에 추방하고 있다. 그러나 주식회사나 ‘트러스트’에의 전화나 국유화도 생산력의 자본적 특성을 지양하는 것이 아니다. 주식회사나 ‘트러스트’의 경우 이 일은 명백하다. (반(反)듀링론, MㆍE선집 제14권, pp. 469〜472).

카우츠키 : 그러나 카르텔은? 그것은 생산을 제한하고 조정하며, 따라서 과잉생산이나 공황을 방지하는 수단이 아닐까? 카르텔의 목적은 분명히 그렇지는 않다. 카르텔의 임무는 자본가의 이윤을 증가 시키는 것이다. 실제로 이에 도달하는 방법의 하나는 시장에의 공급을 감소시킴으로써 물가를 올리는 일이다. 그러나 이 방법으로 써는 물가를 마음대로 올릴 수 없다. 가령 카르텔이 원하고 있는 것처럼 시장을 독점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경우에도 물가가 상승함에 비례해서 한편에서는 수요가 감퇴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카르텔에 가입하지 않은 자본가로 하여금 경쟁기업의 신설로써 어부지리를 차지하려는 유혹, 때문에 독점을 타파하고 생산을 확대하려는 유혹에 빠지게 한다. 따라서 카르텔이나 트러스트에 의한 시장에의 공급제한에는 스스로 한계가 있다. 한편 이윤은 다른 사정과 마찬가지일 경우, 싸게 생산하면 생산할수록, 환언하면 특히 생산을 대규모로 영위하면 할수록 더욱 더 커진다. 생산이 이루어지는 표준이 크면 클수록 생산은 기술적으로 더욱 더 완성되며 또 그만큼 표면에 나타나는 모든 경쟁의 싹을 그것이 돋아나자마자 빨리 잘라버릴 수 있게 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들 경쟁이 카르텔의 독점을 위협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영업범위가 크고 회전이 신속하면 할수록 다른 사정이 같은 한 이윤의 양은 더욱 커 진다. 따라서 마르크스가 말한 것보다도 틀림없이 카르텔의 지도자에 대해서 이렇게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가슴 속에는 두 가지 생각, 즉 하나는 가능한 한 제한하려 하고 다른 하나는 가능한 한 확장하고자 노력하려는 생각이 머물러 있다 고. 그러나 카르텔인은 심사숙고하는 파우스트 (Faust, Jehann W. von Goethe의 동명(同名)의 작품에서 나오는 주인공)가 아니라 실천하는 인간으로서 두 가지 생각을 그의 가슴 속에 넣어두고 고양이 눈처럼 변화하는 시세에 대해 투쟁을 전개 하게 하는 대신, 그는 아주 간단하게 서로 다른 두 시장에서 그의 이윤을 증가시킬 수 있는 서로 상이한 경향에 올바르게 대처하려고 시도한다. 국내시장에서는 가능한 한 공급을 한정시켜 물가를 최고로 획득 가능한 이윤과 일치시키기까지 높인다. 그러나 공급만이 제한되고 생산은 제한되지 않는다. 생산은 가능한 한 확장되어 그의 잉여분은 외국에서 판매된다. 국내시장에서 물가와 이윤이 높으면 높을수록 외국시장에서는 투매경쟁이 더욱 더 치열해질 수 있다. 외국시장에서는 생산비만을 건지는데 불과할지라도 그와 같은 판로가 있다는 사실은 부단한 최대규모의 경영이 가능하다는 이유만으로도 이미 이익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해서 대량생산공업이 문제가 되고 수출공업이 문제가 되는 곳에서는——바로 이런 것들 이야말로 과잉생산을 일으키는 것들이다 —— 카르텔에 의한 생산의 제한과 통제를 기대할 수 없다. (마르크시즘 수정에 대한 반박, 세계대사상전집, 47, 동경 춘추사, pp. 224〜225).

로자 룩셈부르크 : 때문에 전체로서의 카르텔 역시 신용과 마찬 가지로 결국은 자본주의 세계의 무정부성을 더욱 확대하는 것뿐이고, 또 자본주의에 내재하는 모든 모순을 표면화하고 성숙시키는 일정한 발전단계에서만 출현한다. 이는 특히 미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바와 같이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투쟁을 극도로 격화시키고 생산양식과 교환양식의 모순을 첨예화 시킨다. 또한 그것은 노동자계급을 전혀 용납하지 않는 형태로 조직화된 자본의 큰 세력과 대립케 한다. 따라서 자본과 노동의 대 립은 극도로 진전되어 생산양식과 획득양식 사이의 모순을 더욱 더 증대시킨다. 끝으로 카르텔은 그 수반현상으로서 일반적인 관세경쟁을 초래하며 그리하여 각 자본주의국가간의 대립을 극도로 고조시킴으로써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국제적 성격과 자본주의 국가의 민족적 성격과의 사이의 모순을 증대시킨다. 여기에 더하여 생산의 집중, 기술의 고도화 등에 주는 직접적이며 지극히 혁명적인 카르텔의 영향을 들 수 있다. 이리하여 자본주의 경제에 미치는 궁극적인 작용이라는 점에서 볼 때 카르텔이나 트러스트는 모순을 소멸시키는 ‘적응수단’이 전혀 아닐 뿐만 아니라 바로 그것은 자본주의 고유의 무정부 성을 확대하여 거기에 내재하는 모순을 표면화시켜 그 몰락을 빠르게 하는 바로 그 자본주의 경제 스스로가 만들어낸 수단의 하 나인 것이다.(사회개량이냐 혁명이냐, 1899, 로자 룩셈부르크선집 제1권, pp. 168~169).

레닌 : 반세기 전에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썼을 때 압도적 다수의 경제학자들에게는 자유경쟁이 ‘자연법칙’과도 같이 보여졌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에 대한 이론적ㆍ역사적 분석에 의해 자유경쟁이 생산의 집적을 낳고, 이 집적은 그 발전의 일정 단계에서 독점으로 이끌어 간다는 것을 증명했지만, 관학(官學)은 이 마르크스의 저서를 묵살이라는 수단으로써 매장시켜 보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이제 독점은 사실로 되었다. 경제학자들은 산(山)을 이루는 책을 써서 독점의 개개현상에 대해 기술하면서도 이구동성으로 ‘마르크스주의는 논파(論破) 되었다’고 말해오고 있다. 그러나 영국 속담에도 있는바 사실은 굽히지 못한다는 말과 같이 이제 싫건 좋건 간에 그것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사실이 가르치는 바와 같이 예컨대 보호무역이냐 자유무역이냐 하는 점에서 개개 자본주의국가의 상이점은 독점형태 혹은 그 발생 시기에 있어서의 본질적이 아닌 상이점을 초래하는 조건을 이루는데 불과한 것으로서, 생산의 집적에 의한 독점의 발생은, 대체로 자본주의의 현발전단계의 일반적ㆍ근본적인 법칙인 것이다. 유럽에서 최후적으로 새로운 자본주의가 낡은 자본주의로 바뀐 시기를 우리는 대략 정확하게 결정할 수 있다. 즉, 그것은 20세기 초이다. (자본주의의 최고단계로서의 제국주의, 1916, 레닌전집 제22권, PP. 229〜230).
제국주의는 그의 경제적 본질로 보아 독점자본주의이다. 제국주의의 역사적 지위는 이로써 이미 규정되었다. 왜냐하면 자유경쟁을 기반으로 하고 더우기 다름 아닌 바로 그 자유경쟁 속에서 성장해가는 독점은, 자본주의 제도로부터 보다 고도의 사회주의 경제제도로의 과도기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지금 고찰하고 있는 시대의 독점의 특징적인, 혹은 독점자본주의의 주요현상인 다음의 네 종류에 대해, 특히 주의할 필요가 있다. 독점은 극히 고도의 발전단계에 있는 생산의 집적으로부터 생겼다. 그것은 자본가의 독점단체, 즉 카르텔, 신디케이트, 트러스트이다. 그것이 현재의 경제생활에서 어느 정도의 중대한 역활을 수행하고 있는가 하는 것은 이미 알아보았다. 20세기 초에 선진제국에서는 이미 그것들이 완전히 지배적인 형태가 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카르텔화 길의 제1보는 고율의 보호관세제도를 가진 국가들(독일, 미국)에서 가장 빨리 내딛기 시작했지만, 그러나 자유무역제도의 영국도 약간 뒤떨어졌을 뿐 생산의 집적으로부터의 독점체 출현이라는 똑같은 기본적 사실을 보여주었다. ②독점은 가장 중요한 원료자원 —— 특히 자본주의사회에서 맨처음에 기본적으로 카르텔화 된 산업, 즉 석탄업이나 제철업에서 —— 을 탈취하고 또 그것을 강화했다. 가장 중요한 원료자원의 독점적 점유는 대자본의 세력을 엄청나게 증대시켜 카르텔화한 산업과 카르텔화 하지 않은 산업과의 모순을 격화시켰다. ③독점은 은행으로부터 생겼다. 은행도 소극적인 중개업으로부터 금융자본의 독점자로 전환하였다. 가장 선진적인 자본주의 국가는 어느 나라나 3〜5개 정도의 최대급 은행이 산업자본과 은행자본과의 ‘인적결합’을 실현하여, 전국의 자본과 화폐소득의 대부분인 수십억의 돈에 대한 지배권을 그들 수중에 집중시켰다. 현대 부르주아 사회에서 예외 없이 그물처럼 둘러쳐진 모든 경제기관과 정치기관의 종속관계에 있는 금융과두제 —— 이것이야말로 이런 독점의 가장 뚜렷한 현상이다. ④독점은 식민지 정책으로부터 생겼다. 금융자본은 처음에 ‘낡은’ 식민정책의 수많은 동기와 원료자원을 위한, ‘자본수출’을 위한, ‘세력범위’를 위한——즉, 유리한 거래ㆍ이권ㆍ독점이윤ㆍ기타를 위한一 투쟁이었는데 여기에 경제적 영토를 위한 투쟁이 추가되었다. 1876년까지 그랬던 것처럼 예를 들어 유럽의 열강이 아프리카의 10분의 1을 식민지로 점거한데 불과했을 때까지의 식민지 정책은 토지를 소위 ‘빠른자가 먼저 차지한다’는 식으로 점거하는 것이었으므로 비독점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프리카의 10분의 9가 탈취되고(1900년경), 전 세계가 분할되고 말았을 때는 불가피하게 식민지의 독점적 영유시대가 되었고 따라서 세계의 분할과 재분할을 위한 투쟁이 특히 첨예화한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동상, pp. 345~347).

김일성 : 자본주의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대독점들은 그들의 높은 이윤을 유지하기 위하여 노동계급에 대한 착취를 더욱 강화하며 자본주의 사회의 더욱 더 광범한 계층들의 이익을 침범하고 있습니다. (사회주의 진영의 통일과 국제공산주의운동의 새로운 단계, 1957, 김일성선집 제5권, 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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