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춘국(崔春國, 1914~50)] ()
(항일연군 제3방면군 제3단 정치위원) 함북 온성의 빈농 가정에서 태어나 1925년 길림성(吉林省) 왕청현(王淸縣) 통일촌(東一村)으로 이주했다. 1928년부터 머슴, 철도공사장 노동자로 생활했다. 1931년 왕청현에서 추수투쟁에 참가했고 1932년 중국공산주의청년단에 입단했다. 1933년 왕청현 항일유격대대에 입대했다. 9월 동녕현성(東寧縣城)전투에 참가하여 위기에 처한 구국군(救國軍) 사령관 사충항(史忠恒)을 구출했다. 같은 시기 소왕청(小汪淸)근거지 방어전투에 참가했다. 1937년 동북항일연군 독립려(旅)의 제1단장, 정치위원을 지내면서 전투를 치르다 네 차례 부상당했다. 8월 남만(南滿)으로 이동하여 제2군 경위려 여장, 정치위원이 되었다. 1938년 12월 화전현(樺甸縣) 희성천 시가지 전투에 참전했으며 푸르허(富爾河) ․ 한총령(寒總嶺) ․ 정안둔 ․ 홍석랍자(紅石拉子) 등지에서도 싸웠다. 1940년 9월 제3방면군 경위려 제3단 정치위원이 되었고 10월 제13단 정치위원이 되었다. 11월 소련 영내로 이동하여 오께얀스까야 야영학교에 수용되었다. 1945년 9월 함북 나진에서 경비사령부 책임자를 지냈으며, 조선인민군 창설에 참가했다. 1949년 2월 인민군 창설 1주년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로부터 제2급 국기훈장을 받았다. 1950년 한국전쟁에 인민군 사단장으로 참전하여 안동전투에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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