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여봉(崔汝鳳, 1899~?)] ()
(적색농조경남동부위 책임비서) 경남 김해 출신으로, 1926년 6월 김해청년회에서 발행하던 벽신문 「청뢰(晴雷)」 편집위원이 되었다. 12월 김해청년회 야학부 위원이 되었고 1927년 7월 김해청년회 집행위원장이 되었다. 9월 김해청년동맹 창립대회 때 강령과 건의안을 기초했다가 내용이 문제가 되어 일본경찰에 검거되었다. 1928년 1월 부산지법에서 벌금 20원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2월 경남청년연맹 집행위원, 4월 김해청년동맹 집행위원장, 1930년 2월 신간회 김해지회 위원, 3월 김해농민연맹 검사위원이 되었다. 1931년 9월 적색농민조합 경남동부위원회 결성에 참여하고 책임비서가 되었다. 1932년 메이데이를 앞두고 일본경찰에 검거되어 1933년 2월 징역 2년 6월을 선고받았다. 1935년 9월 만기출옥했다. 1936년 2월부터 1945년까지 「동아일보」 김해지국을 운영했다. 해방 후 건국준비위원회 김해지부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1945년 11월 전국인민위원회 대표자대회에 김해 대표로 참석했고 1946년 2월 민주주의민족전선 경남지부 결성 준비위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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