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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근본모순] (Fundamental contradiction in the capitalist mode of production)

엥겔스 : 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은 사회 전체에 걸쳐서 이루어지고 있던 자연발생적무계획적인 분업과정에 개개 공장 내에 다시 계획적인 분업을 도입한 것이다. , 개인적인 생산과 나란히 사회적 생산이 나타난 것이다. 양쪽의 생산물은 동일한 시장에서, 그러니 적어도 거의 비슷한 가격으로 판매되었다. 그러나 계획적 분업기구는 자연발생적인 분업보다도 훨씬 강력하였다. 노동이 사회적으로 조직된 공장은 개별적인 소생산자들 보다도 자기 생산물을 훨씬 값싸게 생산하였다. 개인적인 생산은 여러 영역에서 연이어 패배하였다. 사회적 생산은 낡은 생산양식들을 변혁시켰다. 그러나 사회적 생산의 이 혁명적 성격이 그다지 좋게 인정되지 않았으므로 사회적 생산은 오히려 상품생산을 보호 장려하기 위한 수단으로 채용되었다. 사회적 생산은 발생 당초부터 상품생산과 상품교환의 일정한 기존원동력, 즉 상인자본, 수공업, 임금노동과 직결되어 있었다. 사회적 생산 그 자체는 상품생산의 새로운 한 형태로 나타난 것이므로 상품생산의 영유(領有)형태는 사회적 생산 하에 계속해서 완전하게 유효했던 것이다. …… 생산수단의 생산이란 본질적으로 사회적인 것으로 되었다. 그런데 그것들은 어떤 일정한 소유형태, 즉 개개인의 사적생산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각자는 자기자신의 생산물을 소유하고 그것을 시장에 내놓는 하나의 영유형태에 예속당하고 있다. 생산양식은 영유형태의 전제조건을 지양했지만, 아직도 그의 영유형태에 예속되고 있다. 이러한 모순이 새로운 생산양식에 그의 자본주의적 특성을 부여하고 있지만, 이런 모순 속에서야말로 현대의 모든 충돌이 이미 맹아로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생산양식이 일체의 결정적인 생산분야와, 일체와 결정적인 경제국가들에서 점점 더 우세해지면 우세해 질수록, 따라서 개인적인 생산을 구축하고 그것을 보잘 것 없는 쓰레기로 만들면 만들수록 사회적 생산과 자본주의적 영유간의 상충은 점점 더 뚜렷해져서 그것이 노출되지 않을 수 없었다. (반듀링론, 1878, ME선집 제14권 하, P. 459~460).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은 상품생산자와 개인 생산자의 사회에 비집고 끼어든 것인 데, 이들의 사회적 연관은 생산물의 교환을 통하여 중개되고 있다. 그런데 상품생산에 기초한 사회적 특징은 생산자들이 거기서 그들 자신의 사회적 연관에 대해 지배력을 상실하고 있다는 점이다. 각자는 마침내 자기의 자유처분 하에 있는 생산수단으로 자기의 개인적인 교환욕구의 충족을 위해 제멋대로 생산한다. 어느 누구도 자기가 만든 상품과 같은 것이 시장에 어느만큼 나타날 것이며, 그중에서 도대체 어느 정도가 수요 될 것인지를 알지 못하고, 또 그 누구도 자기의 개인적인 생산물이 실제적 수요를 창출할 것인지, 그것이 그의 생산비를 회수할 수 있을지, 또는 그것이 팔릴 것인지 어떤지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위세를 떨치고 있는 것은 사회적 생산의 무정부상태이다. 그러나 상품생산도 다른 모든 생산형태와 마찬가지로 그의 독특한, 고유의, 그것과 불가분리의 제 법칙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들 제 법칙은 무정부상태를 조성하고 무정부 상태 속에서, 이 무정부상태를 통하여 자기를 관철시켜 나간다. 이들 제 법칙은 사회적 연관의 유일한 존립형태인 교환에 나타나 강제적인 경쟁법칙으로서 개개 생산자에게 자기를 강요한다. 그러므로 이들 제 법칙은 처음에는 생산자 자신들도 알지 못한다. 그것은 오랫동안의 경함을 통하여 발견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법칙들은 생산자들을 무시하고. 생산자들에 저항하여 그들의 생산형태에서 맹목적으로 작용하는 자연법칙으로서 자기를 관철시킨다. 그리하여 생산물이 생산자를 지배하는 것이 다. (동상, P. 462).

자본주의적 사적생산 본질에 뿌리박은 무계획성은 크게 개혁할 필요가 있다. 나도 사회형태로서의, 경제단계로서의 자본주의적 생산이 단계 내부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는 현상으로서의 자본주의적 사적생산이라면 알고 있다. 그런데 자본주의적 사적 생산이란 도대체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일까? 개별적인 기업가에 의한 생산이라면 그것은 실제에 있어 이미 점차 예외적인 현상으로 되고 있다. 주식회사에 의한 자본주의적 생산은 이미 사적인 생산이 아니다. 그것은 대다수인의 공동계산에 의한 생산형태이다. 만일 주식회사 형태에서 더 나아가 산업부문 전체를 지배하고 독점하는 트러스트로 전환한다면 거가서는 사적생산이 없어질 뿐만 아니라 무계획성 역사 없어진다. 그때는 사적이라는 문구를 삭제함이 좋다. (1891년의 사회민주당에르푸르트강령초안 비판, ME선집 제17, pp. 379~380).

 

우츠키 :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노동조건은 프롤레타리아에게 굳은 단결과, 전체에 대한 개인복종의 필요성을 저절로 가르쳐 준다. 고전적인 형태의 수공업에서 각개인은 자기자신이 하나와 전체를 이루지만 자본주의적 공업은 협동노동에, 협업이라는 기반 위에 서 있다. 여기서 개개 노동자는 그의 동료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그들은 협력하여 계획적으로 작업에 종사한다. 그렇게 하면 그들 속에서 서의 개개인의 능률은 2, 3배로 오른다. 이와 같은 노동은 그들에게 단결의 힘을 자각케 한다. 이리하여 노동은 그들 속께서 자발적인 즐거운 훈련으로 발전된다. 그리고 이런 훈련이 공동조합적 생산, 사회주의적 생산의 전제조건이 되고, 더우기 이것이 자본주의적 생산에서 착취에 대한 프롤레타라아의 유효한 모든 투쟁의 전제조건으로 된다. 이와 같이 자본주의적 생산 그 자체가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자본주의적 생산 그 자체의 전복을 가르치고, 사회주의 사회의 노동까지도 가르치게 된다. (에르푸르트강령 해설, 세계대사상전집 14, 하출서방, 東京, p. 125).

자본주의적 생산방법이 고도로 발달한 곳에서만 국가권력에 의하여 생산수단의 자본주의적 소유를 사회적 소유로 개편하는 경제상의 가능성이 생긴다. 그러나 다 른 한편으로 프롤레타리아가 경제적으로 불가결한, 대부분이 견고하게 잘 조직되고, 게다가 이 계급적 지위에 대해서도, 국가와 사회의 본질에 대해서도 계몽된 일대 집단으로까지 성장하고 있는 곳에서 비로소 국가권력을 탈취하고 그것을 공고히 할 가능성이 생긴다. 이런 조건은 자본주의적 생산방법의 발전과, 그로부터 생기는 자본과 노동 사이의 계급투쟁에 의하여 끊임없이 조성된다. 자본주의의 부단한 발전이 필연적이고도 제어하지 못하리만큼 진행됨으로써, 이 발전의 종국적 반작용인 프롤레타리아 혁명 또한 불가피적이고, 제지 할 수 없는 것이 된다. (권력에의 길, 1920, 세계대사상전집 14, 하출서방, pp. 191~192).

 

: 자본주의의 진보적역사적 역할은 두 개의 간단한 명제로 요약될 수 있다. 사회적 노동력의 향상과 이 노동의 사회화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이 2개의 사실은 국민경제의 여러 부문에서 매우 다양한 과정 속에 나타난다. 자본주의에 의한사회적 생산력 발전의 다른 특수성은 생산수단(생산적 소비)의 증대가 개인적 소비의 증대를 훨씬 떼어놓는 데 있다. 이것이 농업과 공업에서 어떻게 나타나는가에 대하여 우리는 여러 번 지적한 바 있다. 특수성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생산물 실현의 일반법칙에서 나온 것이고, 또 이 사회의 적대적 본성에 완전히 조응하는 것이다. ...... 본주의에 의한'노동의 사회화는 다음 과정 속에서 나타난다. 째로, 품생산의 발전 그 자체가 현물경제에 고유한 작은 경제단위의 세분상태를 파괴하고, 조그마한 지방적인 시장을 거대한 국민적 (뒤이어 또한 세계적인) 장으로 결합한다. 기를 위한 생산은 사회전체를 위한 생산으로 전화하고, 자본주의가 보다 고도로 발전하면 할수록. 생산의 이런 집단적 성격과 취득의 개인적 성격 사이의 모순은 점점 더 격심해진다. 둘째로, 자본주의는 재래식 생산의 세분화 상태 대산에 농업에서나 공업에서도 그전에는 볼 수 없었던 그런 생산의 집적을 만들어 낸다. 것은 지금 고찰하고 있는 자본주의 특수성의 가장 명백한, 그리고 가장 명료한 표현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결코 유일한 표현은 아니다. 째로, 자본주의는 선행된 제경제제도가 파기하지 못한 속성을 이루었던 여러 가지 형태의 인격적 예속성을 구축한다. 시아에서는 이점에서 자본주의 의 발전성이 특히 날카롭게 나타나고 있다. 냐하면 생산자의 인격적 예속은, 시아에서는 농업뿐만 아니라 가공업 (노예노동력 가진 공장’) 나 광산업, , 타에도 존재 (마간은 지금도 계속 존재하고 있다) 고 있기 때문이다. 속적 또는 채무노예적인 농민노동과 비교하면, 유로운 임금노동자의 노동은 국민경제 모든 분야에서 볼 때 진보적인 현상이다. 째로,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주민의 유동성을 만들어낸다. 런데 이 유동성은 종전의 사회경제제도에서는 요구되지 않았고, 그런 제도 하에서 는 얼마간이라도 광범한 규모에서는 불가능했던 것이다. 섯째로, 자본주의는 농업(거기서는 가장 뒤떨어진 형태의 사회경제관계가 항상 지배하고 있다) 종사하는 인구비율을 끊임없이 감소시키고, 대산업 중심지와 민구수를 증대시킨다. 섯째로, 자본주의 사회는 결사(結社)에의, 결합에의 주민요구를 증대시키는데, 이런 결합을 그전 시대의 결합과 비교하면 특수한 성격이 부여된 것이다. 본주의는 중세사회의 좁고, 지방적이며, 신분적인 단체를 파괴하고, 격렬한 경쟁을 벌리게 하는 동시에 전사회를 생산에서 각이한 지위를 차지하는 사람들의 커다란 그룹으로 분열시키고, 또 이와 같은 각 그룹 내부에서의 결합에 거대한 자극을 준다. 곱째로, 서 말 한 바 자본주의에 의한 낡은 경제구조의 모든 개변(改變)은 불가피적으로, 리고 주민의 정신적 풍격(風格)의 개변에로 유도한다. 제발전의 비약적인 성격, 생산방법 의 급속한 개변과 생산의 거대한 집적, 격적 예속의 온갖 형태와 가부장제적 관계들의 소멸, 주민의 이동성, 거대한 산업중심지의 영향 등등 모든 것은 생산자의 성격 그 자체의 근저로부터의 개변을 유도하지 않고서는 결코 그대로 놓아두지 않는다. (러시아에서의 자본주의 발전, 1899, 닌전집 3, pp. 631~634).

본주의적 생산은 비약의 형태로서만, 2 전진하고는 1(그러나 때로는 완전히 2보를 후퇴하는 그런 방식으로 밖에는 발전할 수 없다. 미 우리가 지적한 것처럼 자본주의적 생산은 판매를 위한 생산, 시장을 겨냥한 상품생산이다. 그런데 그 생산은 개개 자본가가 제각기 별도로 이것을 지배하고, 느 한 사람도 시장에서 어떤 생산물이 과연 어느만큼 수요 되고 있는지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 로 다른 사람을 뛰어 넘는 데만 전신경을 쓰면서 추측으로 생산하고 있다. 산물의 양이 시장의 수요와 일치될 수 없다는 것은 전적으로 당연한 일이다. 리고 이 불일치의가능성은 거대한 시장이 갑자기 새로운, 미지의 광대한 영역으로 확대됐을 때 특히 크다. 근에 우리가 거쳐온 바 산업의 이 시작됐을 때는 더 그런 상태였다. (공황의 교훈, 1901, 레닌전집 5, p. 82).

 

자 룩셈부르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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