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의 집적⦁집중] (concentration and centralization of capita)
마르크스 : 사회가 점점 더 부유화 되는 것은 어떤 때일까? 그것은 일국의 자본과 수입이 증대하고 있을 때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1)많은 노동이 집적됨으로써만 가능하다. 왜냐하면, 자본은 집적된 노동이기 때문이다 一 따라서 이것은 노동자의 손에서 더 많은 생산물을 빼앗고, 노동자 자신의 노동이 다른 사람의 소유물로서 점점 더 그에게 대주(對畴)하여 노동자의 생존과 활동수단이 더욱더 자본가와 수중에 집중됨으로써만 가능하다. (2)자본의 집적은 분업을 증대시키고, 분업은 노동자의 수를 증가시킨다. 역으로 노동자의 수는 분업을 증대시키고, 분업은 또 자본집적을 증진시킨다고 하겠다. 한쪽의 분업과 다른 쪽의 자본집적에 수반하여 노동자는 한층 더 완전하게 노동에, 더우기 극히 한정적 이며 기계적인 특정 노동에만 종사하게 된다. 따라서 노동자가 정신적⦁육체적으로 기계로까지 격하되어 한 사람의 인간으로 부터 하나의 추상적인 활동, 하나의 위의 역할을 수행하게 됨에 따라 노동자는 점점 더 시장가격과 자본의 충용(充用), 부자의 변덕스런 모든 기분에 좌우되게 마련이다. 오로지 노동밖에 할 것이 없는 인간부류의 증가로 말미암아 노동자간의 경쟁이 그만큼 격화되고 따라서 그의 가격이 인하된다. 이와 같은 노동자의 상태는 공장제도에서 이의 최고조에 달한다. 부가 증대되는 사회에서는 부유한 사람들만이 점점 더 화폐이자로써 생활할 수 있다. 기타의 모든 사람들은 그 자본으로 사업을 경영하던가, 아니면 그것을 상업에 투하하여야 한다. 이로 말미암아 여기서 여러 자본사이의 경쟁이 한층 더 격화된다. 자본의 집중이 한층 더 커져서 대자본가는 소자본가를 파멸시키는데 이리하여 종전의 자본가중 일부가 노동자계급으로 전락하는바, 이런 유입으로 말미암아 노동자계급은 한편으로는 더욱더 노임의 압박을 받아 소수 대자본가에 대해 한층 더 강한 예속관계에 놓이게 된다. 즉, 자본가의 수가 감소됨으로써 노동자와 관련된 자본가의 경쟁이란 이미 존재하지 않게 되고, 또 노동자의 수가 증대됨으로써 노동자 상호간의 경쟁이 점 점 더 커져 부자연스런, 폭력적인 것으로 된다. 때문에 중립적인 자본가의 일부가 노동자 신분으로 전락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노동자 자신의 일부는 필연적으로 거지 또는 아사 상태로 전락한다. (경제학과 철학에 관한 메모, 1844, M⦁E전집 제40권, pp. 392〜393). 사회적 자본의 증대는 다수 개별자본의 증대로써 이루어진다. 다른 모든 사정이 변화하지 않는다고 전제한다면, 개별자본은, 그리고 그것과 더불어 생산수단의 집적은 그런 것이 사회적 총자본의 가제부분을 이루는 것에 비례하여 증대한다. 동시에 원자본에서는 새 가지가 뻗어나가 새로운 독립자본으로서 자기 기능을 시작한다. 이때는 특히 자본가 가족 내에서의 재산분할이 하나의 커다란 역할을 수행한다. 따라서 자본축적과 함께 많건 적건 간에 자 본가의 수도 증가한다. 직접적인 축적에 기초하는, 또는 차라리 축적과도 같은 이런 종류의 집적은 두 가지 점에서 특징지어진다. 첫째는, 개별적인 자본가 수중에로의 사회적 생산수단 집적의 증대가, 다른 사정이 변하지 않는다면, 사회적 부의 증가도에 의하여 제한된다는 점이다. 둘째는, 사회적 자본의 여러 특수 생산부문에 고정된 부분이 상호경쟁하는 독립된 상품 생산자로서 서로 대립하고 있는 다수 자본가들 사이에 분배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축적과 그에 수반되는 집적이 많은 점으로 분산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제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여러 자본의 증대가 새로운 자본의 형성과 낡은 자본의 분열에 의하여 저해된다. 이리하여 축적은 일면에서는 생산수단과 노동지휘와의 점증적인 집적으로 나타나지만, 다른 면에서는 많은 개별자본 상호간의 반발로서 나타난다. (자본론 제1권 제4분책, 암파문고판, P.116) 카우츠키 : 끝으로 한 가지 더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대자본이 소자본 보다 급속히 증대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자본이 크면 클수록(다른 조건이 일정하다면) 아윤의 양, 따라서 자본이 올리는 소득(수입)이 그만큼 커지며, 그 가운데서 자본가가 개인적인 소비에 충당하는 부분이 점점 더 적어지고, 새 자본으로서 기존자본에 첨가(축적) 할 수 있는 부분이 그만큼 커지가 때문이다. 그 기업에서 해마다 1만 마르크의 수입이 있는 자본가에게는 자본가의 입장에서 볼 때, 그것은 검소한 생활밖에 하지 못할 적은 금액이다. 그중에서 해마다 2천 마르크一ᅳ그이윤의 1/5—라도 축적 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편일 것이다. 그런데 자기 자본에서 10만 마르크나 연간수입을 올릴 만큼 큰 자본가진 자본가는 그중의 2/5인 4만 마르크를 자기자신과 가족을 위해 소비한다 해도 아직 그 이윤의 3/5은 그 자본에 첨가할 수 있다. 그리고 어떤 자본가의 자본이 매년 10만 마르크의 이익을 올릴 만큼 클 때는 보통사람이라면 그의 1/10을 자기가 소비하는 것조차 힘이 들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아 막대한 소비를 한다 해도 그 이윤의 9/10는 쉽게 축적 할 수 있을 것이다. 소자본가는 살아가기 위해 점점 더 고통스런 경쟁을 해야 하지만, 큰 재산가 쪽은 점점 더 급속도로 자본을 증대시켜 얼마 안가서 훌륭하게 확대시키게 된다. 경영 규모와 확대, 큰 재력의 급속한 팽창, 사회적 기업체수의 감소, 많은 기업체를 더욱더 한 손에 집중시키는 등 이상과 같은 일을 종합하여 생각하면 알 수 있는 것처럼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경향은 자본가계급에 독점된 생산수단을 한층 더 소수 사람들 손에 집중시키고 있다. 이런 발전의 종국은 한나라의, 아니 전세계 경제의 모든 생산수단이 어떤 개인 또는 한 주식회사와 소유로 되어, 그의 뜻대로 된다는 것, 즉 전체 경제기구가 유일한 거대경영에 통합되어 모든 사람이 오직 한사람의 주인을 섬기게 되고, 다만 한사람의 주인 것으로 될 것이다. (에르푸르트강령 해설, 세계대사상전집 14권, 하출서방, 東京, pp 6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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