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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키즘(무정부주의)] (anarchism)

마르크스 : 파리의 제군(諸君)은 공허하기 그지없는 프루동식 문구로 머리를 가득 채우고 있다. 그들은 입으로는 과학적 사회주의에 대하여 말하지만 아무것도 알지를 못한다. 그들은 일체의 혁명적 행동, 즉 계급투쟁 그 자체에서 생긴 행동, 일체의 집중적 사회적 운동, 따라서 또한 정치적 수단 (예컨대 법률에 의한 노동일의 단축)을 통하여 실현되어야 할 일체의 운동을 경멸하고 있다. 자유를 구실로, 또 반정부주의 내지 반권력주의적 개인주의를 구실로 하여 —— 이들 제군(諸君)은 16년 이래 가장 비참한 전제정치에 견디어 왔고, 지금도 아직 견뎌내고 있다 ! ——그들은 기실 일반적인 부르주아 경제를 프루동식으로 이상화하여 설교하고 있을 따름이다 ! 프루동은 기실 커다란 해독을 유포시켰다. 공상론자에 대한 그의 겉치레 적인 비판과 겉으로의 반대 (프루동 자신이 하나의 평민적인 공상론 자이다. 이에 반하여 푸리에와 오웬 등의 유토피아적 이론 속에는 그래도 새로운 세계에 대한 예감과 그의 환상작인 표현이 들어 있다)는, 우선 훌륭한 청년 (jeunesse brillante) 인 학생 , 그리고 노동자, 특히 사치품을 만드는 노동자로서 부지부식 간에 낡은 오물에 ‘심히’익숙해진 파리의 노동자들을 매혹시켰다. 그들은 무지하고 허영심이 많으며, 자만심이 크고, 수다스러우며, 과장하는가하면 거짓말 장이로서, 회원수에 비례되지 않는 다수인원을 회의에 참가시켜 만사를 뒤죽박죽으로 망가뜨려 놓았다. 나는 보고서 속에서 그들을 은근히 비난할 작정이다. (마르크스로부터 쿠게르만에게, 1866, MㆍE선집 제12권, p.468).

엥겔스 : 얼마 전부터 다수의 사회주의자들은 권위원리에 대해 참된 십자군 원정을 개시하였다. 그들이 믿는 것은 이러저러한 행동을 헐뜯음에 있어, 그것을 권위적이라고만 유포시키면 그것으로써 만족해 한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뭉뚱그림의 논법으로 난폭하게 구는 만큼 이 문제를 좀 더 상세히 고찰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사용하고 있는 뜻의 권위란, 타인의 의지를 우리들의 의지에 복종시키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권위란 반면(反面)에서는 종속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낱말은 어감이 나쁘고, 종속당하는 부분의 사람에게는 이 두 낱말에 표현된 관계가 마음에 들지 않는 이상 여기서 다음과 같은 문제가 제기된다. 이 관계를 떨쳐 버리는 수단이 있는지 없는지, 우리는 —— 소정의 사회적 제 조건하에서—— 권위라는 것이 이미 있을 곳이 없는, 따라서 그것이 소멸 된 것 같은 다른 사회 상태를 만들어 낼 수 있을는지? 만일 우리가 오늘날의 시민사회의 기초를 이루는 경제적ㆍ공업적ㆍ농업적 제 관계를 연구해 본다면, 그때는 그것이 한 개인의 고립적인 행동을 다수 개인의 복합적 행동으로 대치시키는 경향을 가졌음을 알게 된다. ....... 가령 어떤 사회혁명이 오늘날 부의 모든 생산과 분배를 관장하는 자본가들을 구축했다고 가정하자. 완전히 반권위주의자의 입장에 서기 위해 토지와 노동수단이 그것을 사용하는 노동자들의 공동소유에 귀속됐다고 가정하자. 이런 경우에 권위는 소멸될 것인지, 아니면 그것은 그의 형태만을 바꾸게 될 것인지? …… 이어서, 모든 장소, 모든 시기에 생산방법과 재료의 분배 등에 관하여 여러 가지의 개별적인 문제가 또 생긴다. 만일 생산의 갑작스런 정지를 굳이 일으키고 싶지 않다면 즉각 해결되어야할 여러 가지 문제도 생긴다. 이제 이런 문제들이 한 노동부문을 관장하는 한 대표의 결정으로 해결되든, 또는 다수자의 결의에 의해 해결되든 간에 개개인의 의사는 이에 따라야만 한다. 달리 말하면, 문제는 권위적으로 해결 되어야만 한다. 자동화된 대공장의 기계설비는 노동자를 착취하는 소자본가의 경우보다도 비할 바 없을 정도로 폭군적 이다. 적어도 노동시간에 관한한 대공장의 정문에는 다음과 같은 글을 써 붙여도 무방하다. 즉, ‘여기에 들어오는 제군(諸君)은 모두가 자율(自律)을 버리시오(Lasciate ogni autonomia voi chientrate)라고. 인간이 과학과 발명의 재능의 도움으로 자연력을 정복하면, 자연력은 그것을 이용하는 인간을 사회관계에서 독립된 참된 전제주의에 복종시킴으로써 보복한다. 대공업에서 권위를 폐지한다는 것은 공업 그 자체를 폐지하는 것이며, 물레로 실을 뽑아내기 위해 증기방적을 부정하는 것이 된다. 또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철도가 그것이다. 여기서는 수많은 사람들의 협업, 즉 커다란 재해를 피하려면, 정확히 결정된 시간에 이루어져야할 협업이 절대로 필요하다. 여기서는 전기업의 첫째조건이 부차적인 모든 문제를 결정하는 하나의 지배적인 의지이다. 이제 이 의지가 한사람의 대표에 의해 표현되든, 또는 이해관계자 다수의 결정을 집행하기 위해 선거된 위원회에 의해 표현되든, 그것은 아무래도 좋은 것이다. 그러나 어느 경우에도 우리가 상대하는 것은 하나의 권위이다. 그것뿐이 아니다. 모든 승객에 대한 철도공무원의 권위를 폐지한다면, 벌써 시발 열차에서부터 어떤 일이 일어나지 않을는지? 그러나 권위의 필요성, 절대적 권위의 필요성이 명백히 요구되는 것은 공해상의 선박만한 것이 더는 없다. 거기서 위험이 일어났을 때, 승선원 전원의 생명은 전원이 한 개인의 의지에 얼마동안 절대적으로 복종하는데 달려 있다. …… 어째서 반(反)권위주의자는 정치적 권위에 대하여, 국가에 대하 여 반대를 외치는 것만으로 그만두지 않았는가? 국가, 아니면 정치적 권위는 미래의 사회혁명 결과로 소멸된다는 것, 즉 공적인 제 기능이 그의 정치적 성격을 상실하고 사회적 이해를 감시한다는 단순한 행정적 기능으로 대체된다고 함은 모든 사회주의자의 일치된 견해이다. 그런데 반권위주의자는 정치적 국가가 그것을 만들어낸 사회관계를 폐지시키기보다도 그 이전에, 단번에 폐지시킬 것을 요구한다. 그들은 사회혁명의 제1막이 권위를 폐지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요구한다. 이들 신사제군은 과연 지난날에 혁명이라는 것을 본적이 있을까? 대저 혁명은 틀림없이 모든 행위 중에서도 가장 권위적인 일이요, 인구의 일부가 소총ㆍ총칼ㆍ대포로써, 가장 권위적인 수단으로써 자기의 의지를 인구의 다른 일부에 강요하는 행위이다. 승리한 당파는 무기에 의하여 반동파에게 불러일으키는 공포를 통하여 그의 지배를 유지해야 한다. 만일 파리 코뮨이 부르주아지에 대항하여 무장한 인민의 권위를 행사하지 않았더 라면, 코뮨이 하루이상 지탱되었을까? 그렇기는커녕 우리는 오히려 코뮨이 자기의 권위를 행사함에 있어 너무도 적게 행사했던 것을 비난해도 좋지 않을까? (권위원리에 대하여, 1847, MㆍE선집, 제13권, pp. 48〜52).
바쿠닌 (Mikhail A. Bakunin, 1814〜76)은 프루동주의와 공산주의를 뒤섞은 독특한 이론을 가지고 있다. 그의 주된 점은 그가 자본, 따라서 사회적 발전에서 생긴 자본가와 임금노동자와의 계급적 대립으로서가 아니라 국가야말로 제거해야할 주된 해악이라고 생각한다. 사회민주주의적 노동자의 대다수가 우리들과 함께, 국가권력이란 지배계급 一 — 지주와 자본가——이 그의 사회적 특권을 수호하기 위해 만들어 낸 조직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데 대해, 바쿠닌은 국가가 자본을 만들어 냈고, 자본가는 국가의 덕택으로 그의 자본을 소유하고 있을 따름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국가가 주된 죄악이므로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먼저 국가를 폐지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자본가는 저절로 멸망한다고 한다. 우리는 이와 반대로 자본, 즉 소수자의 손에 의한 전생산수단의 소유를 폐지하라, 그렇게하면 국가는 저절로 무너진다고 말한다. 이런 주장의 차이는 본질적인 것이다. 사전에 사회변혁을 하지 않는 국가의 폐지는 넌센스다. 자본의 폐지는 바로 사회혁명이요, 모든 생산양식의 변경을 의미 한다. 그런데 바쿠닌에게는 국가가 기본적인 해악이기 때문에, 그것이 공화제이건, 왕제이건 또 무엇이든 간에 국가의 존재를 지지하는 일은 무엇 하나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것은 모든 정치의 무조건적 회피이다. 정치행동을 취하거나, 특히 선거에 참가한다든지 하면, 그것은 원칙의 배신이 되는 것이다. 선전을 전개하라, 국가를 매도(罵倒)하라, 조직하라, 그리고 모든 노동자가 자기편에 붙는다면, 즉 다수를 획득한다면 국가는 폐지되어 인터내셔널 조직이 이에 대체된다. 천년왕국이 시작되는 이 위대한 행동이 사회적 청산(淸算)이라고 명명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 바쿠닌의 주장이다. 이러한 모든 것은 매우 급진적인 것으로 들리고, 더우기 주장이 간단명료하므로 5분간에 암기 할 수 있을 정도이다. 그러므로 이 바쿠닌의 이론은 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 젊은 변호사와 의사 기타의 탁상공론자들 사이에서 급속히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노동자대중은 자기나라의 국사가 동시에 자기들의 이해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납득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본래가 정치적이어서, 정치를 포기하라는 주장을 결국에 가서는 무시해 버린다. 사사건건 정치의 회피를 노동자에게 설교한다는 것은 그들을 승려나 부르주아 공화주의자의 손아귀에 밀어 넣는 행위가 된다. (엥겔스로부터 쿠노에게, 1871, MㆍE선집 제12권, pp. 476〜477).
(1) 바쿠닌주의자들은 심상치 않은 혁명정세에 부딪치자마자, 자기들의 종래의 강령 모두를 내동댕이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먼저 정치, 특히 선거에의 불참의무라는 주장을 희생시켰다. 다음에 무정부, 즉 국가의 폐지라는 주장을 희생시켰다. 국가를 폐지하는 대신에, 그들은 오히려 다수의 새로운 소국가를 건설하고자 염원했다. 다음에 그들은, 노동자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즉각적이며 완전한 해방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그런 혁명에는 결코 참가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버리고, 명백히 순 부르주아적인 운동에 참가했다. 끝으로 그들은 각도시의 정부위원회에 매우 유쾌하게, 그리고 거의 모든 곳에서 무력한 부르주아에게 압도되며, 또 정치적으로 이용물이 되는 소수파로 활동함으로써 ——자기들이 방금 막 선언했던 신조(信條), 즉 혁명정부의 수립이 노동자계급에 대한 새로운 기만이며, 새로운 배신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 신조와 정면으로 모순되기에 이르렀다. (2) 그러나 종전부터 설교되어온 모든 원칙의 이러한 부정은 지극히 소심한, 매우 기만적인 처사이고 또 양심의 가책을 받으면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바쿠닌주의자 자신들도, 또 그들에게 지도되던 대중 도 아무런 강령도 없이 운동에 들어갔다. 일반적으로 말하여, 어쩌면 자신들이 애당초부터 무엇을 원했는가 하는 것조차 몰랐던 것이다. 이 당연한 결과는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바쿠닌주의자가 바르셀로나(Barcelona) 에서처럼 일체의 운동을 방해하든가, 아니면 그들이 알코올이나 상루카르 데 바라메다 (Sanlucar de Barrameda) 에서처럼 고립된, 무계획적인 그리고 미련하게 폭동에 휘말려 들던가, 그렇지 않으면 대다수 폭동에서처럼 폭동의 헤게모니가 비타협파인 부르주아 손아귀에 넘어 갔던가 그중의 어느 것이었다. 때문에 바쿠닌주의자의 초혁명적 규환(叫換)은 그것이 실행에 옮겨지자마자  위무(慰撫)나 또는 처음부터 가망성 없는 폭동이거나 아니면 노동자를 매우 파렴치하게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게다가 그들을 유린한 부르주아 정당에의 가입으로 실현 될 것이다 (3) 이른바 무정부 독립된 여러 그룹의 자유로운 연합 등의 제 원칙 중에서 남은 것은 단지 정부로 하여금 소수의 군대를 사용하여 여러 도시를 거의 저항을 받지 않고 연이어 정복하는 것을 허용한 것이었다. 혁명적 투쟁수단의 끝없는 무의미한 분열만이 남았다. ⑷ 결국 잘 조직되고 또 그 수도 많았던 스페인의 인터내셔널 당원—— 가짜 당원이건 진짜 당원이건—— 은 비타협파의 실각에 휘말려든 나머지 오늘날에는 그 조직이 사실상 와해됐을 뿐만 아니라 그들은 무수히 날조된 폭행——그 어느 나라의 속물이라 해도 이와 같은 폭행 없는 노동자의 폭동은 생각조차 하지 못 한다一을, 전가(轉嫁)당하여 이로써 스페인 프롤레타리아트의 국제적인 재조직은 아마도 앞으로 수년 내는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5) 한마디로 요약하면 스페인의 바쿠닌주의자들은 우리에게 혁명을 어떤 방법으로 수행해서는 안 된다는 비할 바 없이 귀중한 표본을 보여주었다. (바쿠닌주의자의 활동 1873, MㆍE선집 제13권, pp.43〜45).

레닌 : 테제; (1) 무정부주의는 그가 존재한 30〜40년 사이에 (바쿠닌과 인터내셔널, 1866년 이후) (막스 시티르너〈Max Stimer, 본명은 Kaspar Schmidt, 1806〜56〉로 부터 계산하면 좀 더 많은 해수가 되지만), 착취를 반대하는 공허한 일반적인 문구 이외에는 아무것도 제공한 것이 없다. 이런 거짓말은 2천년이상이나 계속되어 온 것이다. 여기에는, (가) 착취원인의 이해, (나) 사회주의로 나가는 사회발전의 이해, (다) 사회주의 실현의 창조력으로서의 계급투쟁의 이해 등이 결여되어 있다. ⑵ 착취원인의 이해; 상품 경제의 기초로서 사적소유,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 무정부주의에는 Nihil (아무것도 없다). 무정부주의——뒤집혀진 부르주아 개인주의. 무정부주의적 세계관을 기초로한 개인주의. 토지의 소(小)소유와 소경영의 옹호. Keine MajoritSt(다수결을 없앤다.) 통합하고 조직하는 권력의 힘의 부정.
(3) 사회발전의 몰이해—대규모 생산의 역할 —— 자본주의의 사회주의로의 발전에 대한 몰이해. (무정부주의——절망의 소산. 프롤레타리아의 심리가 아니라 일상적인 궤도(軌道)에서 내동댕이쳐진 인텔리겐챠 또는 부랑자의 심리). (4)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에 대한 몰이해. 부르주아 사회에서의 정치의 부조리성 부정. 노동자의 조직화와 교육과의 역할에 대한 몰이해. 일면적인 〔사물〕 관련에서 추출된 약제(藥劑)로 조제된 만병통치약. (5) 유럽 근대사에서 일찍이 라틴계통 여러 나라를 지배해온 무정부주의는 무엇을 제공했는가? —— 어떠한 교의도 혁명적 학설도 이론도 없다. —— 노동운동을 세분화시킨 것. ------- 혁명운동 경험에서 완전한 fiasco (대실패). (18기년의 프루동주의, 1873년의 바쿠닌주의). —— 정치의 부정이라는 겉치레로 노동자계급을 부르주아 정치에 종속시키는 것. (무정부주의와 사회주의, 1901, 레닌전집 제5권, 하, p. 342).
(1) 혁명적 행동을 원칙적으로 밑으로부터의 압력만으로 제한하고, 다시 위로부터도 압력을 가하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무정부주의다. (2) 혁명기의 새로운 임무, 위로부터의 행동임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이런 행동조건과 강령을 규정하지 않은 것은 도대체가 민주주의 혁명에서의 프롤레타리아 임무를 전연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3) 사회민주당이 부르주아지와 더불어 임시혁명정부에 참가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것, 이와 같은 참가의 모두는 노동자계급에 대한 배신이라는 원칙이 무정부주의의 원칙일 뿐이다. ⑷ 모든 ‘심각한 혁명정세’는 봉기의 의식적 수행, 혁명조직과 일체 혁명세력의 집중화, 대담한 군사적 공세, 혁명권력의 가장 정력적인 이용이라는 임무를 프롤레타리아 당에 대하여 제기한다. (5)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지금의 혁명에 대처하는 신 ‘이스크라’ 파의 전술을 시인할 까닭이 없고 또 절대로 시인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전술이란 앞에서 열거한 오류의 모두를 반복한 것에 지나지 않는 까닭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신 ‘이스크라’파의 원칙적 입장을 프롤레타리아의 ‘뒤꽁무니’를 우러러 보는 것, 무정부주의적 오류를 반복하는 것이라고 이름 지을 것이다. (임시혁명정부에 대하여, 1905, 레닌전집 제8권, p.447).
마르크스주의자와 무정부주의자와의 차이는 다음과 같은 점에 있다. (1) 국가의 완전한 사멸을 목표로 하는 전자는 사회주의 혁명에 의하여 계급이 폐절된 후, 국가를 사멸시키는 방향으로 이끌어 사회주의를 건설한 결과로써 이 목표를 실현시킬 수 있다고 인정 한다. 후자는 이의 폐절을 실현시킬 수 있는 조건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오늘・내일에도 당장 국가를 완전히 폐절시킬 것을 바란다. (2) 전자는 프롤레타리아가 정권을 쟁취한 다음, 낡은 국가기구를 완전히 파괴하고 코뮨형을 본받아 그것을 무장한 노동자의 조직인 새로운 국가기구로 대치시킬 필요가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후자는 국가기구의 파괴를 주장하면서도 프롤레타리아트가 이에 대체되는 것, 프롤레타리아트가 혁명적 권력을 이용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전연 뚜렷하지 못한 생각밖에 갖고 있지 않다. 무정부주의는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가 국가권력을 이용한다든가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적 독재까지 부정하고 있다. (3) 전자는 오늘날의 국가를 이용하여 프롤레타리아에게 혁명을 준비시킬 것을 요구하지만 무정부주의자는 이것을 부정한다. (기회주의에 의한 마르크스주의의 비속화, 1917, 레닌전집 제25권, pp. 524〜525).

스탈린 : 우리는 무정부주의자들을 마르크스주의의 진짜 적으로 본다. 따라서 우리는 진짜 적과는 본격적으로 투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문제는 마르크스주의와 무정부주의가 비록 다 같이 사회주의의 기치를 들고 투쟁무대에 나서고 있기는 하지만, 전혀 다른 원칙위에 서 있다는 데 있다. 무정부주의의 초석은 개인이다. 무정부주의의 견해에 의하면 개인의 해방은 대중, 집단을 해방하는 주요조건이다. 무정부주의의 견해에 의하면 대중의 해방은 개인이 해방되기 전에는 불가능하며, 따라서 무정부주의의 구호는 ‘모든 것은 개인을 위하여’ 라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의 초석은 대중이다. 마르크스주의의 견해에 의하면 대중의 해방은 개인을 해방하는 주요 조건이다. 즉, 마르크스주의의 견해에 의하면 개인의 해방은 대중이 해방되기 전에는 불가능하며 따라서 마르크스주의의 구호는 ‘모든 것은 대중을 위하여’ 라는 것이다. (무정부주의냐 사회주의냐, 1906, 스탈린선집 제1권, 학우서방, 동경, 1966, p. 10).

코민테른 강령 : 1914〜18년 세계대전에서 이의 유명한 대표적인 인물들(크로포트킨, 쟝 그라브 등)이 배신적으로 제국주의 부르주아지 편에 가담하는 전례를 남긴 역사적 아나키즘은 프롤레타리아 중앙집권적인 군기훈련이 되어 있으며, 또 광범한 조직의 필요성도 모두 인정하지 않는다. 또한 개인적인 테러를 찬양하며, 이에 의거하기 때문에 프롤레타리아트의 대중투쟁 가치를 경시한다. 아나키즘은 절대적 자유라는 이름아래 프롤레타리아 독재제도를 부정하고, 이로써 부르주아와 그의 군대 및 기타의 모든 탄압기관에 대항하는 가장 중요하고도 가장 강력한 무기를 버리게 한다. (코민테른 강령 제6 장 제 1절 노동계급내의 공산주의에 적대하는 이데올로기, 1928,Jane Degra s, 코민 E4I른 도큐먼츠 Ⅱ. 1923〜1928. 현대사조사, 동경, 1977, p. 465).

트로츠키 : 프루동주의자는 정치투쟁 전반을 거절한 이유 그 자체로부터 민주주의를 거절하였다. 그들은 국가권력의 개입과 혁명적 격동이 없는 노동자의 경제조직의 신봉자였다. 그들은 상품경제를 기초로 한 노동자 상호부조의 신봉자였다. 사물 의 힘이 그들을 정치투쟁에로 내모는 한에서 그들은 —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로서---- 전권정치(全權政治) 보다는, 또 혁명적 독재보다는 민주주의 쪽을 택했다. 여기서 우리들과 공통되는 점은 무엇인가? 프롤레타리아트의 집중된 권력의 이름으로 우리가 민주주의를 거절할 때, 프루동주의자들은 우리와는 반대로 배타적 혁명적 노동자권력을 회피하기 위하여 봉건제이며 얼마간 희석된 민주주의와 화합할 생각을 가졌었다. 혁명적 권력의 중요성을 명확히 파악하고, 그의 탈취문제를 제기함으로써 민주주의의 형식적 양상을 숭배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은 프루동주의의 반대자 블랑키주의자와 우리를 비교했다면 카우츠키는 훨씬 도리에 맞는 행동을 취했을 것이다. (테러리즘과 공산주의, 1920, 트로츠키선집 제12권, p.64).
혁명의 교의 및 방법으로서의 아나르코 상디칼리즘의 이론에 대해서는 달콤한 생각 을 가질 수 없다. 아나르코 상디칼리즘은 혁명적인 강령이 없고, 당의 역할에 대한 몰이해로 말미암아 프롤레타리아트를 무장해 제시키고 있다. 아나키스트는 정치가 그들의 목덜미를 잡을 때까지 정치를 ‘거부하고’, 목덜미가 잡히면 적대계급의 정치에‘자리를 양보하는 자들이다. (스페인 혁명과 공산주의자의 임무, 1931, 트로츠키선집 제8권, p. 190).
바쿠닌주의의 전형적 나라인 스페인에서 아나르코 상디칼리스트와 ‘특수한’ , 또는 순수한 무정부주의자는 정치를 포기함으로써 실제로는 러시아 멘세비즘의 정책을 반복하고 있다. 이들 요란스런 국가부정론자 들은 국가가 그의 표피를 바꾸는 순간, 권력 앞에 공순하게 머리를 조아린다. 권력의 유혹에 걸려들지 말라고 프롤레타리아트에게 경고하면서도 그들은 자기 희생정신을 가지고 ‘좌익’부르주아지의 권력을 지지한다. 의희주의야 말로 부패의 근원이라고 저주하면 서도 그들은 은근히 자기 의 추종자들에게 속되고 악한 공산주의자의 투표용지를 건네준다. 스페인 혁명이 어떠한 발전을 가져온다 하더라도 그것은 적어도 무정부주의에 대해 마지 막 숨통을 끊는 것이 될 것이다. (러시아 혁명사, 1932, 각천서점, 동경, P.255).
우리는 권력을 장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장악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장악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잡지 않았던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든 독재에 반대했기 때문이라는 따위의 유일한 변명가운데는 아나키즘을 완전히 반혁명적인 교의라고 고발케하는데 충분한 논거가 포함되어 있다. 권력획득을 단념 한다는 것은 권력을 쥐고 있는 자, 즉 착취자에게 자진하여 권력을 위임하는 행위다. 어떠한 혁명도 그의 내용은 모두가 새로운 계급에게 권력을 잡게하고, 그 계급이 자기강령을 실현시키는 일체의 가능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스페인의 교훈, 1937, 트로츠키선집 제8권, pp. 300〜301).

김일성 : 당의 참모부인 당중앙위원회의 지시와 결정에 의하여 전당이 한사람같이 한마음 한뜻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지도부로부터 ‘앞으로’할 때, 가지 않겠다고 뒤에서 우물거리거나, ‘좌로’하면 우로 달아나는 현상이 당내에는 있을 수 없읍니다. 이런 행동은 무정부주의자들이나 하는 짓입니다. (함경북도 당 단체들의 과업, 1959, 김일성저작선집 제2권, 노동당출판사, 평양, 1968, p. 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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