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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하(朱寧河, 생몰년 미상)] ()

(좌익노조결성준비회 조사부 책임자) 함남 출신으로, 경성제국대학을 졸업하고 1925년 조선공산당에 입당했다. 1929년 광주학생운동 때 서울 보성고등보통학교에서 만세운동을 지도했다. 제1차 태평양노동조합 조직에 참여했다. 조선질소비료주식회사 흥남공장의 직원으로 일하면서 흥남공장 노동자를 중심으로 연구회를 조직했다. 1930년 12월 연구회를 연구회뷰로로 고치고 총무가 되었다. 1931년 1월 연구회뷰로를 좌익노동조합결성준비회로 고치고 조사부 책임자가 되었다. 2월 함흥위원회 결성에 참여하여 화학부 산업부문 책임자가 되었다. 함흥노동연맹을 산업별 조직의 좌익연맹으로 개조하려 했다. 1932년부터 모스끄바 동방노력자공산대학 졸업생과 함께 조공 재건, 적색노동조합 조직을 위해 노력하다가 검거되어 1936년 5월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교육성 副相) 해방 후 조공 홍원군책이 되었다. 1945년 9월 원산시인민위원회 위원장, 1946년 8월 북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정치위원으로 선임되었다. 11월 북로당 중앙위원회 제4차 확대회의에서 오기섭(吳淇燮)을 조선의 뜨로쯔끼라고 공박했다. 1947년 2월 북조선중앙선거위원장이되었다. 1948년 4월 남북연석회의 조직준비위원장으로 선임되었다. 8월 해주에서 열린 남조선인민대표자대회에서 제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선임되었고, 9월 교통상, 10월 소련 주재 초대 대사가 되었다. 1951년 외무성 부상이 되었고 판문점 정전회담에 대표로 참석했다. 1953년 8월 종파분자라는 이유로 지방공장 지배인으로 좌천당했다. 1956년 교육성 부상으로 복권되었으나, ‘박창원(朴昌玉) 사건’에 연루되어 노동교화소로 추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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