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동(趙今同, 1912~45) 曺今東 平山勇] ()
(全協 토건노조 東京지부 상임위원) 전남 출신으로 광주고등보통학교 2학년에 재학중이던 1929년 11월 광주학생운동에 참가해 퇴학 처분을 받았다. 그후 일본 토오꾜오(東京)에서 자유노동자로 일했고 1930년 시바우라(芝浦)실업자위원회 결성에 참여했다. 1931년 1월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全協] 토건노조에 가입했다. 이후 칸또오(關東) 자유노조 시비우라 가두반 위원, 젠꾜오(全協) 토건노조 토오꾜오지부 상임위원, 닛뗀(日電) 서남지구, 닛낀(日金) 서남지구 조직책임자가 되었다. 이 무렵 일본공산당에 입당했고 1934년 젠꾜오 재건을 위한 김병직(金秉稷) 좌익그룹에 참여했다. 1935년 3월 일본경찰에 검거되어 12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기소되었다. 1945년 3월 10일 후꾸오까(福岡)형무소에서 옥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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