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의 책 처음으로 | 사전 | 자유게시판 | 회원자료 | 로그인

 

       ■ 의견바로가기

[조극환(曺克煥, 1887~1966)] ()

(전남해방운동자동맹 집행위원) 전남 영암 출신으로, 한성사범학교를 마친 뒤 영암보통학교 교사가 되었다. 대한제국 시기 계몽운동단체인 호남학회에 참가했다. 1919년 4월 영암에서 만세시위운동을 주도하여 5월 광주지법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출옥 후 영암청년회에 가입했다. 1922년 반일독립운동단체인 수의위친계(守義爲親契)에 가담했고 1924년 목포청년회에 가입했다. 9월 목포무산청년회를 결성하고 집행위원이 되었다. 1925년 1월 무목(務木)청년연맹 결성을 주도하고 중앙집행위원이 되었다. 같은 달 사회주의 잡지사 불꽃사[火花社] 발기인으로 선임되었다. 2월 화요회 주최 전조선민중운동자대회 준비위원, 전남청년대회 준비위원, 전남해방운동자동맹 집행위원이 되었다. 8월 목포청년회 교육부 위원이 되었다. 9월 무안(務安)농민연맹을 조직하고 상무집행위원이 되었고 목포자유노동조합을 조직했다. 10월 목포노동총동맹 상무집행위원이 되었다. 그해 목포청년연맹 집행위원, 목포노동연맹 집행위원, 무목노동연맹 상무집행위원을 지냈다. 1926년 2월 전남청년회연합회 결성에 참여하고 집행위원이 되었으며, 사상단체 전위동맹 집행위원이 되었다. 3월 목포제유노동조합 파업에 관련되어 한때 일본경찰에 검속되었다, 6월 ‘제2차 조선공산당 검거사건’으로 일본경찰에 검거되었으나 무혐의로 석방되었다.
(조공 당원, 건준 영암지부 위원장) 1927년 6월 신간회 목포지회 조사부 상무간사가 되었다. 7월 조공에 입당하고 목포야체이까 책임자가 되었다. 9월 조선노농총동맹 분립 때 조선노동총동맹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임되었다. 그해 신간회 목포지회 총무간사 및 목포 재만동포옹호동맹 준비위원이 되었다. 1928년 목포노동연맹 집행위원이 되었다. 9월 조공 검거사건 당시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징역 3년을 선고받고 1932년 8월 출옥했다. 1934년 11월부터 1937년 6월까지 「동아일보」진도지국을 운영했다. 1945년 8월 건국준비위원회 영암지부를 조직하고 위원장으로 선출되었으며 9월 영암군 인민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임되었다. 1946년 9월 구속되어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1960년 11월 사회대중당 전남도당에 참여했고 1961년 12월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 전남지부 결성에 참여했다. 1970년대 후반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 표창을 추서받았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 인접어

조경서(曺景敍, 생몰년 미상)
조경환(曺景煥, 생몰년 미상)
조관제(趙寬濟, 1903~?)
조권모(趙權護, 1906~?)
조규선(曺圭先, 1909~?)
조극환(曺克煥, 1887~1966)
조극환(曺克煥, 1887~1966)
조금동(趙今同, 1912~45) 曺今東 平山勇
조금룡(趙今龍, 1899~?) 趙彙昌 趙熙彰 趙昌熙 趙熙昌 趙今用 오리도모프
조기석(曺基錫, 1904~32) 조영훈
조기섭(趙基燮, 1895~1940) 조군석 조영학

뒤로
■ 의견

 



HOME - 후원방법 안내 - CMS후원신청 - 취지문 - 사용 도움말 - 회원탈퇴하기

2002 노동자 전자도서관 "노동자의 책" 만들기 모임
120-702 서울시 중구 정동 22-2 경향신문 별관 202호 44
laborsbook@gmail.com
모바일버젼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