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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원(朴勝源, 1913~?)] ()

(조공재건준비위 경북 책임자) 경북 영주 출신으로, 1926년 4월 보성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다. 6 ․ 10만세운동에 참가했다가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10일간 구류처분을 받았다. 1927년 동맹휴학에 참여했다가 퇴학당한 후 중동학교 본과 4학년에 편입했다. 재학중 독서회 사건에 연루되어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5개월간 구금당했다. 1929년 5월 조선학생과학위원회 집행위원이 되었다. 1931년 보성전문학교 상과에 입학했다가 1932년 일본경찰의 수배를 피하여 일본으로 피신했다. 4월 니혼대학(日本大學) 전문부 경제과에 입학했다. 1933년 10월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 사건과 관련하여 검거되어 1934년 병보석으로 석방되었다. 그 후 일본공산당에 입당했다. 귀국하여 영주에서 농민운동에 종사하던 중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경성지법 검사국에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1935년 1월 전조선적색노동조합준비위원회 결성에 참여하고 선전부 책임을 맡았다. 4월 조선공산당 김천그룹재건협의회에 가담했고 이 무렵 영주 출신 활동가들로 서울에서 조직된 조선공산당재건준비위원회 결성에 참여하여 경북 책임을 맡았다. 5월 일본경찰에 다시 검거되어 징역 3년 6월을 선고받았다. 출옥 후 대화숙(大和塾)에 가입했고 『매일신보』 기자를 지냈다.
(노동당 중앙당 연락부 부부장) 1945년 조공 경북 문경군책, 문경군인민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 그후 상경하여 『서울신문』 정치부장을 지냈고 조공 중앙당 선전부원, 1946년 1월 중앙당 선전부장 대리가 되었다. 2월 민주주의민족전선 결성대회에 조선신문기자회 대표로 참가하고 임시집행위원으로 뽑혀 서기를 담당했다. 10월 월북하여 해주 제1인쇄소 편집국장, 1948년 제1인쇄소 주필, 1949년 7월 조선노동당 중앙당 연락부 과장이 되었다. 1950년 3월 38선 이남으로 내려와 남조선노동당 인민유격대 부사령을 지냈다. 5월 다시 월북했다가 7월 조선인민군 점령하에서 경기도인민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9월 인민군 후퇴기에 유격 제1지대 정치부 지대장이 되었다. 1951년 5월 노동당 중앙당 연락부 부부장이 되었다. 1953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전복을 음모한 혐의로 숙청되었고 1955년 최고재판소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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