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형관(林亨寬, 1904~?)] ()
(고려공청 검사위원) 평북 의주의 가난한 가정 출신으로, 보성전문학교를 1년 간 다니다가 중퇴했다. 1920년대 초 신의주에서 신만청년회(新灣靑年會) 결성에 참여했다. 1923년 6월 꼬르뷰로(조선공산당 중앙총국) 국내부 청년뷰로에 가입했다. 1924년 3월 신의주에서 꼬르뷰로 산하 당야체이까 결성에 참여했고 11월 조선일보사 신의주지국 기자가 되었다. 이후 중국과 국내를 연결하는 고려공산청년회 중앙총국의 국경 연락책으로 활동했다. 1925년 2월 전조선민중운동자대회 신의주 대표준비위원이 되었다. 4월 전조선기자대회와 전조선민중운동자대회에 참석했다. 같은 달 고려공청 결성대회에 참가하여 검사위원으로 선임되었다. 10월 고려공청 책임비서 박헌영(朴憲永)이 국제공산청년동맹 앞으로 제출하는 비밀서류를 국외로 전달하기 위해 잠시 보관했다. 11월 비밀서류가 발각되어 신의주경찰서에 체포되어 1928년 2월 경성지법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1930년 2월 출옥했다. 해방 이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권에 참여하여 평안북도 재정부장으로 재직했다. 재직중 이력서 위조죄로 투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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