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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주의] (structuralism)

연구의 한 방법 또는 몇몇의 형식화에서 리얼리즘과 유사성을 가지고, 경험론과 실증주의에 대항하는 학문의 보다 일반적인 한 원리이다. 이 연구방법은 다양한 분야에서 선례를 가지고 있지만(Piaget, 1970) 그것은 언어학으로부터 문학비평, 문학사회학, 미학이론, 사회과학, 그 가운데서도 특히 인류학, 그리고 마르크스주의로의 길을 열어나갔다. 구조주의적 방법론의 중요한 특징은 연구대상을 ‘체계(system)'즉 고립되어 있는 특수한 사실들 보다는 일련의 사실 사이의 상호관게로 본다는 데 있다. 피아제에 따르면 체계의 기본 개념은 총체성, 자율적 규제, 그리고 변형의 개념이다. 특히, 인류학에서의 구조주의는 레비-스트로스의 연구와 관계가 있는 데, 이러한 형태의 구조주의는 최근 마르크스주의적 인류학에 강항 영향을 끼쳐 왔다(특히, Godelier, 1977, 제Ⅰ부). 그러나 마르크스주의 사상에서 구조주의의 중요한 흐름은, 비록 알튀세가 이른바 ’구조주의적 이데올로기‘와 자기의 관점을 구별하려고 했지만, 일반적으로 알튀세의 논문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 알튀세에 따르면(1968, 1970), 마르크스는 사회이론에서 인간의 주체를 배제시켰고, 사회전체에 구조화 된 인간의 실천(경제적,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그리고 과학적)이라는 수준의 ’새로운 과학‘을 건설하였다. 그러므로 마르크스주의 이론은 '휴머니즘적’ 또는 ‘역사적’(목적론적 의미에서의)인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사회 전체(예를 들면 생산양식, 사회구성체)의 구조분석과 관련된다. 그리고 이러한 분석의 목적은 직접 관찰할 수 있는 사회적 생활 현상의기초를 이루며, 또한 이러한 현상을 낳는 ‘심층구조’를 밝혀내는 데 있다. 따라서 고들리에(1977)는 인류학에서의 경험주의와 기능주의에 반대하면서, 마르크스에서와 같이 레비-스트로스에게서도 ‘구조는 직접 볼 수 있거나 관찰할 수 있는 실체가 아니라 인간이 볼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 존재하는, 그리고 그 기능은 사회체계의 더욱 심화된 논리를 구성하는 수준의 실체이다’라고 하였다(p. 45). 현상 뒤에 어떤 실체의 구조가 있다는 이러한 생각은 인류학에서 뿐만 아니라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제시한 상품 분석은 구조주의적 분석의 본보기로 보여진다-과 사회학, 그리고 특히 사회계급과 국가 연구(Poulantzas, 1973)에도 영향을 주었다.
마르크스주의적 구조주의와 역사연구의 관계는 많은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알튀세(1970, p. 65)는 ‘마르크스는 현대 사회(그리고 모든 과거의 사회 형태)를 다같이 하나의 결과임과 동시에 하나의 사회로 간주하였다고 하면서 결과의 문제, ’말하자면 기존 생산양식의 역사적 산출의, 즉 기존의 사회구성‘에 관한 문제가 제기되고 해결되어야 한다고 쓰고 있지만, 실제로 알튀세는 역사적 변화에 거의, 또는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고들리에(1977, p. 6)도 역시 역사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고 보았지만, 그러나 ’변화의 법칙은 사회관계의 구조적 속성을 반영하기 때문에 변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역사는 설명해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설명되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책에서(1972) 그는 (마르크스가 그랬듯이) 변화를 불러 일으키는 사회체계의 기본 특징으로서 모순을 강조함으로써 구조주의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해석에 특정한 또 다른 요소를 도입한다. 그러나 고들리에는 이러한 방식으로 역사이론을 세우려고 시도하지는 않았다. 몇몇 마르크스주의적 구조주의자들은 자신들의 견해를 극단적 단계로까지 발전시켜서 다음과 같이 결론지었다. ’실재하는 객관적 “역사”란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실재의 역사가 존재한다는 관념은 경험주의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역사”라는 말은 역사 철학과 역사 서술의 관습에 의해 이루어진 이데올로기적 비주체(non-subject)를 지칭하는 데 국한되어야 한다‘(Hindess and Hirst, 1975, p.317). 그러나 다음으로, 이것은 마르크스주의적 역사가들로 하여금 이런 종류의 구조주의가 지닌 추상적 빈곤성에 대한 활기찬 반대 비판을 가하게 하였다 (→특히, Thompson, 1978). 그러나 또한 구조주의자들과 역사적 방법들을, 특히 루카치와 피아제에게 강한 영향을 받은 골드만의 ’발생론적 구조주의‘에서, 결합하려는 시도가 있었는 데, 골드만은 구조주의의 기본원리를 이렇게 정식화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의 행동을 구성하는 구조는 실제로는 보편적으로 주어진 사실이 아니고 과거의 발생으로부터 결과되어 미래 진화의 전조가 되는 변형을 겪어가는 특수한 현상이다.‘(1970, p. 21).
알튀세와 그의 후계자들이 인간 동인(動因)대한 그 어떤 인과적 영향을 거부하고 엄격한 구조적 결정론을 주장함으로써, 또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었는 데, 그것은 특히 풀란차스와 밀리반드의 논쟁에서였다(Blackburn ed., 1972 에서). 여기서 밀리반드는 ‘객관적 관계’를 획일적으로 강조하는 ‘상부-결정론’은 민주 입헌국에서 군사독재와 파시즘에 이르는 자본주의 국가형태 사이의 매우 중요한 차이점을 경시하고 은폐시킨다고 주장했다. 더 일반적으로 말하면 구조주의는 사회생활에서 인간의 의식과 행동의 역할을 강조하고, 진보의 관념이 내재해 있는 역사라는 하나의 개념에 자신들의 사상적 기초를 두려는 루카치, 그람시 및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견해와 정면으로 대립한다. 그러므로 넓은 의미에서의 구조주의는 마르크스주의 사상의 양극 사이의 오래 지속된 긴장을 새롭게 표현하였던 것이다. 여기서 양극이란 한 극단에서는 사회에 대한 엄격한 과학으로 이해되고 또 다른 한 극단에서는, 그람시의 말로 표현하면(1929-35(1971), ‘사회의 통합적 실제 조직에 생명을 부여하는 것, 즉 총체적 통합 문명이 될 필요가 있는’ 모든 요소를 자체 안에 포함하는 휴머니즘적 신조로 이해된다. 결국 이것은 마르크스 이론의 결정론에 관한 모든 기본적인 문제를 다시 제기하게 되었다.
[관련자료]
Althusser, L. and Balibar, E. 1970: Reading 'Capital'.
Godelier, Maurice 1972: 'Structure and Contradiction in Capital'. In Robin Blackburn ed. Ideology in Social Science.
-1977: Perspectives in Marxist Anthropology.
Goldmann, Lucien 1970: 'Genèse et structure: In Marxisme et sciences humaines.
Lévi-Strauss, Claude 1963: Structural Anthropology.
Piaget, Jean 1970: Structualism et Marxisme.
Thompson, E. P. 1978: The Poverty of The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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