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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원(李淸源, 생몰년 미상) 李靑桓] ()

(일본공청 중앙간부, 역사학자) 1929년 무렵 일본으로 건너갔다. 1930년대 초 대학을 졸업한 후 서울에서 발행된 잡지 『대중』, 『신계단』을 통해 문필활동을 했다. 1934년 일본공산청년동맹 중앙부 조직책으로 토오꾜오(東京) ․ 오오사까(大阪) ․ 코오베(神戶) ․ 나고야(名古屋) 시위원회를 조직, 지도했다. 이 무렵 일본 토건노동조합 토오꾜오지부 지구책임자가 되었다. 9월 일본 경시청에 검거되어 12월 기소보류 처분으로 석방되었다. 그해 말부터 1938년까지 조선경제사와 조선학에 관한 맑스주의적 연구성과를 발표했다. 『조선사회사 독본』(白揚社 1936), 『조선역사독본』(白揚社 1937)을 간행했다. 1938년 5월 이후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우리동창회의 고준석(高峻石), 송군찬(宋君讚), 황병인(黃炳仁)을 지도해 조선공산당 재건운동을 전개했다. 7월 일본공산당 재건운동에 참여했다. 1940년 5월 검거되어 1941년 1월 기소되었다가 한때 보석으로 출옥했다. 1942년 9월 상고 포기로 다시 복역했고 1943년 무렵 출옥해 귀국했다.
(노동당 중앙위원 후보) 1945년 8월 조직된 조공(장안파)에 참여했고 9월 조선인민공화국 중앙인민위원회 후보위원으로 선임되었다. 1946년 2월 민주주의민족전선 토지농업문제 연구위원이 되었다. 그해 가을 월북해 오기섭(吳淇燮)의 후임으로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선전부장이 되었다. 12월 북조선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 제8차 중앙위원회 회의에서 「조선문제 대한 모스끄바 3상회의 결정 1주년기념선전요강」을 보고했다. 1947년 이후 과학원 후보원사 겸 사회과학부문 위원장, 역사연구소 소장을 역임했다. 『임진조국전쟁』 (1955), 『조선에 있어서 프롤레타리아트의 헤게모니를 위한 투쟁』(1956)을 비롯한 여러 편의 역사 저술을 발표했다. 1956년 조선노동당 제3차 대회에서 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57년 민족허무주의자, 교조주의자로 비판받고 과학원 역사연구소 소장직에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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