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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국(李康國, 1906~53) 耳村] ()

(원산 적색노조 준비조직 참가자) 경기도 양주에서 지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서울 보성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1927년 경성제국대학 예과를 거쳐 법문학부에 입학했다. 재학중 미야께(三宅塵之助) 교수 중심의 ‘성대(城大)학생독서회’에 가담했다. 1930년 경성제대를 졸업하고 학부 조수(助手)로 있으면서 최용달(崔容達), 박문규(朴文圭) 등과 조선사회실정연구소를 조직했다. 1932년 5월 독일로 유학하여 베를린대학에서 공부했다. 그곳에서 프롤레타리아과학동맹에 가담했고, ‘혁명적 아세아인회’에도 참가했다. 10월 독일공산당에 입당하여 일본인 그룹 책임자로 활동했다. 1935년 11월 귀국 즉시 ‘미야께 교수 사건’ 관계자라는 이유로 일본경찰에 체포되었으나 기소유예로 석방되었다. 이후 잠시 증권회사 사무원으로 일했다. 1936년 4월 이주하(李舟河)와 함께 원산에서 적색노동조합 준비조직에 가담하고, 코민테른 제7차 대회의 결의를 전달했다. 1938년 10월 서울에서 이주하, 최용달과 회합하여 인민전선운동 전개방책을 논의하고 운동자금 및 좌익문헌 입수를 담당했다. 12월 ‘원산철도국 사건’에 연루되어 일본경찰에 체포되었다. 1941년 5월 예심이 종결되자 공산주의 실천운동에는 손을 떼지만 맑스주의는 포기할 수 없다는 내용의 전향문을 쓰고 보석으로 석방되었다. 출옥 직후 다시 체포되어 1942년 5월 징역 2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1944년 건국동맹에 참여했다.
(민전 사무국장) 1945년 9월 건국준비위원회 조직부위원으로 선출되었다. 같은 달 조선인민공화국 중앙인민위원회 위원 및 서기장으로 선출되었다. 1946년 1월 ‘5당회의’에 인공 중앙인민위원회 대표로 참석했다. 2월 민주주의민족전선 결성에 참여하고 상임위원 및 사무국장으로 선출되었다. 6월 좌우합작위원회에 민전을 대표하여 참여했다. 9월 미군정의 정책을 규탄하는 선언서를 발표한 관계로 체포령이 내려지자 월북했다. 1947년 2월 북조선인민위원회 사무국장 1948년 9월 상업성 법규국장, 1950년 12월 인민군병원 원장, 1951년 11월 무역성 일반제품 수입상사 사장으로 일했다. 1953년 3월 ‘종파사건’으로 당국에 체포되어 1955년 12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재판소 군사재판소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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