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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순달(尹淳達, 1914~?)] ()

(경성콤그룹 참가자) 전남 강진에서 태어나 어려서 서당에서 한문을 배웠다. 전북공립보통학교, 강경보통학교에 다녔다. 1929년 광주학생운동에 참가하고 일본경찰에 한때 검거되었다. 이후 서울에서 2년제 전기학교를 졸업한 후 영등포 철공장에 전기견습공으로 취직했다. 이때부터 안병춘(安炳春)의 지도를 받아 적색노동조합을 조직하려고 노력했다. 1935년 12월 권영태(權榮台)그룹에 참여했다. 1936년 10월 종로경찰서에 검거되어 징역 1년을 선고받고 1937년 7월 출옥했다. 1940년 8월 김삼룡(金三龍)으로부터 전남 광주에서 활동하라는 지시를 받고 11월 광주에서 전기회사에 취직했다. 경성콤그룹에서 활동하다가 김삼룡의 검거로 연락이 두절되었으나 1941년 가을 이순금(李順今)을 통해 박헌영(朴憲永)과 연결되어 해방 전까지 노조운동을 전개했다.
(노동당 연락부 부부장) 1945년 8월 조선공산당 재건준비위원회에 참여했고 9월 조공 광주시당 결성에 참여하여 조직부장으로 선임되었다. 1946년 3월미군정을 반대했다는 이유로 광주경찰서에 검거되어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았으나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여 1947년 5월 무죄판결을 받았다. 석방 후 다시 경찰에 검거되었다가 11월에 석방되었다. 그해 12월 이후 남조선노동당 중앙 조직부에서 활동하다가 1949년 2월 조직부장으로 선임되었다. 성북경찰서에 검거되어 징역 1년 6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6월에 석방되었으나 8월에 다시 검거되어 1950년 6월 석방되었다. 같은 해 7월 조선의용군 간부부장으로 선임되어 유격대 정치위원으로서 낙동강전투에 참가했다. 8월유격대의 지휘권을 조선인민군에 넘겨주고 9월에 평양으로 가서 인민군 제1사단 정치부사단장으로 임명되었다. 같은 달 서울로 왔으나 곧 유엔군에게 쫓겨 강계로 후퇴했다. 12월 다시 경북 영주까지 내려왔으나 곧 후퇴했다. 1951년 2월 인민군 제27사단 정치부사단장으로 선임되었다. 1952년 1~4월 김책군관학교에서 단기강습을 마치고 6월 조선노동당 연락부 부부장으로 선임되었다. 그해 11월 쿠데타 음모 가담 혐의로 당국에 체포되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재판소 군사재판부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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