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창렬(廉昌烈, 1903~?)] ()
(고려공청 중앙집행위원 후보) 황해도 재령에서 태어나 고향의 서당에서 한문을 배웠다. 1918년 1년간 잡화상을 경영하다가 실패한 후 농업에 종사했다. 1923년 3월 상경해서 6월 꼬르뷰로(조선공산당 중앙총국) 국내부 공산청년뷰로에 참여했다. 1924년 2월 신흥청년동맹 상무집행위원, 11월 화요회 집행위원을 지냈고 이 무렵 정우회(正友會)에 참여했다. 1925년 4월 고려공산청년회 창립대회에서 중앙집행위원 후보로 선임되었다. 1926년 3월 조선공산당에 입당하여 제8야체이까에 소속되었다가 경성부 제1구 제7야체이까, 언론기관 프랙션에 배속되었다. 6 ․ 10만세운동 후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1928년 2월 경성지법에서 징역 2년 6월을 선고받았다. 1929년 8월 만기출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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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접어
여해암(呂海岩, 1918~?) 연태을(延台乙, 1911~?) 延起虎 延台一 염경환(廉經煥, 1904~?) 염영화(廉榮華, 1902~?) 염이현(廉利賢, 1907~?) 廉利鉉 염창렬(廉昌烈, 1903~?) 염창렬(廉昌烈, 1903~?) 염태의(廉泰儀, 1912~?) 廉泰伍 염태익(廉太翊, 생몰년 미상) 염필수(廉弼守, 1914~?) 오광수 (吳光壽, 생몰년 미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