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빈(金承彬, 1895~1984)] ()
(新興武官學校 교관, 소련군 장교) 평안도 자동 출신으로 소학교를 마치고 농업에 종사했다. 1915년 왕실 호위부대에 징집되어 1918년까지 복무했다. 3 ․ 1운동에 참가한 뒤 만주로 망명하여 1920년까지 안도현(安圖縣) 신홍무관학교 교관으로 활동했다. 그해 말 ‘경신(庚申)참변’ 당시 신흥학교 사관생들과 더불어 노령(露領) 극동지방으로 이동하여 오하묵(吳夏默)이 지도하던 한인 독립보병여단의 대대장이 되었다. 1921년 6월 노령과 만주의 한인 반일무장부대들을 통합할 당시 홍범도(洪範圖) 휘하에서 일했다. 8월 고려혁명군정의회가 폐지되고 1개 여단으로 재편되자, 여단 내 사관학교에서 교관으로 근무했다. 그해 말 연해주 이만에서 반일 ․ 반백위군(白衛軍) 전투에 참가했고 1922년 7월 스빠스끄 지방에서 백위군의 진로를 차단하는 전투에 참가했다. 시베리아내전이 끝난 뒤 1923년부터 1930년까지 연해주 니꼴리스끄에서 7년제 인민학교 교원으로 근무했다. 그 후 소련 국경수비대에서 근무했으며, 1938년 소련 ․ 일본 양군의 국경선 군사 충돌 사건인 ‘장고봉(張鼓峰) 사건’ 당시 참전했다. 1945년 8월 소일개전(蘇日開戰)에 참전했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소련 정부로부터 포상을 받았다. 공직에서 은퇴한 후 하바로프스끄에서 연금으로 생활하다가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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