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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혁(金相赫, 1902~?) (本)金琪善] ()

(고려공청 일본부 책임비서) 전남 순천의 대지주 집안 출신으로, 1925년 서울 중동학교를 졸업하고 4월 토오꾜오(東京)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전문부 정치경제과에 입학했다. 재학중 재일본조선청년총동맹, 조선인유학생학우회, 조선인 사상단체 신성회(新星會), 신홍과학연구회, 재일본조선인단체협의회 등에서 활동했다. 1927년 5월경 조선공산당 일본부에 입당했고 11월 고려공산청년회 일본부 책임비서가 되어 북부야체이까에 배속되었다. 12월 신간회 토오꾜오지회 서무부 간사로 선출되었다. 1929년 8월 ‘조공 일본총국 검거사건’을 피해 귀국했다.
(조선공산주의자협의회 중앙선전부 책임) 1930년 6월 이종림(李宗林)과 함께 조공 재건운동을 하기로 결정하고 전남 책임을 맡았다. 1931년 2월 경기도 김포에서 좌익 노동조합 ․ 농민조합을 조직하고 연락과 통일을 이끌 기관으로 조공재건설동맹을 조직했다. 7월 대구에서 열린 조선공산주의자협의회 전국대회에 전남 대표로 참가하여 중앙선전부 책임을 맡았다. 12월 광주에서 비밀결사 공장위원회를 조직했다. 이 무렵 전남노농협의회 결성에 참여하여 노동부와 조사부 책임자, 출판부원이 되었다. 조선공산주의자협의회 기관지 『코뮤니스트』, 『봉화』를 대구 ․ 경남 ․ 전남 ․ 전북 각지에 배포했다. 1932년 3월 일본경찰에 검거되어 1933년 대구지법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출옥 후 고향에서 청년들에게 사회주의사상을 교육하다가 다시 검거되었다. 1940년경 출옥하여 함북 청진의 정어리 가공공장에서 일했다.
(남로당 중앙위원) 1945년 9월 공산주의열성자대회에 참석했다. 같은 달 조선인민공화국 중앙인민위원 및 노동부장 대리로 선정되었고 1946년 2월 민주주의민족전선 결성에 참여하여 중앙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2월 남조선노 동당 중앙위원으로 선임되었다. 그 후 월북하여 1948년 8월 해주에서 열린 남조선인민대표자대회에서 제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선출되었다. 1956년 조선노동당 제3차 대회에서 중앙위원으로 선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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