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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진(金復鎭, 1901~40) (號)井觀 金福鎭] ()

(조각가, 카프 집행위원) 충북 청주에서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김기진(金基鎭)의 형이다. 1915년 3월 영동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4월 배재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여 5년간 수학했다. 3 ․ 1운동에 참가한 후 일본으로 건너가 1920년 토오꾜오(東京) 우에노미술학교(上野美術學校) 조각과에서 공부했다. 1922년 5월 무렵 토월회(土月會) 결성에 참여했다가 1923년 5월 귀국한 후 토월회를 탈퇴하고 파스큘라(PASKULA)를 조직했다. 1924년 작품 ‘4상’으로 제국미술전람회에 입선했다. 1925년 미술학교를 졸업하고 7월에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KAPF)에 참가했다. 1926년 1월 『문예운동』 발행을 주도했고 6월 사회주의 기관지 『대중신문』에 집필자로 참여했다. 1927년 6월 고려공산청년회에 가입하고 경기도위원회 학예야체이까에 배속되었다. 9월 카프 개편에 참여하여 중앙집행위원이 되었다. 그해 카프 산하의 학생극 연구단체 ‘신건설(新建設)’ 결성에 참여하고 중앙집행위원이 되었으며 카프와 별도로 미술단체 흥창회를 만들었다.
(조공 경기도당 집행위원) 1928년 2월 조선공산당에 입당하여 3월 조공 경기도당 위원으로 선임되고, 고려공청 중앙위원 겸 경기도책, 학생부 책임자가 되었다. 7월 ‘제4차 조공 검거 사건’으로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1930년 11월 경성지법에서 징역 4년 6월을 선고받았다. 1934년 2월 출옥한 후 애지사(愛智社) 창립에 참가했다. 『청년조선』창간호를 발행할 때 러시아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았다는 혐의로 한때 일본경찰에 체포되었다. 1935년부터 3년간 『중앙일보』기자로 근무했고, 1939년 법주사 미륵대불 제작에 착수했다. 1940년 8월 사망했다.
■ 인접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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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진(金復鎭, 1901~40) (號)井觀 金福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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